현장르포 - 청주테크노폴리스 예정지 가보니

"우린 내쫓기면 갈 곳이 없어…"

2009.04.09 20:26:37

편집자 주

청주시는 지난 2007년 흥덕구 강서2동(향정·외북·내곡·화계·문암·송절동) 일대 325만5천162㎡의 부지에 총 사업비 1조2천87억원을 투입해 테크노폴리스를 조성한다고 발표했다.
사업 발표 후 2년이 지난 지금, 시와 출자사 관계자들은 금융환경 악화, 주민 반대 등의 이유로 사업 전략을 재검토하며 사업추진에 속도를 내려하고 있다.
이 때를 같이 해 본보는 청주테크노폴리스 조성 예정지 주민들의 애환을 들어봤다.

ⓒ김태훈 기자
9일 오후 1시. 청주시 흥덕구 강서2동 주민센터를 지나 문암동으로 가는 길은 '동'이란 행정구역이 무색할 정도로 시골이었다. 따사로운 햇볕과 이지러지게 핀 꽃이 한껏 시골의 봄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인근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마을 어귀를 뛰어다니는 바둑이.

도시민에게는 그야말로 천국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못 했다. 마을 주민들에게는 이 곳은 '지옥'이었다.

문암동은 그동안 쓰레기매립장으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청주시민들이 매일 쏟아내는 수백톤의 쓰레기에 이곳 주민들은 병들어 갔다. 새도 찾아오지 않았고 아카시아 꽃도 피지 않았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으로 고통 받는 노인들이 늘어만 갔다.

그리고 지난 2000년, 문암 쓰레기 매립장이 수명을 다했다. 다시 새도 찾아오고 꽃도 피기 시작했다. 이제야 살 만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청주 테크노폴리스가 이곳에 조성된다는 시의 계획이 발표됐다. 토지보상을 받고 나가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인가. 평생을 이곳에서 농사만 짓고 살았건만 이 나이에 어디로 가란 말인가. 눈앞이 캄캄해졌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50년 동안 남의 밭에서 품 팔며 살았어. 겨우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았는데 이제와 떠나라니···. 나보고 죽으라는 거야 그건"

이상열(70)씨는 20년 전 농기계에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겨우 먹고 사는 처지라 보험을 들어 놓을 여유는 없었다. 며칠에 한 번 씩 천막일을 나가는 아들이 있다는 이유로 정부지원은 아직까지 못 받아봤다.

"그래도 죽는 것 보다는 사는 게 낫지 않나 싶었어. 다리 하나는 멀쩡했잖아. 남의 밭에 가서 품 팔면서 몇 만원씩 삯을 받았지"

이 씨는 그렇게 50년을 모아왔다. 그리고 3년 전 50년 째 살고 있는 토담집의 터와 밭을 조금 샀다.

"행복했지. 이젠 내 밭에 파도 심고, 고추도 심고…. 하지만 이젠 모든 게 끝났어"

이 씨는 토지 보상을 해준다는 시의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곳은 20년 넘게 그린벨트로 묶여 있던 곳이었어요. 당연히 공시지가는 바닥이죠. 이런 기준으로 토지 보상을 한다면 대체 어디 가서 집과 밭을 사란 말입니까"

옆집에 사는 이종율(73)씨가 말을 거들었다.

"시에서 이주자 택지를 마련해 준다하더라도 토지가가 몇 배는 차이나요. 집과 밭을 모두 팔아도 이 돈으로는 이주자 택지에 집도 못 집니다" 이 씨의 목소리가 격앙됐다.

시에서는 주민들에게 임대 아파트를 제공하는 방향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일을 해야 관리비를 낼 것 아니냐"고 언성을 높인다. 평생 농사만 짓고 품을 팔며 살아온 노인네들이 논, 밭을 뺏기고 나면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겠냐는 것의 그네들의 하소연이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이 말을 남겼다.

"칠십이 넘은 우리들이 무슨 돈 욕심이 있겄슈. 그저 먹고 살게만 해달라니깐. 이대로 쫓겨나면 우린 굶어 죽어"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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