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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학생혁명 61주년, 유공자 인정 확대 촉구

'기록 없다' 변명 말고 '증언'도 수용해야
80대 청주공고 2학년 시위 참가자들
17일 모교기념탑 참배…'자유·민주·정의' 구호

  • 웹출고시간2021.04.18 18:50:17
  • 최종수정2021.04.18 18:50:17

1960년 4·19학생혁명 시위에 참여했던 당시 청주공고 2학년 김태형(왼쪽 두 번째)씨 등 5명이 지난 17일 모교의 4·19학생혁명기념탑을 참배하고 ‘자유·민주·정의’를 외치고 있다.

ⓒ 이종억기자
[충북일보]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혼의 하소연이 들릴 것이요. 해마다 4월이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되살아 피어나리라.'

청주공고 정원에 2016년 3월 15일 세워진 4·19학생혁명기념비 아랫부분에 적혀 있는 글이다.

4·19학생혁명 61주년을 이틀 앞둔 지난 17일 김태형(80·옥천읍)씨 등 청주공고 11회 졸업생 5명이 모교 4·19학생혁명기념비를 찾아 참배하고 '자유·민주·정의'를 부르짖던 그날의 절규를 되새겼다.

이들은 해마다 청주 상당공원에서 열리던 4·19혁명 기념식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생략되자 모교를 방문했다.

김씨 등 당시 청주공고 2학년생들은 이승만 정권의 3·15부정선거와 부정부패를 규탄하며 4월 13일과 4월 16일, 4월 18일 3차례 정권퇴진 시위를 벌였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이들은 이날도 "당시 청주공고 2학년생들이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는데 정부는 3학년 7명만 4·19혁명 유공자로 인정했다"며 "증거자료가 부족하다는 말만 되풀이 하지 말고 3학년 생존자들의 증언과 시위참가자들의 진술을 받아들여 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청주공고 당시 3학년으로 시위에 참여했던 10회 졸업생 박완규(79)씨는 본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김태형·김영한 등 2학년 후배들이 찾아와 이승만정권의 부정부패를 타도하는 시위에 3학년 선배들이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며 "2학년 가운데 김태형이와 김영한이 주도해 4·19혁명 시위에 앞장선 것은 사실"이라고 증언했다.

박씨는 "나를 포함해 오성섭 회장 등 3학년 7명이 유공훈장을 받았지만 2학년들은 내가 인보증을 섰는데도 모두 제외돼 안타까웠다"며 "이제 이들은 팔순의 나이에 접어들었다. 늦기 전에 정부가 생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유공자 조사를 다시 한다면 사실대로 증언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씨는 4·19학생운동 때 청주공고 3학년은 4월 18일 시위 때 참여했다고 확인했다.

정부는 2000년 4·19학생혁명 공로자를 국가 유공자로 예우하도록 법률로 규정했다. 그러나 청주공고 2학년 학생들처럼 4·19혁명시위에 참여하고도 대우를 받지 못하는 유공자들이 많다. 유공자 포상심사를 보훈처에 신청했으나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심사에서 탈락했기 때문이다.

4·19학생혁명 참가자들이 정당한 유공자 예우를 받을 수 있도록 특단의 조치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 이종억기자 eok5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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