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년만에 내 이름 찾았어요"

남의 호적으로 평생 산 진천 이순복씨

2009.03.26 17:30:03

진천군 초평면 청소년수련원에서 평생을 남의 이름으로 살다가 팔순이 넘어서야 자신의 이름으로 된 주민등록증을 받게 된 이순복 할머니(오른쪽)가 도움을 준 이형우 이월면 민원담당과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평생을 호적도 없이 남의 이름으로 살아온 80대 할머니가 자신의 이름으로 된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게 돼 뒤늦은 감회에 젖었다.

이 같은 기막힌 사연의 주인공은 진천군 초평면 화산리에 사는(83) 이순복 할머니.

이 할머니는 25일 오후 주민등록증발급신청확인서를 펴 보이며 감격의 눈시울을 적셨다.

팔순이 넘어서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갖게 된 이 할머니는 그동안 남편의 첫 번째 부인의 이름인 '이상희'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할머니가 이처럼 기구한 인생을 살게 된 것은 태어난 지 얼마되지 않아 심한 홍역을 앓는 등 병치레를 겪자 이 할머니가 온전히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은 부모는 아예 호적에도 올려놓지 않은 것이 시작이었다.

이름도 없이 살아온 이 할머니는 전 남편이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끌려간 뒤 1950년대 중반 재혼했으며 이후 남편의 전 부인 이름(이상희)을 지금까지 사용해 왔다.

20여년 전 남편이 숨졌을 때는 사별한 전 부인과 함께 공원묘지에 합장하려 했지만 이 할머니가 첫 번째 부인의 이름을 사용, 호적정리가 되지 않아 사망신고를 못해 합장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기구한 인생을 살아온 이 할머지는 정작 자신이 낳은 자식은 없지만 전 부인이 낳은 2남2녀를 친자식처럼 정성껏 키웠고 자신의 손으로 손주 10명을 받아냈으나 두 아들이 갑작스레 죽고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자 이를 자신의 업보인양 괴로워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의 막내딸 이진주(57) 씨는 "어머니는 친어머니 못지않은 애정으로 자식들을 길렀다"며 "어머니의 소원이기에 늦게나마 당신의 이름으로 된 주민등록증을 만들어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가 26일께 받을 주민등록증의 번호는 '260×××-238××××.'

또 어릴 적 너무 순하다고 해서 주위에서 부른 '순복'이가 이 할머니의 이름이다.

이 할머니가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얻는데는 진천군 이월면사무소 이형우(56) 민원담당의 도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할머니의 딸 진주씨는 퇴근시간이 지났음에도 서류를 챙겨 기다려주고 제적등본을 여러 차례 뒤적이며 할머니의 호적(가족관계증명서)을 만들기까지 힘을 북돋워준 이 담당과 민일영 청주지방법원장에게 고마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 담당은 이에 대해 "공무원으로서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다한 것뿐"이라며 겸연쩍어 했다.

/ 김규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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