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건조한 기후 때문에 호주에서 자연 발화된 산불이 2020년 2월 말까지 100회가 넘게 발생해 서울면적의 70배에 달하는 산림을 태워버렸다. 인명피해만도 20여 명이 넘게 사망을 하고 건물 또한 1천300여 채 이상이 소실됐다. 2019년과 2020년 기간 동안 지구상의 산불은 호주에서 일어 난 산불만으로 그치지 않고 곳곳에서 발생했다. 2020년 9월 미국의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주 등에서 산불이 발생해 미국 화재발생 사상 유래 없는 기간동안 불이 번져 최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화재의 원인을 살펴보면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로 인한 지구온난화로 기록적인 폭염으로 자연발화된 불씨가 강풍에 의해 급속히 번져 진화에 손 쓸 틈 없이 속수무책으로 인간의 한계를 보여줬다. 문제는 호주산불과 미국에서 일어난 산불 이외에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산불로 지구상의 숲이 사라지고 있다. 그 같은 현상이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해 대기 중 산소는 크게 증가한다. 그 뿐만 아니라 인간들이 경제활동 등으로 대기 중에 배로 배출시킨 이산화탄소를 나무가 흡입 시 햇볕을 받아 탄소동화작용으로 더 많은 산소를 가중시킨다. 반면 수소는 대기 상층에 머물러 기온 또한 더 빠르게 상승한다. 그런 것들로 인해 산불이 곳곳에서 쉽게 발화한다. 대기 하층에 산소가 증가하고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해 가뭄으로 날씨가 건조해져 자연 발화 산불발생이 잦아질 수밖에 없다. 그 모두가 지구온난화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증가가 원인이 돼 일어나는 현상으로 기후를 변화시킨다. 기후변화는 중위도지역의 인도 아삼지역 중국 중남부곡창지역, 미국 중부 곡창지역이 가뭄으로 사막화가 급속도로 진행돼 농사를 짓지 못해 식량부족현상을 일으켰다. 또 2020년 9월 7일 미국 콜로라도 덴버에서 하루에 낮 기온이 32.2도로 폭염이 밤엔 영하로 떨어져 최대 35센티미터 정도의 폭설이 내리는 이변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20년 1월 7일 제주도가 23.6도로 1월 최고기록을 세우고 호주는 기록적인 혹서를 북한도 관측사상 유래 없는 더운 달로 1월 이상기온이 발생했다. 전 지구 평균기온이 21세기 말 1.9도에서 5.2도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기도 했다. 지구온난화는 결국 지구생태계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그런 지구온난화를 저지하지 않으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코로나 9와 같은 새로운 병원균이 유행 적지 않은 인간의 생명을 앗아 갈 것이다. 또한 가뭄과 사막화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폭우 폭설 허리케인 토네이도 같은 이상기후로 자연재난이 발생해 종국에는 국가 간 전쟁으로 이어지는 인류역사상 최대 위기를 금세기 중에 겪게 될 거라 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 그 같은 불행한 사태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 등을 대기 중으로 가급적 적게 배출해야 한다.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사용을 최소화해야한다. 전기 가스를 아껴 쓰고 물도 아끼며 각종 재화 소비를 줄여야 한다. 그래서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불타는 지구를 살려야 한다. 그 길만이 인류를 비롯한 지구생태계변화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
가을 차디찬 공기가 가슴을 파고 들 때면 허름한 초가집 지붕 넘어 붉게 물든 홍시가 누런 잎 새 사이에서 바람을 타고 대롱대롱 춤을 춘다. 행여 떨어질세라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쳐다보고 또 쳐다보고 있노라면 떨어지지 않을 테니 걱정 말라는 듯 덩실덩실 춤추듯 흔들어 댄다. 그래 그건 그렇다하고 너 지나간 여름 그 더위에 초록 외투 나부끼며 뽐내던 그 모습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 새 붉은 옷으로 갈아입었는지 눈이 부시는구나? 그 순간 비둘기가 지나다 깜짝 놀라 그래 네 이름 감이었잖아? 그런데 언제 홍시가 됐지? 감 보다 홍시 그 이름이 더 좋다. 참 잘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됐니? 말랑 말랑 까치가 와서 쪼기라도 하면 터질 것만 같아 불안하다. 맞아 까치 그들이 와서 이마며 옆구리 가리지 않고 쪼아 눈알도 빠지고 눈퉁이가 부어오르겠지만· 어떻게 하니. 나무 가지에 의존해 웅크리고 지나가는 구름에게 하얀 솜털로 감싸 숨겨달라고 부탁해 그럭저럭 까치를 피해야지 어떻게 하니· 그럴 수만 있어도 좋은 팔자다. 팔자 사나우면 붉은 옷으로 갈아입기가 무섭게 인간들이 잠자리채에 갈고리를 달아 목을 마구 비틀어 데려 가버린다. 그래서 형제자매 잃고 홀로 남아 홍시라는 이름으로 차디찬 겨울을 지내게 된다. 얼마나 외롭고 처량한 지 인간 너희들은 모른다. 그런데도 인간들은 홍시만 보면 그리 좋아라 한다. 홍시가 혈관건강, 눈 건강, 암 예방, 피로회복, 피부미용, 면역력강화, 설사완화, 숙취해소, 빈혈예방, 다이어트 등에 좋다며 먹고 또 먹어 댄다. 사람들은 홍시인 우리를 천사 같은 고운 마음씨만 가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우리 홍시도 그렇지만도 않다. 몸속엔 고 탄수화물 같은 것을 지니고 있다. 그래 인간 너희들도 당해 보아라! 하고 혈당을 빠르게 올려 당뇨병으로 고생을 시킬 수도 있다. 알겠니· 그 뿐만 아니다. 다이어트 좋아하네 하며 되레 뚱보로 만들어 버린다. 변비로 고생을 시키기도 한다. 홍시는 좋기도 하지만 좋지 못하기도 하니 가까이 하되 지나치게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인간 너희들은 알아야겠다. 나훈아라는 마음씨 고운 가수가 홍시를 보면 엄마 생각이 난다며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하구나·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자장가 대신 젖가슴을 내 주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눈이 오면 눈 맞을 세라 비가 오면 비 젖을세라. 험한 세상 넘어질세라 사랑땜에 울먹일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겠다던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이 난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회초리치고 돌아 앉아 우시던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바람이 불면 감기들 세라 안 먹여서 약해질세라. 힘든 세상 뒤처질세라 사랑 때문에 아파할 세라. 그리워진다 홍시가 열리면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눈물이 핑 도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는 울 엄마가 그리워진다. 울 엄마가 생각이 난다 울 엄마가 보고파진다.' 그렇게 홍시를 보며 엄마가 생각이 난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것을 홍시 우리인들 모르는 것 아니다. 눈이 내려 천지를 하얗게 덮은 그 때도 홍시 우리는 엄마 생각을 떠올리게 하지만 햇볕 쨍쨍 내리 쬐는 칠팔월 무더위에 차디찬 냉동실에서 냉기 뒤집어 쓴 체 탱탱해진 홍시 우리는 인간들 가슴속을 시원하게 뚫어 주기도 한다. 그런 홍시 우린 마치 인간을 위해 태어난 듯 살다 간다. 인간들 그래 홍시 우리를 보고 엄마 생각을 하고 가슴이 찡하도록 그리워해 보아라.
