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정책이 만든 도시

2009.11.10 16:25:08

반상철 교수

서원대 건축학과

정책을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획기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창조적 정책(creative policy)라고 한다. 적은 예산으로 불과 10여 년 만에 세계적인 명성을 갖게 되고 한 해 방문객이 수십만에 이르는 부러운 도시 아니 지역이 있다. 과거 미나마타병이라고 하는 재앙에 가까운 환경공해의 피해를 입었던 곳으로 악명 높았던 이곳이 현재는 예술이라는 기반을 바탕으로 지역의 이미지를 새롭게 하고 새로운 산업을 유치하여 사람과 기업을 불러 모으는 매력있는 환경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구마모토의 아트폴리스(K.A.P Kumamoto Art-Polis)이다.

이 창조적 정책의 주요 내용은 구마모토 현 내에 세워지는 건축물 중 주로 공공성을 가진 각 건축물들을 작품(art)으로 만들어 가는 사업이었다. 그렇지만 관인 현 당국이 예산을 지원하는 것은 아니고 건립이 예정된 지자체나 민간기업의 건축물이나 교량 등의 토목구조물을 포함하는 건설사업이 보다 도시경관에 기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그 과정에 적극 참여해서 지원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의 추진에는 당연히 미래의 도시자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혜안을 가진 리더가 있게 마련인데, 당시 구마모토현 지사였고 후에 일본 총리를 지낸 호소카와 모리히로라는 사람이 "미래에 남는 것은 문화 밖에 없다."라는 말과 함께 1984년부터 <활력·개성·윤기가 가득한 전원문화권의 창조>를 슬로건으로 하여 '구마모토의 미래 시나리오'를 제시하였다. 이의 시행을 위해 '문화진흥 기본조례'를 제정하고 '공익신탁 구마모토21'이라는 이름의 문화기금을 조성하여 1988년에 드디어 아트폴리스사업의 결실을 얻기에 이르렀다. 이 후 현의 각 지역에서 74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진행되어 그 각각이 점으로 서로 네트워킹되는 시스템을 구상하여 점적인 요소들이 연결되어 선이 되고 선들이 상호연계하여 면으로 확대됨으로써 최종적으로는 구마모토현 전체가 말 그대로 아트폴리스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러한 것들의 바탕에는 공공성(公共性, publicity)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공성이라는 것은 관주도의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공공이 자유롭게 수시로 접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건축물과 시설·공간들을 포함하고 있다. 미술관·박물관 등의 문화예술시설을 비롯하여 관공서, 주거단지, 전망대 등 공공성을 지닌 건축물들과 교량, 댐 시설, 부두, 터널 환기구와 같은 토목구조물부터 공중화장실, 공원과 조경시설물에 이르기까지 경관대상이 되는 것 모두를 그 대상으로 하였다. 이 아트폴리스 사업은 지역의 문화적 활기도 자극하여 혈기 왕성한 소위 문화게릴라들을 집합하게 하여 수준 높은 예술작품들을 접함으로 인해 문화수준도 제고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또한 이를 통해 지역 내 지자체 장들이 경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것이 지역부흥으로 활용하려는 시도가 전개되었고, 문화공간과 예술작품(건축물 등)이 주변에 생겨나면서 주거단지에서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환경의 변화를 자극하게 되는 효과도 얻게 되었다. 초기에 내국인들만 관심을 갖던 것이 이제는 국제적인 명소화를 이루면서 4년마다 국제 건축전이 열리는 등의 외연적 확장도 보여주고 있다.

무슨 일이든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비전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첫째, 확실한 의지와 추진력을 가진 지도자가 있어야 하고, 둘째,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많은 전문가와 지역주민이 참여하여 만들어진 제도, 그리고 세 번째는 유능한 전문가의 선정과 전문가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지원 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의 좋은 예로 역사상 최초의 도시계획사업이라고도 하는 파리개조사업이 있다. 19세기 중반 약 20년에 걸쳐 시행된 이 사업은 오스만(eugene haussman)이라는 탁월한 건축가 및 도시계획가의 제안과 토지수용법, 위생법과 같은 제도의 제정, 그리고 나폴레옹 3세의 전폭적인 지원과 추진에 의해 가능했던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구마모토의 경우도 호소카와 지사의 안목과 의지, 조례 등 추진을 위한 제도의 정비, 아트폴리스 사업을 총괄한 아라타 이소자키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세계적 건축가에게 건축가 및 디자이너 선정 등 전권을 위임한 점 등이 성공요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외에 하나 더 중요한 조건을 붙인다면 역시 지속성이 될 것 같다. 아트폴리스 사업에 처음부터 계속 관여해 온 구마모토 대학교의 원로교수와의 대담에서 알게 된 사실인데, 호소카와 지사도 없고, 초대 커미셔너로 이 사업을 주도했던 이소자키도 물러난 후 후임에 이토 도요라는 건축가가 새로이 임명되었는데 전에 비해 그 역할이나 활동폭이 좁아져자문을 위해 가끔 들르는 정도라고 하면서 심히 우려하는 소리를 듣고 놀랐다. 무었보다도 주민이 실제 소득에 큰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참여와 관심이 눈에 띠게 줄어들면서 최근엔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실제 현장 확인을 한 결과 아트폴리스를 상징하는 주거단지였던 호타쿠보나 류자비라 주택단지들은 잡초가 우거지고 노후화 정도가 심각한 정도여서 정문에 붙여있는 작품상 수상마크가 훼손되어 있는 등 보기 민망할 정도였다.

지난 해에 청주의 건축과 도시의 미래를 위한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구마모토시의 실무 책임자도 초청하여 의견을 듣기도 한 자리였다. 결과는· 상기 조건 모두가 아직 우리에겐 아주 먼 과제로 느껴짐을 실감했을 뿐이었다. 장기적인 도시자원의 기반마련을 위한 비젼이 아직 없는 것 같았고, 능력있는 전문가·작가를 초빙하기 위해서는 현재 규정된 디자인 용역비 기준 등을 개정해야 하는 데 오히려 이런 규정 때문에 불가하다는 의견을 들어야 했다. 아직은 좀 더 기다리고 준비해야 할 때인가 보다 라고 생각되면서 '그러면 교육·문화의 도시 청주의 멋진 모습은 언제 볼 수 있을런지.. 누구나 오고 싶어하는 명물은 언제나 가능할지...' 좀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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