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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축문화에 K-컬처를 입히다 6.군산 옥산서원·진안 수선루

지발위 공동주제 심층보도
소리로 열고 신선으로 닫다

  • 웹출고시간2026.09.07 16:01:29
  • 최종수정2026.09.07 16:01:29
배움의 소리는 바다를 건넜고 신선은 바위굴에 풍류를 새겼다.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의 글 읽는 소리가 당나라에 닿았다는 자천대와 신선이 노니는 곳이라 이름 붙인 진안의 바위굴을 돌아본다. 나아감과 물러남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여섯 걸음의 대미를 자천대의 배움과 수선루의 풍류에서 맺는다.

◇단군터에서 공자와 최치원이 한 울타리에

군산 옥구읍 상평리 광월산 자락에 이르면 여느 향교와 사뭇 다른 풍경을 만난다.

한 울타리 안에 대성전과 명륜당이 있고 그 위쪽에 단군을 모신 사당이 있다. 

그리고 고운 최치원이 글 읽던 정자까지 나란히 서 있다. 유교와 민족문화, 문장이 한자리에 겹친 이 존엄한 공간은 향교를 지나며 옥산서원으로 걸친다.

옥구향교는 태종3년 1403년에 세워져 1646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며 오늘에 이른다. 이곳이 특별한 까닭은 한 경내에 세 겹의 시간이 포개져 있다는 데 있다. 공자와 성현을 모신 대성전은 유교를 상징한다. 최치원 영정을 건 문창서원에는 문장의 뿌리가 있다. 향교 밖 오른편으로 오십 걸음 남짓 떨어진 곳에는 최치원과 옥구선현 열네 분을 모신 옥산서원이 자리한다.
전국 어느 향교에서도 보기 드문 융합적인 배치다. 공자를 비롯한 성현을 모시는 유교의 공간 안에 우리 민족의 시조 단군을 함께 모신 이 파격은 근원적인 사상을 받아들이되 제 근원을 잊지 않으려는 민족의 주체적 정신을 상징하고 있다.

향교는 앞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을 두고 뒤쪽 높은 곳에 제향 공간인 대성전을 앉힌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이다. 앞서 걸었던 전주향교가 평지에 앉아 대성전을 앞세운 전묘후학(前廟後學)이었다면 이곳은 광월산 자연 비탈을 그대로 살려 배움의 마당을 앞에 펴고 사당을 뒷산에 높이 받들었다.

명륜당 앞뜰에는 곱게 물든 배롱나무가 한여름 백 일에 붉게 피어있다. 글 읽는 선비의 소리가 마당을 환하게 밝힌다.
강학의 성지에서 가장 재미있는 이야기는 단연 최치원이다. 경내 한켠에 마주 선 이층 누각 자천대(紫泉臺)가 주인공이다. 소년 최치원이 아버지를 따라 이 옥구 바닷가에 살 때 자천대 정자에 올라 글을 읽었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낭랑했던지 바다 건너 당나라까지 들렸다고 한다. 이를 들은 당나라가 사신을 보내 그를 데려갔다는 것이다. 열두 살에 당으로 건너가 열여덟에 빈공과에 급제하고 '토황소격문'으로 천하에 명성을 떨친 그 최치원이다.

자천대는 본래 옥서면 바닷가 바위 위에 있었으나, 1934년 비행장을 넓히며 헐릴 위기에 처하자 지역 유림이 힘을 모아 향교로 옮겨 지켜 냈다.

최치원은 옥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그의 호 고운(孤雲)과 시호 문창후(文昌侯)를 따서 문창서원과 옥산서원에 그의 영정을 모셨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유불선을 아우른 풍류도의 시조인 그를 후학들이 이 바닷가 배움터에서 기리고 있다.

최치원의 출생설을 두고 전북과 예사롭지 않게 얽혀 있다. 그의 출생지는 경주 사량부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옥구에서 태어났다는 전승 또한 만만치 않게 오래되었다. 내초도에는 지금도 '금돈시굴(金豚始窟)'이라는 굴이 남아 이곳에서 고운이 태어났다는 전승을 전한다. 비범한 인물의 탄생을 기리려는 옛사람들의 마음이 깃든 이야기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유구는 그의 문집 '계원필경' 서문에서 최치원의 출생지를 경주가 아닌 옥구 일대로 보기까지 했다.