사람에게는 다른 동물이 갖고 있지 않은 언어와 글자 그리고 불(火), 갖가지 기계 기구를 만들어 사용하는 능력이 있으며 부끄러움이라는 수치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다른 동물들은 태어날 때 모습을 그대로 노출해 알몸으로 살지만 사람이라는 동물은 알몸을 드러내 놓는다는 것이 부끄러워 나뭇잎 또는 풀을 뜯어 신체부위 중 중요한 곳을 가리고 숨겼다. 가린 곳이 잘 못 돼 다른 사람 눈에 띄기라도 하면 수치심에 어쩔 줄 몰라 그곳을 가리며 도망을 치곤했었다. 그것이 점점 진화해 현대 의상이 됐다. 이제 사람이라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태초에 가리기 시작했던 신체가 남에게 보여서는 안 될 소중한 곳으로 생각해 이중 삼중으로 가린다. 그러던 것이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 이후 섬유산업이 발달하면서 옷을 만들어 입기 시작 해 20세기 중 후반 그 언젠가부터 의상이 다양화 됐다. 그러던 것이 2천 년 대를 전후 더욱 더 진화돼 특히 여성들이 신체의 일부분을 노출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이 점점 더해져 이젠 어깨와 다리 상당부분을 노출시켜 거리로 나와 활보하기 시작했다. 한해, 한해 세월이 지나면서 그것도 여성들이 가슴을 또 허벅지를 드러내 보는 이로 하여금 민망스럽게 했다. 이제 그것도 부족했던건지 2020년 3월에 찬기를 내 품은 바람이 가시지도 않고 꽃 냄새를 살짝 머금은 봄바람이 불자 그 바람에 홀렸는지 한곳에서는 남자가 또 다른 한 곳에서는 여자가 옷을 벗은 채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지난 3월 22일 울산시 남구 도심거리로 한 남성이 옷을 모두 벗어 버린 채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다 공연음란 등 혐의로 경찰에 의해 불구속 입건이 됐으며 또 같은달 26일에는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시내에서 대낮에 단발머리를 한 여성이 신체 전부를 노출한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했다. 웃지 못 할 일들이다. 우선 그들의 행동에 대해 이유야 어떻던 보통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말이 네가 뭔데 대낮에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해! 니들 풍기문란은 그만 두고 수치심 같은 것도 없어서 아니면 개돼지처럼 살고 싶어서였느냐 그 말밖에 해줄 수 없다. 아니면 흙을 밟지 못하고 흙냄새를 맡지 못해 환장을 해서 그런 거냐· 환장을 했다면 환장하게 만든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위해 시위라도 하기 위해서였는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해할 수 없으니 말이다. 알몸으로 보여서는 안될 곳 모두를 들어 내놓고 거리를 활보 하는 행동을 보이는 것은 그 원인 무엇이 됐던 해서는 안 될 행동이다. 설사 흙을 꽁꽁 봉해버린 도시화 산업화 그리고 과학문명 때문에 환장을 했다 해도 알몸으로 대낮 거리를 활보한 자체가 풍기문란 죄다. 그 짓을 보고 듣고 행여 따라 해서는 안 된다. 명랑하고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지켜야 할 윤리 도덕 지켜야 한다. 그리고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수치심 같은 것을 알아야지 그것마저 모른다면 어데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기에 감출 곳은 감춰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개·돼지나 다를 바 없다. 그것을 몰라서 대낮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한 건 아니겠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알몸으로 대낮에 거리로 나오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은 정신이상자나 할 짓이다. 환경오염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오락가락하니 사람도 가끔 정신이 이상 그런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이유야 어떻던 대낮에 알몸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행동은 절대 안 된다.
인간의 삶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되는 재화, 그 재화가 유혹을 낳는다. 유혹은 정의와 공정을 깨뜨리고 부정부패로 사회질서를 망가뜨린다. 그런 일련의 것들은 권력과 무관하지 않는다. 중국청나라 때 옹정황제는 부정부패와 맞서 싸우면서 고위직 관리들에게 재화에 대한 욕심과 외부의 유혹으로부터 끝까지 대항하라고 강력히 경고했다. 한번은 가까운 일가친척이면서 남달리 신임 했던 신하가 자식일과 관련해 청탁했던 사실이 알려지자 그 말을 듣고 옹정황제가 그 진위를 떠나 당장 관직에서 내 쫓았다고 한다. 또 헌종 때다. 헌종이 신임하는 유대하라는 신하가 있었다. 유대하는 재화로부터 유혹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자중자애의 정신을 철저히 실천한 관리였다. 또 그는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중국 역사상 최고의 청백리였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서 경제개발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재화가 범람하고 삶의 질이 크게 변하자 안타깝게도 사회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정부패가 만연됐다. 그래서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정쇄신이란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그 때문에 부정부패가 한 동안 수중 깊숙이 잠행 좋은 사회, 건전한 사회가 된듯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날이 갈수록 부정부패가 고개를 든다. 2010년대로 접어들면서 정의는 오간데 없고 공정은 말 뿐이다. 돈 앞에, 권력 앞에 모여든 날파리들이 닥친 데로 빨아치웠다. 빨다가 탈이라도 나면 난 아니야. 아니 다들 왜들 그래. 니들 살고 싶어· 살고 싶으면 조용히 있어. 그리고 끼리끼리 뭉쳐 놀아난다. 북치고 장구 치며 피리불고 상모 돌렸다. 와중에 백성들은 정부가 하늘 높이 던져주는 한 잎 돈을 받아 즐겁다고 흥얼거린다. 그 것을 받고 성은이 망극하다. 천년만년 하소서 그리고 또, 또 바라는 눈 깜박이며 문틀에 끼어 있는 홍두깨에게 묻는다. 중국 청조 효종은 청렴결백한 유대하를 신임했다. 중대한 정책마다 유대하와 논의했다. 유대하는 지혜와 충성심으로 황제를 보좌했다. 효종이 죽고 무종이 즉위하자 충직한 유대하를 눈엣가시로 여기던 자들이 무종에게 모함 불법축제자로 몰려 처형당할 뻔했다. 다행히 도어사의 반대로 사형을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를 당했다. 유배지에서는 사람들로부터 대 환영을 받았다. 유배지 사람들은 왜 아들과 함께 오지 않고 하인 한명만 데리고 왔느냐 물었다. 유대하는 내가 관직에 있을 때 자식일로 벼슬은 그만 두고 무엇 하나 부탁 한번 한 적이 없었다. 그런 자식들에게 유배지에 동행하자고 할 수 있었겠느냐. 그 같이 유대하는 자신은 물론 자식의 일로 청탁을 해 본적이 없을 정도로 청렴했다. 우리 위정자들 자신은 물론 자식들 관련 이런저런 의혹으로 사회적 지탄에 변명으로 일관한다. 그러면서 음해공작을 받는다고, 국민들로부터 터무니없이 모략을 받고 있다며 억울하다고 한다. 하지만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양심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양심을 버리면 인간쓰레기가 된다. 그들 상식 밖 짓 해놓고 걸핏하면 중상모략 운운하는데 국민들 그렇게 못되지 않았다는 것 알아야 한다. 중국 청나라 때 유대하 그는 음해공작으로 죽음에서 벗어 나 유배를 가면서도 변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청렴함을 알고 있는 유배지국민들이 대환영을 하며 극진히 모셨다는 이야기 우리 위정자들 귀담아 듣기 바란다. 