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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6.09.03 14:34:07
  • 최종수정2026.09.03 14:34:07

정초시

후마니타스 포럼 대표

소크라테스의 절친이자 매우 부유했던 크리톤은 그가 독배를 마시고 죽기 며칠 전 간수들을 매수하여 소크라테스를 탈옥시킬 준비를 하였고, 이 사실을 소크라테스에게 알렸다. 크리톤이 내세운 논리는 간단 명료하였다. "소크라테스여 아직 할 일이 많이 있고 당신의 지혜를 필요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가서 더 많은 일을 해야하네" 지극히 실용적인 제안이지만, 소크라테스는 친구 크리톤에게 진지한 질문을 한다. "탈옥이 과연 정의로운가?"

최근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놓고 그 처방에 대해서 말들이 무성하다. 그런데 처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임시처방이 분명하다. 미봉책은 일시적으로 문제가 해결된 듯이 보이지만, 문제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 처방 없이는 마치 히드라의 머리처럼 계속 생겨난다.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SK Hynix와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는 AI 기반의 반도체 특수에 힘입어 천문학적인 영업이익을 창출했는데, 성과배분을 둘러싸고 노사간 갈등이 고조되었다. 결국 잘 나가는 반도체경기가 후퇴할까 두려워 조기봉합하는 방향으로 일단락되면서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많은 문제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반도체부문과 비반도체부문 간의 배분격차, 협력업체의 소외, 노동조합의 노동자연대의식 소멸, 고소득 노동계층 탄생, 노동자 간 소득분배 양극화 심화, 소위 반도체 특수에 따른 '칩세권'의 부동산가격 상승 등 수 많은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한국경제의 소득분배 문제를 본질적 차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분배문제는 고전적인 의미에서 노동과 자본의 갈등이 아니라, 능력주의에 입각한 분배원칙이 과연 공정한가에 대한 담론이다. 그러나 분배문제를 거대 담론으로 보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는 시도는 번번히 이념갈등의 벽에 가로막히곤 한다. 한국경제가 이제 경제대국 10위권에 있다는 점으로 고려하면 이제 이념의 옷을 벗고 분배문제를 사회적 담론으로 설정하여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때가 되었다.

다음으로 부동산문제를 생각해보자. 부동산 문제를 좁혀서 아파트를 포한한 주거용 부동산에 국한한다면, 2024년 우리나라 평균 주택보급률은 102.9%이어서 전국 평균적으로는 모든 가구가 1주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무주택자의 비율은 전국이 43.1%에 이른다는 것은 주택난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부동산정책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부동산규제 및 공급증가 정책인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지속적인 주택공급 증가에도 불구하고 무주택자비율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러한 사실에서 서울에 아무리 많은 아파트를 짓는다해도 서울로 몰려드는 잠재적 수요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며, 부동산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다.

부동산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국가균형발전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살지 않는다하더라도 지방에서 유사한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면 굳이 서울로 갈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나 국가균형발전은 오랜 화두였지만 번번히 정치적, 혹은 수도권의 저항으로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이제라도 본격적으로 국가균형발전의 화두를 다시 소환해야 한다.

우리 주변의 많은 정책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본질적 원인 및 해결책을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루려는 노력은 점차 희미해진다. 시간이 걸리고 난상토론이 불가피하여 국론분열 등과 같은 네거티브 선동이 있을지라도 문제를 덮어두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더 키우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편견은 고정관념을 낳고, 문제는 회복불가능한 상태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담론에 대한 진솔한 논의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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