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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등속 떡 이야기(1) '화병'

백 년 전 어머니의 기원(祈願)을 담은 떡

  • 웹출고시간2021.03.18 17:40:46
  • 최종수정2021.04.15 13:55:27

반찬등속

'반찬등속(饌饍繕冊)'은 충북 최초의 한글조리서로 1913년 청주 서강내일 상신리에서 고한글체로 쓰여 졌다. 100여 년 전 청주지역의 음식문화를 비롯한 풍속, 언어, 역사, 교육 등 여러 분야에 대해 기록하고 있어 그 가치를 인정받아 충북유형문화재 제381호로 2019년 지정됐다. 조리법 부분에는 김치·짠지류, 떡·과자류, 음료·주류 등 총 46가지의 음식을 만드는 방법을 기록하고 있다. 지명순 교수는 2012년 반찬등속 음식복원 및 재현 연구사업을 시작으로 해마다 전수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충북 향토음식 연구 및 계승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지명순

(사)전통음식문화원 찬선 원장/유원대학교 호텔외식조리학과 교수

[충북일보] 눈앞에 노란 세상이 펼쳐졌다.

어제 산책을 나갔다가 어느 집 담장 너머로 활짝 핀 산수유 꽃을 발견했다.

꽃가지를 몇 개 얻어다가 항아리에 꽂아 놓았다.

한참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화병'이라는 떡이 생각났다.

화병은 '반찬등속'에 나오는 떡인데 달걀지단을 묻힌 인절미이다.

마치 달걀지단이 노란 산수유 꽃잎처럼 노랗고 가늘다.

화병이라는 떡의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말이다.
한글로 '화병'이라고 쓰여 있지만 한자로 쓰면 아마도 花(꽃 화)와 餠(떡 병)을 써 "꽃과 같은 떡"이라는 의미가 담겼을 것이다.

반찬등속원문에는 '화병' 만드는 방법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인절미를 쌀 하나 없이 쳐서 인절미만큼 잘죽잘죽하게 만들고 또 좋은 고추를 실같이 오리고 또 달걀을 잘 부쳐 또 실같이 오리고 하여서 두 가지를 잘름잘름하게 잘라서 그 인절미에다가 털같이 색을 섞어서 부치고 파란 콩고물을 곱게 하여 그 인절미에다가 살짝 풍겨라'

화병은 보통의 인절미처럼 주재료는 찹쌀이다.

그러나 고물은 콩이나 팥, 흑임자와 같은 곡물 재료가 아니라 달걀을 사용하였다.

찹쌀과 달걀이 만나 합을 이룬 인절미는 어느 조리서에서도 기록을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조리법이다.

그래서 화병은 반찬등속을 대표하는 메뉴라고 자랑하곤 하였다.

하지만 '왜 떡고물에 달걀을 사용했을까'하는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100년 전 달걀은 귀한 식재료였을 것이고 귀한 재료로 만든 떡이니 귀하게 쓰여야 맞다.

인절미는 이바지 떡이나 잔치에 빠지지 않는 떡이다.

하지만 쉽게 상하는 단백질 재료로 만든 인절미는 멀리 보내기 적합지 않았을 것이고, 잔치에 사용할 만큼 많은 양의 떡을 만들기에 재료의 양도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또한 지단을 부쳐 실같이 가늘게 오려야하는 노동 집약형 조리법도 대량 조리가 불가능하게 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달걀을 '인절미의 고물로 사용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 하는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해 전수교육을 진행할 때 반찬등속 의 저자로 추정되는 진주 강씨 집안의 후손을 만나게 되었다.

본인의 집안에서는 아이가 생일을 맞으면 수수팥떡 대신 이 화병을 만들어 생일을 맞은 아이에게만 먹였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묶여진 실타래가 풀리고 어머니가 아이의 생일상을 차리는 그림이 그려졌다.

어머니는 성장기 아이에게 동물성 단백질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같다.

그래서 생일날만큼은 그동안 모아두었던 달걀과 찹쌀로 인절미를 만들어 축하 떡을 만들었던 것이다.

재료가 귀하니 많이 만들 수 없어 조금 만들어 생일을 맞은 주인공 아이만 먹게 했을 것이다.

아이를 위한 생일 축하 떡이니 모양과 색도 신경을 썼을 것이다.

달걀을 노랗게 부쳐 실같이 오리고 여기에 붉은색 실고추를 섞었다.

길쭉하게 썬 인절미를 고물에 굴려 털같이 묻혔다. 그리고 곱게 빻은 파란 콩고물을 살짝 풍겨 떡을 완성했다.

노란 계란지단 고물이 꽃잎이라면 빨강색 실고추는 꽃술이 되고 계란의 느끼한 맛을 잡아주고, 파란 콩가루는 잎을 표현하고 고소함을 더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른다.

자식이 건강하게 자라길 바라는 어머니의 마음이 달걀 인절미, 화병이라는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떡을 탄생시킨 것이리라.

화병은 백 년 전 조리서 속에서 잠만 자고 있기엔 너무나 귀하고 잊히기엔 안타까운 우리 떡이다.

어린 아이의 생일 날 화병을 만들어 아이의 건강과 봄꽃처럼 활짝 피어날 앞날을 축복해주었으면 하는 백 년 전의 기원(祈願)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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