권력과 재물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국민은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청렴한 정치인, 다시 말해 정치인이라 하면 정직하고 성실하며 국가와 국민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정치인도 인간이라서 혹자는 정의롭지 못하고 청렴 따위는 나 몰라라 하고 물들어 올 때 노를 저으며 좋은 음식이 있을때 배터지게 먹으려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정치인 그들 중엔 뛰어난 재능에 남다른 눈과 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책임 있는 언행보다는 아니면 말고 하는 그런 태도를 보이는 자가 적지 않다. 그 점을 두고 위대하다 해야 할지? 안타깝다고 해야 할지? 보통 비정치인 국민은 헷갈린다. 비정치인인 보통국민이 생각하는 정치인은 마치 장님으로 태어나 코끼리를 한 번도 본적이 없어 코끼리가 어떻게 생긴 줄 전혀 모르는 장님들과 같다. 코끼리를 보지 못했던 장님들에게 코끼리를 만져보고 무엇인지 말해 보라고 하자 머리를 만져 본 장님은 항아리라 하고, 귀를 만져 본 장님은 키질하는 바구니, 이빨을 만져 본 장님은 쟁기, 코를 만져 본 장님은 막대, 몸통을 만져 본 장님은 창고라, 다리를 만져 본 장님은 기둥, 허벅지를 만져 본 장님은 절구, 코를 만져 본 장님은 곤봉, 코끼리 숱을 만져 본 장님은 빗자루라 그렇게 각각 말했다. 이렇듯 국민이 정치인을 보는 게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인의 태도를 보면 그들의 진심을 알 수 없다. 비정치인인 국민들은 정치인이 하는 말을 듣고 마치 이솝이야기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에게 속은 순박한 마을 사람들 마냥 때지어 몰려다닌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양치기소년에게 계속 속지 않았던 것과 같이 국민들도 정치인이 하는 말에 계속 속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지금도 적지 않은 정치인이 국민에게 보인 거짓행태, 정직하지 못한 언행을 해놓고 실천하지 못한 그런 태도가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 된다. 사사로운 일에 공권력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민원이라면서 특정인의 권익에 개입 부당이익을 취해서도 안 된다. 정직 청렴 공정 정의로워야 한다. 사사로운 일로 정의 공정을 더 이상 나 몰라라 해서는 안 된다. 몇몇 정치인들 농간에 국민들이 속은 것 같지만 속지만은 않는다. 속은 것 같지만 속지 않는다는 것 명심해야 한다. 국민들은 일부정치인들이 하는 말을 듣고 때론 듣기 좋은 말로 어물쩍 얼렁뚱땅하는 데 그 말은 독약이라 생각해야 한다. 정치인 또한 하는 일을 두고 주변에서 듣기 좋은 소리를 하고 마음이 흡족하게 하면 그것을 칭찬만으로 듣지 말고 그것이 곧 자기 일생을 침독 속에 묻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 동안 많은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해왔던 탓에 국민 다수는 정치인이 하는 말이 양치기 소년이 했던 짓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태도다. 듣기 싫은 말을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 듣기 싫은 말이 덕을 쌓는데, 삶에 더욱 유익하다. 더욱 더 중요한 것은 비정치인이 보는 정치인의 태도다. 정치인은 언행이 다르며 행동보다 말이 앞서 자신이 한 말을 책임지려는 자세가 안 됐다. 그리고 걸핏하면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때론 억지 논리로 정의롭지 못한 것을 감싸고 국민들을 우롱한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내로남불 태도다. 그러면서 특권이 보장된 곳에서 당치 않은 말과 행동으로 국민들 보기 사나운 짓을 함부로 한다. 국민이 정치인을 그렇게 보고 그들이 하는 말을 그렇게 듣는다. 때론 그들을 보며 이탈리아의 그 유명했던 마피아를 떠올리기도 한다.
유가의 인정仁政과 덕치德治에 의하면 군왕은 힘이 아닌 덕으로 천하를 다스리라고 했다. 또 군신관계에 있어서도 자신을 낮추고 신하의 간언을 받아들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공자의 격언에 관측득중寬測得衆 관대함은 많은 사람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 청조 건륭제는 관대함과 엄격함 둘의 조화를 이뤄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청조 강희제는 지나치도록 관대했다. 그 결과 부정부패가 만행했으며, 옹정제는 지나치게 엄격했다. 때문에 폭동 등 큰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두 황제는 국민들을 편치 않게 했다. 그래서 건륭제는 관대함과 엄격함 둘의 조화가 곧 최고지도자가 갖추어야할 가치라고 했다. 최고지도자는 간언에 귀기울여야 한다. 간언을 무시한 채 귀를 막고 독선을 하면 잘못된 함정에 빠질 수가 있다. 조선시대 왕실을 둘러싼 당파로 청나라와 명나라에게 무차별 짓밟히고 결국 일본이 조선 왕비를 궁내에서 무참히 살해했다. 그것도 모자라 36년이라는 식민통치라는 결과를 낳았다. 임금 한 사람 때문에 국민 모두가 그것도 그 후세대들에게까지 고통을 안고 살도록 했다. 뼈아픈 이야기다. 또 건국 후 18대까지 열한 명 대통령 중 윤보선 최규하 대통령을 제외한 아홉 명 대통령이 불행을 겪었다. 임기 중 해외로 쫓겨나거나, 흉탄에 목숨을 잃거나, 감금되거나, 자식과 형제 친인척이 줄줄이 감옥을 가거나, 자살을 하거나 그랬다. 국민 모두가 그런 안타까운 광경을 보아야만 했다. 마치 대통령의 자리가 정치인의 불행한 말로로, 부끄러운 자리로, 국민들로부터 비난 받았으며 더 나아가 조롱걸이로 됐다. 이제! 불행했던 과거에 종지부를 찍자. 더 이상 그런 불행한 일이 없도록 하자. 결국 그들은 지도자가 갖출 인정과 덕치를 소홀히 하고, 관대해야할 때 관대하지 못하고, 엄격해야할 때 엄격하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러 부정부패가 만연하게 만들었다. 파벌 간에 암투로 정국이 마치 진흙땅 싸움판처럼 우리 과거가 그랬다. 그런 가운데 1960년대 이후 경제발전으로 물질문화는 선진국에 못지않게 발달했다. 문제는 정신문화다. 이젠 우리정신문화도 경제수준과 물질문화에 걸맞게 달라져야한다. 특히 우리정치문화 변해야한다. 소통하는 정치가 되어야한다. 소통을 소홀히 하면 잘못된 정보에 함몰돼 큰 실정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소통의 문을 활짝 열어 대국적 견지에서 화합과 협동으로 멀리 바라보는 정치를 해야 한다. 정치에서 소통은 인체의 혈관과도 같다. 인체에서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으면 동맥경화증 등 병이 생겨 목숨을 잃게 된다. 마찬가지로 정치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사회가 더 없이 혼란스러워진다. 요즘 국민 다수가 일련의 사태를 두고 걱정을 한다. 최근에 조은산이라는 사람이 청와대게시판에 시무7조라는 글을 올렸다. 또 다른 영남만인소라는 사람도 문재인정부의 중요정책과 핵심인사들을 비꼬는 내용의 청원 글을 올렸다. 그 글을 보고 박수를 치는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한다. 조은산이나 영남만인소를 꾸짖기 전에 그 청원의 글을 본 국민들의 심정을 헤아려 한번쯤 새겨 봄이 좋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이럴 땐 청조 건륭제처럼 소통은 물론 관대함과 엄격함 둘의 조화를 이룬 인정과 덕치에 의한 정치가 이뤄졌으면 한다. 그것만이 난국을 극복하는 묘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날 대통령 아홉 분이 겪은 그런 불행한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간곡히 아뢴다. 이제! 불행했던 과거에 종지부를 찍자.
