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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아

청운중 전문상담교사

1월초 겨울방학식과 졸업식이 있던 날, 담임교사가 아닌 비교과 교사이기에 담당하는 학생이 없어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학기 마무리를 위해 근무를 하고 있었다. 겨울방학식은 여름방학의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 여름방학식에는 '2학기에 만나자' 라는 말로, 만남에 대한 확신으로 다음을 기약하지만 겨울방학식은 어쩌면 약간의 이별을 준비하는 그런 묘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평소 시끌벅적한 상담실의 분위기와 달리 적막했던 상담실에 한 여학생이 불쑥 찾아왔다. 그리고는 나에게 개인 사정으로 졸업식에 참석은 못하지만 올 한해 감사했던 담임 선생님께, 그리고 나에게 꽃을 전달해주기 위해 학교에 왔다며 꽃다발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그 학생은 올해 겨우 두 번 만났던, 그리고 이제 졸업 후 다시 못 볼지도 모르는 아이였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선생님, 인사드리러 왔어요" 라며 졸업식을 마친 한 남학생이 찾아왔다. 거의 매일 점심시간에 휴지를 빌리러 오곤 했던, 그리고 상담실에서 친구들과 보드게임이나 장난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아이였다. 거의 매일 만났지만, 개인적인 이야기는 해보기는커녕 늘 물건 던지지 마라 정리해라 쓰레기 버리지 마라 등의 잔소리만 해댔던 학생이었기에 참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방문이었다. "그동안 선생님이 해준 것도 없이 매번 잔소리만 해서 미안한데 이렇게 인사하러 찾아와줘서 정말 고마워"라고 인사를 건네자 그 남학생은 "아니에요, 여기가 있어서 행복했어요" 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다음에 스승의 날에 찾아올수도 있고요"라는 장난스러운 인사로 안부를 전하며 상담실을 떠났다.

가볍게 스쳐 지나가리라 의심의 여지도 없었던 학생의 꽃다발과 행복했다는 인사는 몇 주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곱씹어지는 기억이 되었다. 어쩌면 평생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지난 1년간 학교에서 근무하며 많은 아이들과 감정을 교류했다. 상담교사의 업무 특성상 마음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주기도 하며 마음으로 아이들을 만나왔다. 그 과정에서 화도 내고 눈물도 흘리면서 많은 학생들과 인연을 맺어왔는데, 막상 내가 어떤 도움을 주지도 않았는데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한 두 학생이 마음 깊이 울림을 준 것은 나에게 매우 진귀한 경험이었다.

매년 학교에서는 수많은 교사와 학생들이 만난다. 그 수많은 학생과 교사 중 한명으로, 학창시절에 그런 교사와 학생이 있었지라고 기억하거나 혹은 기억에 남지도 않을 수 있었던 가벼운 인연이 내가 교사로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한명의 어른으로서 가져야 할 인연의 책임감에 대해 일깨워주는 하나의 사건이 되었다. 그 학생들이 시간이 지나 내가 그랬었나· 혹은 그런 선생님이 있었나· 라고 기억도 하지 못할지언정, 나에게는 큰 무게감을 얹어주고 떠난 것이다. 과연 어떤 인연이 가벼운 것인가. 만나는 인연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한다고, 특히 교사는 내가 마음을 주는 만큼 학생에게 돌려받는 기브앤테이크가 아니라 아이들 개개인의 마음의 빈 공간에 자신이 필요한만큼 교사로부터 채워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졸업식 날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전한 인사는 "언제나 네가 행복하기를 기원할게"였다. 나와 만나 말을 섞었던 수많은 학생들은 물론 스쳐지나간 가벼운 인연들의 무게를 느끼며 그들이 언제나 행복하기를, 또 앞으로 만날 학생들의 행복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한다. 그리고 또다시 다가올 새로운 학생들을 만날 준비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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