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안하는 엄마 나라로

2009.11.24 13:26:03

김정원

前 청원교육장

초등학교 2학년의 몽골계 한국인 여자 어린이 엘마(가명)는 학교 다니기가 싫다며 차별 안하는 엄마 나라로 가든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며 조른다. 벌써 다섯 번째란다. 엄마도 이해가 간다. 할 수만 있다면 차라리 차별 없이 살 수 있는 몽골 초원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단다.

몽골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고, 한국인 건축업자라는 마흔세 살의 아버지와 재혼한 엄마를 따라 온 다문화 가정의 딸 엘마는 한국말을 못해 가족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으며, 엄마도 한국말이 서툴러 생활이 아주 불편했다.

몽골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하는 아버지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사장에서 미장일을 배워 기술자로 일하면서 가사를 도왔으나, 홀어머니의 건강악화로 장기간의 치료비를 대느라 결혼도 못하고 돈도 모으지 못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못해 엘마는 유치원에도 못 갔으며, 아버지가 일하러 나가면 엄마와 함께 집에서 몽골말로 고향 이야기를 하면서 놀았다.

그러다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엄마가 엘마를 데리고 학교엘 따라 다니지만 담임선생님과도 대화가 되지 않아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 말이 없었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나 학습 준비 자료를 나눠주면 받아오기는 하지만 돌봐줄 사람이 없다. 말이 안 통해 이웃집과 오가지 않아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엘마도 한국말을 못 알아들으니 친구들과 사귈 수도 없었다. 한글도 모르니 답답할 수밖에. 그저 기계적으로 학교에 오가며 시간만 지나갔다.

반 아이들이 '저 애는 벙어리인가 봐, 말도 못하고... .' '그 애 엄마도 벙어리래.' 좀체 말을 하지 않으니 선생님과 학생들에게 그렇게 이해되는 것이 당연했을 것이다.

친구가 없어 도움을 받지도 못했지만, 놀림을 받으면서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 혼자서 주저주저하다가 우는 것이 일쑤였다. 다른 애들은 다 할 수 있는 이름 쓰기와 책 읽기, 집주소와 부모 이름, 그리고 학교 이름과 학년 반 이름을 쓰지 못했으니 학교엘 다니는 것이 얼마나 힘든 마음고생이었을지 짐작이 간다.

반 친구들이 놀아 주기는커녕 말조차 걸어오지도 않았다. 보이지 않는 따돌림과 차별로 엘마는 학교가기가 정말 싫어졌다. 몇 번인가 울면서 학교엘 안 가겠다고 하더니 결석도 자주했다. 담임선생님도 엘마에게 장애가 있는 줄 알고 특수학교를 권했으나 엄마는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가정에서 시어머니를 돌보는 일도 의사소통이 잘 안되어 불편만 거듭되었고, 회복할 기미는 거의 없어 보였다. 살림은 남편의 품팔이로 근근이 이어갔지만, 친정에 보내주기로 약속한 부모님의 생활비는 일 년이 지나도록 한 푼도 보내지 못했다.

그해 가을에 시어머니가 고대하던 손자를 보더니 병중에도 좋아했었는데, 겨울도 못나고 돌아가셨다. 그러느라 엄마는 엘마에게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는 가운데 겨울방학이 지나고 2학년이 되었다.

남편은 아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 엘마의 학교생활엔 무감각했다. 새로운 담임선생님이 상담을 요청해도 응하지 않았고, 가정방문을 해도 이런저런 구실로 만나주지 않아 더듬거리는 엄마와의 이야기로는 대화가 되질 않았다.

남편이 쉬는 날에 학교엘 좀 가보라고 하면, 오히려 귀찮게 굴면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겠다고 협박을 하기도 했다. 도시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딸 엘마는 벌써 몇 번째 차별 안하는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조르는데, 엄마는 속수무책이다.

우여곡절 끝에 다문화 교육센터에 연결이 되었다. 전문 상담가와 담임선생님이 아버지를 만나 어렵사리 설득이 되었다. 교육청의 지원으로 엄마와 엘마는 오후에 가정에서 대학생 도우미로부터 우리말과 글을 배우면서 엘마의 학교공부도 도움을 받고 있다.

담임선생님의 관심과 배려로 학교에서는 여학생 반장과 짝이 되었다. 말을 하기 시작했다. 벙어리가 아니었음도 알려졌다. 교과공부도 도움을 받았다. 친구도 생겼다. 반장네 집에도 놀러 갔었다. 때리는 애들도 없어졌다. 선생님들도 말을 걸어왔다. 말수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결국 다문화 가정 자녀임도 알려지게 되었다. 엘마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엘마에게 호기심을 가지고 얘기를 해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늘어났다. 혼자서 학교도 잘 다닌다. 아버지가 마음을 여니 온 가정과 학교생활이 즐거웠다.

결혼 이민의 다문화 가정이 이웃과 불편 없이 살아가려면 먼저 남편을 중심으로 모든 가족이 마음을 열어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하며, 서로 차별하지 말고, 후진국민에 대한 편견도 버려야 한다. 머지않아 모든 다문화 가정이 다 그렇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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