노자가 말하기를 만물의 현상이 극도에 도달하면 되돌아오는 것은 도의운동이라 했다. 오르면 내리고, 가면 오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어 늘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말이다. 천하 만물天下萬物은 생어유生於有하고 유생어무有生於無라 했다. 즉 천하 만물은 유에서 생기고 유는 무에서 생긴다고 한다. 그렇듯 만물의 현상은 극도, 정점에 이르면 반드시 되돌아온다. 자유와 독재의 오고 감도 다를 바 없다. 이 세상엔 소유와 인권을 놓고 민주와 반민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로 갈린다. 그들의 변화과정에 사회주의가 있다. 이 또한 노자가 말한 도의 운동과 다르지 않다. 민주나 반민주, 자본주의나 공산주의 그 모두도 똑같은 시작점에서 두 갈래로 나눠진다. 그것이 극에 다다르면 다시 되돌아온다. 그 변화기에 낀 것이 사회주의다. 결국 도의 운동에 의해 되돌아간다. 근세 우리나라 우리민족의 운명 또한 그렇다. 1945년 8월 15일 이전만 해도 우리민족의 목표는 일제식민통치 이전으로의 독립이자 광복이었다. 그 광복이 되는 과정에 한쪽에서는 자본의 개인소유 자유민주주의를 또 다른 한쪽은 자본의 공유 공산주의를 선택했다. 자유와 독재로 갈렸다. 자본의 공유와 자본의 사유를 바탕 지속되는 과정에서 도의운동은 예외가 아니었다. 노자의 도덕경에서 말하는 유와 무의 대립관계는 모순동일성이 아니요, 모순화합성이며 투쟁이 아니요, 평화이며 견강이 아니요 유약이다. 그것이 바로 도의 작용이다. 마찬가지로 자본자유를 근간으로 한 한국의 일부 국민은 공유를 바탕으로 하는 공산주의 북한을 선호한다. 그것 도의 운동 일환이라 보면 된다. 하지만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그들도 언젠가는 후회를 하고 또 다시 자본의 사유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오고가는 것을 반복하게 된다. 도의 운동에 따라 계속해서 반복에 반복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혼란이다. 국가라는 하나의 틀 속에 수많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들 모두 도의 운동 수단이며 시기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마찰이 따른다. 사람의 능력은 각기 다르다. 산을 오를 때도 먼저 오른 사람이 있고 뒤에 오른 사람이 있다. 도의 운동 또한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민주에 대해 반민주로 사유에 대한 공유로 갈리게 돼 그 과정이 먼저인 사람과 뒤인 사람 간에 충돌이 이뤄진다. 그게 이념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이다. 무가 유에서 생기고 유가 무에서 생기듯 공유가 사유로 사유가 또 다시 공유로 돌고 돈다. 중요한 것은 체재이념으로 발전해 자유는 독재로, 독재는 자유로 그렇게 오고간다. 지금 한국인의 혼란이 즉 도의 운동 그 일환이라 보면 된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자신의 생각을 제3자에게 지나치게 강조해선 안 된다. 설사 자유가 독재로 바뀐다 해도 다시 자유로 돌아온다. 공유를 주창한 자 공유의 단점을 접하게 되면 그 땐 공유가 아닌 사유를 선호하게 돼 또 다시 돌아선다. 문제는 공유로 가고 공유에서 사유로 다시 돌아오는 사이 피할 수 없는 고통이 따른다. 지금 공유를 다시 말해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공산주의를 선호하는 자들은 도지동 도의운동보다는 사유에 대한 모순만 보고 공유 평등만을 장점으로 본다. 그래서 자유평등이 아닌 다른 선택을 추구하겠지만 사유를 거부한 공유가 절대적인 대안이 아님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도의 운동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유가 결코 최선만이 아님에 대해 주의가 필요하다.
