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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원

수필가

요즘처럼 꽃이 슬픈 적이 있었나 싶다. 해마다 사람들을 불러 모으던 벚꽃 축제는 남쪽부터 줄줄이 취소되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부담스럽다더니 급기야 한창인 유채꽃을 갈아엎었다. 방송에서는 꽃구경을 컴퓨터로 즐기라며 영상으로 보여준다. 그러는 동안 혼자 핀 꽃들은 저희끼리 지는 중이다.

꽃이 피면 꽃구경을 하던 평범한 일상이 그립다. 자주 만나던 지인들도 만나기 어려우니 전화기를 들어 이심전심으로 안부를 묻는다. 학교에 가야 할 아이들은 집에서 컴퓨터와 핸드폰 게임만 하고, 일해야 할 남편은 파자마 바람으로 티비만 보면서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온종일 가족들에게 치여 짜증만 늘었다는 푸념을 들었다. 누군들 쉬운 하루겠나. 일상의 리듬이 깨지니 민낯이 드러나나 보다. 어떤 관계든 심리적 거리 만큼 물리적 거리도 확보되어야 편할 수 있는가 보다. 흐드러진 꽃조차 거리를 두고 지켜보려니, 갑갑증이 인다. 많은 사람이 자기 할 일을 제대로 못 하는 지금의 비일상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일상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예민하게 감정을 긁어대고 있다.

이력서를 스무 장이나 뽑아 흔들며 호기롭게 떠났던 작은아들은 캐나다에서 돌아와 자가격리 중이다. 매일 그 나라, 그 도시의 날씨를 체크 했지만, 기관지가 약한 아들의 건강이 늘 걱정이었다. 한국보다 늦게 시작된 캐나다에도 코로나는 하루가 다르게 퍼져 나갔고,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은지를 초조하게 물으며 아들의 빠른 귀국을 종용했다. 아들이 오는 동안 온 신경은 아들의 동선을 따라 움직였고 다행히 별 일없이 귀국했다.

마침 새로 지은 집으로 이사하기 전에 살던 농장 관리사에 살림살이를 그대로 두고 온 터라, 아들은 곧바로 그곳에서 격리상태에 들어갔다. 얼굴 한번 제대로 보지 못한 상태다. 문 앞에 먹을 것을 놓아두고 몇 발자국 떨어져 몇 마디 나눌 뿐이었다.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일주일을 보냈다. 코로나 때문에 '괜찮음'의 기준이 매우 낮아졌다. 그저 열나지 않고, 아프지만 않길 바랐다. 보건소에서 입국자를 대상으로 검체를 채취하고, 아들은 다음날 코로나 바이러스가 음성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내가 몸살 기운이 들었다.

점심때가 지났는데 전화를 받는 아들의 목소리는 비몽사몽 잠에 잠겨있다. '좀 일찍 일어나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꿀꺽 삼켰다. 저녁 무렵에는 반찬을 만들어 문 앞에 내려놓고 아들을 불렀다. 장발이 되어버린 머리칼이며, 길게 자란 수염이 자꾸 눈에 거슬렸다. 아프지 않기만을 바라고, 무사히 귀국하기만을 바라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자꾸만 잔소리가 나오려 한다.

어느새 "괜찮음"의 기준이 높아졌나 보다. 미국에서는 의료보험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한국인 청년이 진료를 거부당해 숨을 거두었다는 뉴스를 듣고 마음이 얼마나 아팠는가. 정부는 세계 여러 나라에 발이 묶인 우리 교민들을 데려오느라 전세기를 곳곳에 띄워 데려오고 있다. 모든 걸 마다하고 고국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은 한가지다. 내가 작은아들에게 바랐던 것처럼 안전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괜찮아?"

태어나 처음 겪는 이 불안하고 어수선한 세상을 견디는 모두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넨다. "많이 힘들지?"

바람에 벚꽃잎이 날린다. 흐드러진 꽃길에 걷는 이가 없다. 하지만, 머지않아 다시 걷게 될 꽃길, 조금씩 견디며 기다릴 일이다. 이사한 집 새로 만든 마당에 돌을 고르고 장미를 심고, 명자나무를 심었다. 앵두나무를 심고, 라일락을 심었다. 올해는 꽃을 피우지 못하더라도 내년 봄이면 붉고 탐스러운 꽃을 피우게 된다는 것을 알기에, 양파처럼 생긴 튤립의 알뿌리를 심고, 함박꽃의 구근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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