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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주년 광복절>수년째 방치된 독립운동가 생가

옥천 대표적 독립운동가 김규흥 선생 생가 1년 내내 문 잠긴채 방치
생가 낡고 오래돼 누수 등 260여 년 된 전통한옥 원형훼손 우려
옥천군 등 모두 무관심 대책마련 절실

  • 웹출고시간2021.08.11 20:46:28
  • 최종수정2021.08.11 20:46:28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는 옥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김규흥 선생 생가 모습. 문이 닫혀 방문도 어렵지만 260여년된 전통한옥 원형 훼손이 더 우려되고 있다.

[충북일보] 충북과 옥천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범재 김규흥(1872∼1036) 선생의 생가인 춘추민속관 문향헌(聞香軒)이 1년 내내 문이 닫혀 있는 등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76회 광복절을 앞두고 김 선생의 생가를 방문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옥천군이 향토유적(제2009-5호)으로 지정해 놓았지만 뚜렷한 대책이 없다.

옥천군이 향토유적(제2009-5호)으로 지정한 김 선생의 생가는 지난 2003년 대전의 예술인 정태희씨가 다 쓰러져 가는 고택을 사들여 보수와 정비 등을 하며 관리했다.

이후 2015년 주인이 바뀌면서 현재의 소유주가 건물을 관리해 오고 있다.

그러나 소유주가 문을 닫는 날이 많은데다 연락도 쉽게 닿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상황에서 김 선생의 생가는 잡초만 무성한 상태에서 수년째 방치돼 있다.

1년 내내 문이 닫혀 있는 독립운동가 김규흥 선생 생가가 있는 춘추민속관.

ⓒ 손근방기자
김 선생이 태어난 문향헌은 옥천군 옥천읍 문정리 춘추민속관내 별관(건축면적 220㎡)으로 1760년(영조 36년) 문향 김치선이 건립한 260여년 된 유서 깊은 전통 한옥이다.

군은 보존을 위해 2009년 12월 28일 문향헌과 괴정헌을 향토유적으로 지정했다.

김 선생은 1872년(고종 9년) 이 고택에서 태어나고 생활했다.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김 선생은 광복의 대업을 도모하기 위해 고종황제의 특명을 받고 중국에 밀사로 파견된다.

하지만 사전에 발각돼 옥고를 치렀고 이후 1908년 중국으로 망명해 임시정부 도독부 총참의 겸 육군 소장 직을 수행했다.1922년 흥화실업은행을 설립해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집하는 한편 무관학교를 만들어 항일세력을 양성하다 1936년 중국 텐진에서 65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조선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신해혁명에 참여하는 등 김 선생의 독립활동은 중국에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독립운동가 김규흥 선생 모습.

정부는 김 선생의 활동을 뒤늦게 인정해 1998년 건국훈장애국장을 추서했고 지난 2010년 생가에서 후손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행사를 갖기도 했다.

정 씨가 이곳을 사들여 관리를 할 당시에도 건물이 워낙 오래되고 낡아 보수할 엄두를 내지 못해 사비를 들여 겨우 명맥을 유지해 왔다.

더욱이 건물이 향토유적으로 지정돼 개인이 손을 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는 동안 김 선생의 생가는 원형을 잃어가고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한다.

최근 지역에서는 김규흥기념사업회가 만들어져 김 선생을 재조명하는 학술대회, 기념비 제막, 평전 발간 등 활발한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

김 선생에 대한 재조명 활동은 활발한 반면 정작 보존돼야 할 생가는 아무런 대책 없이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김 선생의 후손이면서 기념사업회이사장인 김상승씨는 "증조할아버지의 생가가 아무런 대책없이 방치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고 밝혔다.

옥천군 관계자는 "건물 소유주가 연락이 닿지 않는 데다 보수지원 신청이 없었다"며 "향토유적이어서 군에서 풀 깎기와 건물청소 등을 틈나는 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건물을 보고 싶은 분이 있다면 열쇠를 가진 분에게 연락해 문을 열어 주도록 하고 있다"며 "건물관리 등의 문제로 군에서도 여러 각도로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옥천 / 손근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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