그들의 뻔뻔함은 멕시코 판초빌라보다 더 하다. 판초빌라는 스스로 의적이라 했다. 백인대농장주의 재산을 털어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멕시코 혁명의 대부가 됐다. 그는 혁명을 성취한 3년여 만에 결국 암살을 당하여 삶을 마쳤다. 판초빌라는 도둑질과 강도짓을 하고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 그리고 혁명을 일으켰다. 혁명 후 어느 날 애인을 만나게 됐다. 애인에게 자랑을 늘어놓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쁜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고 남의 소중한 물건을 훔치고 빼앗았다. 그런 짓을 아무리 좋은 목적에서 했다 하더라도 그 수단과 방법이 정당하지 못하면 그 행위는 결코 좋지 못한 것이다. 좋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지만 사람을 죽이고 강도짓을 한 행위를 가지고 그것도 자랑이라고 하느냐· 난 그런 사고를 가진 인간과는 상대하기 싫다."고 말했다. 그러자 판초빌라는 되레 "나쁜 사람들은 가진 자들이다. 나는 정말 좋은 일을 했다. 많이 가진 자들 것을 가져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을 뿐이다. 그랬으니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는가·"라며 "오히려 나쁜 사람들은 가진 자들이다. 그리고 배가 고파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은 도둑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을 하자 옛 애인이 당신 같은 뻔뻔스런 나쁜 사람은 보기도 싫다. 어디서 만나거든 아는 척도 하지 말라 그리고 그 자리를 떴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판초빌라와 흡사한 도적이 있었다. 과거 임꺽정이 그랬고 1970년대 장충동주택가를 대낮에 떨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다녔던 도둑이 그랬다. 그들 모두 스스로 의적이라 했다. 그런데 요즘은 판초빌라나 임꺽정, 1970년대 장충동 부잣집을 털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준 그들 도적보다도 못한 뻔뻔스런 도적들이 곳곳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도적이란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만이 아니다. 권력을 훔치는 것 빼앗는 것도 도적이다. 훔친 권력, 빼앗은 권력으로 법질서 무너뜨리고 내로남불도 아랑 곧 하지 않고 '내가 누군데 당신 나 몰라·' 그러면서 권력을 이용해 위법 부당한 행위를 하고 그런 방자한 태도를 가진 어리석은 자가 만다. 이 땅에 그랬던 적이 있었다. 문제는 그 흔적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프랭클린은 "좋은 모범이 최고의 설교다." 라고 말하며 올바른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우리는 십 수 년 전 부터 경제적 후진성은 벗어났다. 중진국이 됐던 선진국이 됐던 경제규모로 보아 세계 200여 개 국이 넘는 국가들 중에서 10위권이라면 대단하다. 그렇다면 국민의식도, 정치수준도, 경제규모에 걸맞게 돼야 한다. 특히 위선자들은 잠시잠깐 국민들의 귀를 틀어막고 눈을 가리고 잔 꾀 같은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이 속는 것 같지만 속은 게 아니다. 거짓말로 동네사람들을 우롱하다 위기를 겪었던 이솝우화에 양치기소년이 돼서는 안 된다. 위선자들은 선량한 국민을 상대로 정직해야 한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한다. 신뢰를 잃으면 그것으로 끝장이다. 인간이 무엇을 했던 죽은 뒤 평가 훌륭한 사람, 아까운 사람, 그 말이 중요하다. 정승 집개가 죽자 조문객이 문전성시를 정승이 죽자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 않는 그런 인간이 돼서는 안 된다. 남달리 재물과 권력을 가졌다고 행동거지를 함부로 하고 국민들에게 못된 인간이란 욕 들어 먹으면 그런 것 아니한 것만 못하다. 그런데 요즘 그런 것 아랑 곧 하지 않은 뻔뻔한 인간들이 득실·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그럴까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동물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와 성실이다. 신뢰 신의를 위해서는 정직이 밑받침이 돼야하고 성실을 위해서는 근면이 함께해야 한다. 신의, 정직과 관련 전해 오는 이야기가 있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널리 알려진 이솝이야기 양치기 소년 이야기이다. 우화의 주인공 양치기 소년은 매일 양떼를 몰고 마을 뒷산에 올라가 풀을 뜯기고 돌보았다. 그런 그가 하루는 동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동네 사람들 도와주세요. 늑대가 나타나 양을 잡아먹어요." 그 말을 듣고 동네사람들이 몽둥이를 들고 마을 뒷산으로 몰려갔다. 늑대는 없고 양들은 평온한 가운데 풀을 뜯고 소년은 낄낄거리며 즐거워했다. 동네 사람들을 놀린 것이다. 동네사람들이 자기 말에 속아 몰려오는 것이 신이 난 또 얼마 후 똑같이 소리를 질렀다. 동네 사람들은 그 아이가 설마 또 거짓으로 소리를 지르지는 않겠지? 하고 다시 몽둥이를 들고 몰려갔다. 역시 거짓말이었다. 또 속았다. 소년은 동네사람들이 자기 말에 속아 몰려다닌 것이 재미가 났다. 그런데 진짜 늑대떼가 몰려와 양들을 잡아먹었다. 그래서 또 동네로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번에는 거짓말이 아니라 정말이라며 늑대떼가 몰려와 양을 모두 잡아먹어요. 도와주세요. 하고 소리를 계속 질렀지만 한 사람도 오지 않았다. 동네사람들은 또 저 아이가 거짓말을 한다고 지나쳐 버렸다. 사람들은 거짓말에 계속 속지 않는다. 한두 번으로 끝난다.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어떤 경우든 정직하지 못하고 신의를 잃으면 사람들은 외면을 한다. 한두 번은 속지만 더는 속지 않는다. 지금 위정자들 하는 말에 국민들이 속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계속 속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양치기소년과 같은 바보다. 한 마디로 어리석다. 특히 최근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이다. 5천만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마치 양치기소년이 동네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나 양을 잡아 먹어요'라는 거짓말을 한 것과 비슷하다. 그리고 몰려오는 동네사람들을 보고 낄낄대며 웃는 그런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정책은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 부동산정책은 읍면 동장이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대통령 혼자서 결정한 것이 아닌 백 수십 명 국회의원들이 모여 결정하거나 국무위원들이 모여 결정한다. 그런 중요한 정책을 국민 앞에 공포해 놓고 며칠 만에 또 바꿔 공포해 그게 3여 년 동안 2020년 8월 3일까지 스물세 번을 바꾸었으니 그런 정부정책을 누가 믿겠느냐 말이다. 대통령은 그렇다 치고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국토부장관 도대체가 무엇을 하는 건지 국민이 낸 세금이 아깝다. 그래서 코로나19가 광복절을 전후로 갑자기 확진자가 대폭 증가했다며 정부가 발표를 하면서 협조를 강조하자 그 말 어떻게 믿느냐며 한 말이 있다. 청주 사는 한 고등학생이 서울사랑제일교회는 물론 서울을 가지 않고 그날 그 시간 학교에 있었는데 서울 그 교회 간 사실이 있으니 코로나19검사를 받아야 한다며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무엇인가를 위해 크게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고 의심을 갖게 한다. 정부는 국민에게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되는데 이미 많은 신뢰를 잃었다. 