정읍의 무성서원은 최치원이 살아 있을 때 백성이 그의 선정을 기려 세운 생사당 '태산사'에서 비롯되었다. 1615년 태산서원을 거쳐 1696년 사액과 함께 무성서원이 되었다. 이 외에도 전북에는 최치원과 연결되는 장소로 십여 곳이 더 있다.
◇작은 정자 안에서 신선의 풍류가 자연의 향기와 함께 어우러진다.

연안 송씨 사형제가 아버지를 위해 효심으로 지은 유불선의 동굴 정자다.

섬진강 상류가 굽이도는 산기슭에 이르면 한 나그네의 눈을 의심하게 된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 절벽에 목조 정자가 쏙 들어앉아 있다. 바위가 지붕이 되고 굴이 벽이 된 집으로 수선루(睡仙樓)라 부른다.

수선루는 1686년에 연안 송씨 사형제가 늙으신 아버지와 그 벗들이 여생을 바둑 두고 시 읊으며 신선처럼 늙지 않으시기를 빌어 이 정자를 세운 것이다.

사형제의 효심(孝心)이 건축이 된 셈이다. 그것도 평범한 정자가 아니라, 세상에 하나뿐인 바위굴 정자로서 아버지를 위한 자식들의 지극한 마음이 특별한 집을 낳았다.

훗날 후손 송석노와 을사늑약에 항거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순국지사 연재 송병선이 중수하였다. 효심으로 세운 집을 지사(志士)의 손으로 다시 일으킨 것이다.

수선(睡仙)의 '수(睡)'는 누워 깊이 드는 잠이 아니라 앉아서 스르르 조는 얕은 졸음이다. 애써 잠들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는 신선의 무심(無心)이 그 한 글자에 담겼다. 잠자는 신선이라는 수선루 이름은 목사 최계옹(崔啓翁)이 지었다고 한다.

갈건에 베옷 차림으로 팔순이 되도록 아침저녁 이 정자를 오르내리며 노니는 노인들의 모습이 마치 진나라 말 난세를 피해 상산(商山)에 숨어 산 네 명의 백발 신선, 상산사호(商山四皓)와 같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신선이 낮잠을 즐기며 유유자적한다는 뜻이니 이름 한 자락에 이 정자가 지향한 삶이 다 담겼다. 속세의 공명을 좇지 않고 자연 속에 숨어 유유히 늙어 가는 삶, 그것이 수선루의 정신이다.
수선루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았다. 반듯한 터를 닦아 집을 세운 것이 아닌 바위가 생긴 그대로 그 틈과 굴에 기둥을 끼워 넣고 마루를 얹었다.

바위굴은 마이산을 이룬 역암이 오랜 세월 풍화하며 알갱이가 빠져나가 생긴 '타포니'라는 자연 구멍이다. 선조들은 이 천연의 굴을 깎거나 메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정자의 벽과 지붕으로 삼았다. 비정형의 바위틈에 맞춰 부재를 짜 넣은 장인의 솜씨는 무성서원의 곡선 대들보와 화암사의 굽은 기둥에서 거듭 보았다.

작은 건물 하나에도 자연의 결에 맞추려는 건축미학의 절정이다.

수선루 정면에는 섬진강 상류가 비단처럼 흐르고 뒤로는 푸른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다. 건물과 바위와 강물이 한 폭의 산수화로 어우러진다. 사람이 지었으나 자연이 완성한 집이다.

바위굴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은 수선루, 자연이 인간에게 내어준 자리를 알아보는 사람의 눈에 있음을 일러 준다.

옥구 자천대는 배움의 소리가 바다 건너 천하에 닿는다. 진안 수선루는 효심과 풍류가 바위굴 속에서 신선의 품으로 잠든다. 하나는 세상을 향해 소리를 내보냈고 다른 하나는 세상을 등지고 자연에 안겼다. 두 건축이 향한 곳은 결국 하나다. 유불선을 아우른 풍류도 효가 자연과 신선을 한 채에 묶어 녹인다. 여섯 걸음을 걸어온 마음 또한 결국 하나로 모인다. 진정한 건축은 자연을 이기지 않고, 사람을 밀어내지 않으며, 그 자리에 새긴 뜻으로 천 년을 견뎌내는 천년바위다.

공동취재단

충북일보:김용수 사진부 국장, 박소담 사회부 기자, 전은빈 문화부 기자

전북도민일보:이방희 디지털뉴스국장, 김상기 문화교육부 차장, 최진영 편집부 차장, 한신 편집부 차장 자문위원=백승기 건축사·도시공학박사·원광대학교 겸임교수, 박상일 청주대학교 명예교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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