아직 늦지 않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무엇보다 정부는 국민에게 진정성을 보이고 정직으로 대하여 신뢰부터 회복해야 한다. 그 길이 아니면 정부 따로 국민 따로, 그렇게 되면 모두가 고달프고 미래의 한국이 아닌 또 다른 국치가 오지 말라는 법 없다. 1910년 8월 29일 그런 날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함은 물론 죄를 지은 자는 어떤 경우라도 처벌을 받아야 한다. 지난 2020년 7월 2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일흔 여덟 살 된 한 노인이 2019년 11월 1만7천원상당 라면 커피 율무차 등 식료품을 훔치고 또 올해 4월에는 2만 원 상당의 시금치, 단무지, 반찬통 등과 40만 원 상당의 페인트 솔이 담긴 등산 가방을 훔친 죄로 재판이 있었다. 그 노인은 가난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남의 물건을 훔쳤다고 했다. 그 노인은 2005년 이후 19회에 걸쳐 남의 물건을 훔쳐 징역을 살았던 전과자로 정상참작가치가 없다며 징역 8월의 실형이 떨어져 구속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미국에서 1930년대 세계대공황으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 때 빵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잡혀 즉결재판에 넘겨져 재판을 받은 한 노파가 있었다. 빵을 훔친 절도범은 사위가 가출하고 딸이 병들어 눕고 어린 아이들을 딸이 돌볼 수 없게 되자 노파가 병든 딸을 돌보고 손자들을 키우게 됐다. 노파는 일정한 직업이 없고 가진 돈마저 바닥이 나 손자들을 굶기게 됐다. 더 이상 손자들을 굶길 수가 없어 빵집에서 빵을 훔쳤다. 그 죄로 재판을 받게 됐다. 판사에게 절도를 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한번만 용서해 주시면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빵집주인은 처벌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판사가 두 사람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다. "법은 예외가 없습니다. 아무리 사정이 딱하긴 해도 죄를 지었으니 벌은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노파에게 벌금 10달러를 선고했다. 그리고 그 판사는 가난한 할머니가 굶주린 손자들을 먹이기 위해 빵을 훔쳐야만 하는 이 비정한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그 동안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 온 판사 저에게도 벌금 10달러를 선고합니다. 저의 벌금으로 노인의 벌금을 대신 내겠습니다. 그리고 이 법정에 계시는 방청객 여러분에게 각기 50센트씩 벌금형을 선고합니다." 판사가 지갑에서 10달러를 꺼내 모자에 넣고 그 모자를 방청석으로 돌려 모금을 했다. 방청객들은 죄를 짓지 않고도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며 모두가 웃으며 돈을 주머니에서 꺼내 모자에 넣었다. 그렇게 모은 돈을 그 노파에게 주었다는 라과디아 판사의 미담이 전해지고 있다. 법의 존립목적은 악을 저지하고 선을 실현해 질서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 법은 국민 모두에게 평등함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법도 인간에 의해 집행이 된다. 법도 눈물이 있다는 말이 있다. 상습적으로 절도행각을 한 상습범에게 징역 8월을 선고한 재판이 잘 못 됐다고 보지는 않는다. 다만 그 죄인이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으면 안 되는 동기 등을 참작해 미국인 재판관 라과디아 판사처럼 할 수는 없었는지 그 점이 아쉬울 뿐이다. 더불어 법 존립 근본 취지와 같이 만인에게 평등한 법 집행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 점에 대해 아쉬움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나라 국민의 눈에는 법집행이 본시 취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느껴지게 법이 운영되고 있다. 한마디로 권력과 재물을 많이 가진 자, 그들에게도 지은 죄에 상응하는 벌을 가해야 하는데 그들에게는 관대하다. 권력이 있는 자 ,재물이 많은 자 모모 그들은 범법행위를 하고도 구속 재판은 그만두고 오히려 권력의 자리를 꿰뚫어 되레 큰 소리를 치며 살고 있다. 그래서 그 점과 비교하면 잘 못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는 세계 10위권 전후로 경제 선진국반열에 들어섰다. 국가나 국민들의 사고도 그에 걸맞게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인들로부터 추앙을 받는 국가가 될 수 있다. 어서 그런 시대가 오기를 바란다.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인간 바보들이 모여 광대놀이 굿판을 벌린다. 북·장구소리가 아닌 개 짖는 소리, 닭·소 울음소리에도, 불火에 달군 철판 위 개구리 날 뛰듯 하늘 높이 뛰고 또 뛴다. 그 광경이 뜨거운 물에 넣어 추어탕 끓이려 잡아 놓은 물통 속 미꾸리 같다. 그들 하는 짓이 굿판 광대놀이는 저리가라 한다. 21세기 인류의 모습이 그렇다. 특히 그들? 그들은 오직 정의보다는 네 편 내편이다. 똑같은 것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선악이 갈린다. 그들 사고로는 땅위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1만 원 권 지폐를 오른손으로 집으면 점유 이탈 물 횡령죄가 되고 왼손으로 집으면 "그래 당신 잘 했어"라며 손뼉을 칠 것이다. 그 뿐인가? 죄는 무슨 죄냐, 그 말 하는 자를 향해 정치탄압 한다고 그리 말할 것이다. 마치 사리분별도 못하는 바보들이 광대놀이를 하는 것 같다. 지금 우리사회가 그렇게 보인다. 옳고 그름이 따로 없이 똑같은 일이라도 누가 했느냐에 따라 칭찬을 쏟아 내기도 하고 죽일 듯이 다그치기도 한다. 로맨스, 불륜 따로 없이 내가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정말 편리한 사고가 들끓는다. 그런 그들을 그 누가 바보가 아닌 현명한 사람, 철인이라 하겠는가? 도학道學에 능한 철인은 도량이 바다와 같이 넓고 깊었다. 철인은 사람을 대할 때 자기만이 현명하고 고결한 체하지 않고 자기 역시 우매하고 혼탁한 태도를 취하여 그들을 안정시켜놓고 천천히 맑아지게 하며 그들을 편안하게 한 뒤에 그들을 움직여 천천히 살아가게 한다. 이러한 도를 보존하고 있는 철인은 남보다 잘 하려고 욕심을 내지 않는다. 잘하려고 지나치게 욕심 내지 않으며 항상 낡은 것도 아끼며 귀히 여긴다. 낡은 것이라고, 내가 하지 않은 것이라고, 저버리고 새로 이루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 이유인즉슨 모든 새로운 것도 반드시 낡아지기 때문이다. 보다 밝은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중요한 것은 바보 광대놀이 보다는 도량이 바다와 같이 넓고 깊은 도학에 능한 철인이 사는 세상이 돼야 한다. 위정자라면 그 정도 도량을 가진 철인이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내편 네 편에 매몰된 광대놀음이나 즐기는 자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정의는 어떤 경우도 멸하지 않고 살아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구환경 생태계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바보들 광대놀이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옳고 그름을 가려 행동하되 선동해선 안 된다. 그리고 현명함을 잊어서도 안 된다. 후회는 뒤에 오고 후회할 땐 이미 늦다. 되돌려 놓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희생이 있어야 한다. 행여 그런 생각이 있거들랑 깨끗이 씻고 바보 광대놀이를 그만 멈추어야 한다. 내편 네 편에 매몰돼 옳고 그른 것과 정의와 불의를 모르는 사람, 그들은 바보가 아니고 똑똑하고 현명한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리분별이 확실한 우리 모두는 그들이 하는 광대놀이에 함께 춤을 춰서는 안 된다. 좋은 세상을 싫어 할 사람은 없다. 바보가 아니고서야?
인간이라면 너나없이 장점도 단점도 있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칭찬할 만한 것이 있는가 하면 비난하기에 마땅한 것이 있다. 다만 만자로부터 칭찬받을 언행이 비난받을 언행보다 많으냐 적으냐의 차이다. 인간의 심리 중에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시기심이다. 그 시기심 때문에 남의 장점이 아닌 단점을 보는데 중점을 둔다. 그리고 단점을 들춰내 말한다. 그것이 험담이다. 그런 험담을 하는 것도 습관이다. 험담에는 침묵이 최선이라 한다. 험담에 침묵이 최선이라 하지만 침묵보다는 험담하는 사람의 장점을 찾아 칭찬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험담 비평을 하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상대방을 치켜세워주기 위해서고 또 다른 하나는 상대방의 가슴을 도려내려는 비판이다. 그런데 험담, 비판의 대부분은 후자다. 그런 비판 험담을 하기 위해서는 과장과 포장이 필요하다.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과장포장을 수반한 험담, 비판은 상대에게 적잖은 상처를 준다. 가슴을 도려내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남을 비판하는 사람, 비판을 즐기는 사람 모두 본인에게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속된 말로 개 눈에는 똥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또 도둑이 도둑의 심정을 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착하고 선한 사람에게는 남의 단점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비판과 험담의 목적 중엔 남을 냉소적이고 신랄하게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열등감을 감추려는 측면도 없지 않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실시하는 선거 때에 많이 사용하는 방법 중 하나가 비판이다. 아무쪼록 비판 험담은 좋지 않다. 길을 걷는데 개똥이 보이면 피해간다. 그 개똥이 무서워 피하는 것이 아닌 더러워 피한다. 마찬가지로 남을 험담 비방하는 사람을 상대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다. 더 좋은 것은 험담하는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험담 비방에 맞서다 보면 똑같은 사람이 된다.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평 험담을 해도 침묵하는 것이 좋다. 더 나아가 험담 비평하는 사람의 장점을 찾아 그래 그 사람 그래도 그 사람에게 이러 이러한 장점은 있어 하고 반대로 칭찬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우리 속담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것은 험담 비평하는 사람에게도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이열치열보다 묵묵부답 또는 칭찬을 한다면 더는 험담을 하지 못할 것이다.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는 "말해야 할 때를 아는 사람은 침묵해야할 때도 안다."라고 했으며 또 프랑스의 화가 보나르는 "침묵은 어리석은 자의 지혜, 현명한자의 미덕이다"라고 했다. 또 워싱턴은 "침묵이 험담에 대한 최상의 대답이다."라고 했다.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또한 중상모략에는 무죄인 사람조차 용기를 잃고 만다고 했다. 세계적인 많은 위인들이 험담과 비평에 대해 좋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런 험담을 선거 때만 되면 무차별로 너도 나도 하고 있다. 또 위정자들 사이 걸핏하면 험담을 퍼붓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 그런 험담 보다 칭찬을 많이 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것이 곧 희망이 넘치는 밝은 사회로 가는 길이다. 좋은 사회로서의 최선은 험담을 하지 않은 사회다. 그 다음은 험담에 침묵하는 것, 가장 좋은 것은 험담하는 사람의 장점을 찾아 칭찬하는 것이다.
중국 노나라 때 나라가 혼란스럽자, 뜻있는 제자가 공자에게 물었다. "왜 세상이 이리도 어수선합니까?" 라고 그러자, 공자가 "두소지인, 도량이 좁아 한 말 두되 짜리 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어찌 헤아릴 것이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위정자들을 빗대 했던 말이다. 마침 요즘 위정자들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공자가 말한 '두소지인'을 떠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인간은 태어날 때는 순수함, 선善 이외는 모른다. 그런 인간이 숨을 쉬게 되고 삶을 의식하면서 욕심이 가슴을 파고들었으며 욕심으로부터 즐거움을 갖게 됐다. 그 즐거움이란 선이 아닌 악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느꼈다. 그 즐거움이 곧 악을 선호하게 됐다. 2018년 2월에 한국에서 열린 올림픽 때 북한의 김여정이 왔었다. 당시 그가 북한에서 대단한 위치에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1948년 9월 9일 한반도 북위 38도 이북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운 김일성의 손녀이자 현 지도자 김정은의 여동생으로 출전선수를 이끌고 온 선수단의 일원일 뿐이었다. 다시 말해 김일성의 손녀며 김정은의 동생일 뿐 대단치 않은 나이 어린 20대 후반의 젊은 여인이었다. 그런 그를 대통령이 청와대로 초청해 외국 대통령처럼 대접을 극진히해 보냈다. 그랬으니 두소지인인 그가 생각하는 대한민국 국민, 대통령을 우습게 여길 수밖에?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고, 그의 눈에는 상대가 두소지인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20년 들어 때때로 공개석상에 등장해 문재인대통령을 비난하며 이웃집 개똥이 보다도 더 못한 취급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그런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는 걸핏하면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쏟아 낸다. 지난 2020년 3월 초에는 문대통령에게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 '완벽하게 바보스럽다.' '세 살 난 아이들의 행태' '겁먹은 개가 더 요란스럽게 짖는다.' 라 하더니 얼마전엔 전단 살포와 관련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못 본 척 하는 놈' '저능' '바보' '전단금지법 만들라' 또 그는 '더러운 개 무리 대갈통을' '철퇴로 대갈통을 부수겠다.' 또 2020년 6월 17일에는 '촬영기 앞에 만 서면 천진하고 꿈같은 소리만 토사하고 온갖 잘 난 척, 정의로운 척, 원칙적인 척하며 평화의 사도처럼 처신머리 역겹게 하고 돌아가니 그 꼴불견 혼자 보기 아깝다' '겁먹은 개' '바보' '저능' '잘난 척 정의로운 척.' 한다고 막말을 쏟아 냈다. 그런 일연의 것들이 모두 두소지인, 한 말 두 되짜리 인간 밖에 되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결국 우리대통령을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 우리 모두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위정자들의 언쟁을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되지만 도를 넘고 사리사욕에 갇힌 사적인 것으로 언쟁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 지도자다운 지도자, 위정자다운 위정자가 되기 위해서는 생각과 행동이 국민을 뛰어넘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국민보다도 못한, 철없는 아이들만도 못한, 언행을 하는 자가 가끔 있어 안타깝다. 뿐만 아니라 국가의 미래가 걱정된다. 그런 사람 때문에 모두가 한 우물에 갇힌 물고기 취급 받는다. 그 점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우리 국민을 얕잡아 보도록 한 것 그 책임 우리지도자, 위정자, 그 모두의 몫이다. 그 잘못된 것들 때문에 결국 김여정 같은 두소지인이 날뛸 수밖에, 우리 국민이 뽑아 놓은 대통령이 그렇게 보이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지금의 그들은 도대체가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 그들 맹사성 앞에 무명선사만도 못한다 해서야?
사람이 사는 곳 그 주변 땅을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봉해 버리고 고층아파트나 빌딩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흙을 밟지 못하고 흙냄새를 맡지 못하며 생활을 하게 된다. 수생식물이 아닌 대부분 식물은 흙이 없는 곳에서는 살지 못한다. 그런가하면 동물들도 흙을 밟지 않고는 다리가 약해 똑바로 걷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심하면 서서 걷는 것 자체가 쉽지 않다. 일정한 곳에 가두어 기르는 닭이나 돼지의 경우 닭장 또는 돼지우리 바닥을 콘크리트로 봉하고 그 속에 가둬놓고 키우면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돼지나 닭 하체가 약해 잘 걷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도 흙냄새는 물론 흙을 밟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육체적으로 허약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그 보다는 정신이 이상해진다.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 환장, 미처 버린다. 18세기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산업혁명은 물질이 풍부해 지고 먹을 것이 해결된 반면 환경오염 등 많은 문제를 야기 시켰다. 그 중 하나가 인구집중이다 인구집중은 도시화로 생활환경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도심 도로는 물론 인도 등 건물이 세워지지 않은 곳이면 모두를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봉해 버렸다. 게다가 지상에서 15미터를 초과하면 흙냄새를 맡을 수 없다한다. 그런데 문제는 도심의 땅을 봉해버린 것도 문제이지만 아파트 등 건물을 높게 지어 높은 곳에서 생활을 하는 점이다. 그렇게 되자 흙을 밟지 못하고 흙냄새를 맡지 못하며 살게 됐다. 때문에 정신질환이라는 환장증상이 나타났다. 20세기 이후 미국인 20명 가운데 한명이 일생동안 한 번꼴로 정신병원을 찾는다고 한다. 또 1939년에 발발한 2차 세계대전 중에 소집되었던 미국 군인 젊은이 6명 중 한사람이 정신병이나 정신박약자로 판명됐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 밝혀진 정확한 증거가 있는 건 아니지만 어렸을 적 흙을 밟지 못하고 흙냄새를 맡지 못하며 생활을 했던 관계로 정신적 불안에서 오는 공포와 번뇌가 그 주요원인이라고 전문가 다수가 주장을 한다. 특히 20세기 후반 이후 경제 선진국 또는 중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이상증후가 많이 나타난다. 정신질환자가 장소 불문하고 시도 때도 없이 이상증후를 나타낸다. 불특정다수를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거나 불을 지르고 자동차를 몰고 아무 곳으로나 돌진하는 등 돌발행동을 스스럼없이 자행한다. 또 특별한 이유 없이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상대로 강력범죄를 저지른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낳아 키워준 부모를 흉기로 때리고 칼로 찔러 살해를 하는가하면 자기가 낳아 키우는 아이를 죽여 유기한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며 산다. 그런가하면 진돗개를 숭배하며 키우면서 개 생일음식을 차려 놓고 예배를 보는데 세 살 난 아이가 울며 치근덕거리자 그 아이에게 잡귀가 들었다며 때려 죽여 유기했다. 그들 모두가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닌 정신질환, 환장을 한 것이다. 그 모든 것 흙냄새를 맡지 못하고 흙을 멀리 하고 생활을 한 결과이다. 그런 정신질환자가 급증한 게 산업화와 도시화로 생활공간의 흙을 시멘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봉해버리고 건물을 높이 지어 높은 곳에서 주로 생활하며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이기주의가 낳은 것으로 흙과 멀어진 생활과 무관하지 않다.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건전한 정신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그 점이 인간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흙과 멀어진 것이 정신질환자가 급증한 이유 중 하나다.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모두가 소중하다. 시간 또한 단 1초도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다. 다만 유의해야 할 건 시기다. 무엇이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적기가 있다. 적기를 놓치면 안 된다. 또 사람에게 욕심이라는 것이 있다. 욕심은 한계가 없다. 사람들은 말로는 만족하다고 그렇게 하면서도 더 많은 것에 욕심을 낸다. 결국 한계 없는 욕심 때문에 일이 잘 못되고 잘 못된 것이 불행의 씨앗이 된다. 현명한 사람은 물러서야 할 때다 싶으면 미련 없이 물러선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중요한 시기를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쳐 불행한 함정에 빠진다. 그게 모두 욕심 때문이다. 물러설 때를 놓치면 일생 동안 쌓아 올린 흔적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돼 버리기도 한다. 혹자는 과욕 때문에 물러나야할 때를 놓쳐 불명예스러운 일을 겪기도 한다. 미국 포드자동차회사 사장 아이아코카가 어느 날 아침, 창고로 쫓겨난 일이 있었다. 그는 이태리 나폴리출신 미국 이민 2세로 대학재학 중 포드 자동차회사에 학생 엔지니어로 입사해 트럭프레임 내부 철선 이음 쇄 캡을 부착하는 일을 시작으로 필라델피아 체스터지점에 정식 채용됐다. 세일즈맨으로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끈질기게 노력한 끝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그는 세일즈맨으로 결국 성공했다. 그는 고객과 상담에 앞서 고객의 옷차림, 헤어스타일 등을 세심히 살펴 순간 그 사람의 구매 성향과 경제적 능력을 알아내는 등 고객의 심리파악을 한 후 그에 적합한 제품을 권했다. 그 마케팅 전략이 적중, 실적이 좋아 입사 3년여 만에 펜실베이니아 주 윌크스베어 지구 지점장이 됐다. 하지만 지점장이 된 후 판매 실적이 뚝 떨어져 13개 지점에서 13위를 하는 수모를 겪었다. 그 때 비캄씨라는 동부지역지점장이 "누군가가 결국엔 꼴찌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두 달 동안 연속 꼴찌를 해선 안 된다. 인색하게 굴란 말이다. 그게 바로 돈을 버는 비결이다. 항상 이걸 기억해 두게. 모든 인간이 실수를 범한다는 걸 말일세. 문제는 대부분의 인간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데 있다네. 누구나 대게 실패하면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려하고 아내나 자식이나 기후 등에 그 탓을 돌리려 한단 말이야"라고 말했다. 아이아코카는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마다 비캄씨가 했던 말을 떠 올리며 더욱 열심히 노력해 입사 24년 만에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사장으로써 만족하지 않고 포드자동차회사를 설립한 포드가의 제3세 포드회장을 제거하고 자신이 회장이 되기 위해 이사들과 중역들을 규합했다. 그 과정에서 음모 사실이 알려져 포드회장이 비밀리에 이사회를 소집 아이아코카를 사장직에서 해임 물류창고에 자리를 만들어 그곳에서 근무하도록 조치했다. 아이아코카는 터무니없는 욕심을 갖고 물러서야할 때 물러서지 않으려고 모사를 하다 하루아침에 창고로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과욕에 묻혀 시기를 상실 불행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정치인들 가운데 과욕으로 끝이 명예롭지 못하게 물러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었다. 때를 놓쳐 쫓겨나거나 죽음으로 대신하거나 감금 제약된 생활을 하기도 그런 일을 우리는 보고 들을 수 있었다. 물러서야 할 때 물러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터무니없는 욕심, 과욕은 악귀를 달고 다닌다. 경우에 따라서는 버리고 털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지혜다. 과욕 때문에 불행을 자초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현명한 자는 과욕부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