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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겨울연가 - 붓다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20.01.09 10:58:20
  • 최종수정2020.01.09 12:59:06
차창룡은 세속의 삶을 살다 불가(佛家)로 떠난 시인이다. 그의 시는 일상에 대한 해학적 성찰이자 욕망의 근원을 향한 사유다. 그의 시의 큰 특징은 현실에 대한 풍자와 익살이다. 현대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비꼬아서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시적 풍자는 날카롭고 통쾌하다. 똥의 상상력을 통해 그는 정치권력을 비꼬기도 하고 농촌의 현실을 신랄하게 폭로하기도 한다. 자조와 울분, 공포와 분노, 통렬한 웃음과 반성으로 세상에 대한 경멸을 드러낸다. 이때의 경멸은 세상에 대한 애착과 번뇌의 반영으로 세상을 저주하기 위함이 아니라 더 뜨겁게 사랑하기 위한 역설적 의식이다.

차창룡 시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삶과 죽음, 비속함과 고상함, 생물과 무생물 등 상반된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통합적 사유다. 그의 시 전반에는 만상은 하나의 몸이라는 불교적 세계관이 짙게 깔려 있다. 주야(晝夜)도 남녀도 하나의 몸이다. 따라서 생성은 소멸로 가는 길이고 소멸은 또 다른 생성을 위한 연기(緣起)의 여정이다. 고요한 산사의 정적을 깨는 목탁소리, 그 소리에 의해 만물은 갈라지고 깨지고 교감하여 다시 하나의 몸이 된다. 이처럼 그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늘 사색하고 성찰한다. 자연의 저 무량한 것들 속에 깃든 지수화풍(地水火風), 끊임없이 외국말로 지껄이는 계곡물소리, 햇빛에 증발해가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깊은 사색에 잠긴다.

붓다 - 차창룡(1966∼ )

당신은 누구의 화신도 아닌,

당신 자신입니다.

누구의 화신도 아닌 당신을

누구의 화신도 아닌 내가

사랑해도 될까요?

당신이 누구의 화신도 아니듯이

나도 누구의 화신이 아님에도

나 자신이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당신은 말씀하십니다.

당신 자신이신 당신을 만나기 위해

나는 사랑합니다.

나 자신일 뿐인 내가 사랑합니다.

당신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네가 아니다.
그의 시는 동양의 신화, 철학, 불교의 영향이 매우 크다. 여러 소재들 중에서 특히 나무와 물고기는 고통의 문제, 구원의 문제와 연계되어 자주 등장한다. 인도 신화 속의 마누 이야기, 덕이 높은 고승의 목탁 이야기, 중국 황하의 용문(龍門)협곡 이야기 등을 통해 고통과 구원의 문제를 파고든다. 그에게 나무는 고통의 수행자고 물고기는 신의 화신이자 어리석은 인간의 상징이기도 하다. 세속에서 열반의 세계로 인도하는 목어나 목탁 같은 일종의 이행(移行) 오브제들이다. 이 소재들은 고행(苦行)을 암시한다. 고행은 마음에 깃든 애욕과 물적 욕망을 자르려는 몸의 수행이고 시인은 그것을 고통을 치르는 겨울나무에게서 본다. 동상에 걸린 채 머리를 땅에 박고 눈을 이불 삼아 덮고 명상에 빠져든 겨울나무에게서 시인은 자신을 보고 희망을 본다. 겨울나무는 곧 수행정진 중인 붓다의 몸이자 경전인 것이다.

이런 소재들을 호환할 때 그는 과거의 인도여행을 통해 보고 들은 것, 온갖 생각들을 겹쳐놓는다. 그의 시에서 과거는 반복적으로 호출되는데, 이때 시인이 호출하는 기억 속의 과거는 명백한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 현재의 사유와 의식이 투영된 복합시공간이다. 즉 시인은 시를 통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불러들여 과거를 재창조하는 것이다. 그의 많은 시가 인간의 육체 내부로 사색과 상상을 펼쳐지는 것은 만물에게서 인간을 보고 소멸을 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과거를 다시 만드는 걸까· 육체 내부로 침잠하여 육체의 실상, 육체의 허위와 싸워 육체의 실상인 무(無) 또는 공(空)과 마주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그에게 육체는 항시 소화불량을 일으키는 곳, 수심이 가득한 곳, 허위로 가득 찬 환영(幻影)의 세계다.

차창룡은 시가 인간의 구원, 사회의 구원과 긴밀히 연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시인이다. 시가 단순히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제한되어서는 안 되고 우리 자신의 삶까지 구원해야 한다고 믿는 시인이다. 2010년 3월 봄, 그는 마침내 불도(佛道)를 걷기 위해 속세를 떠난다. 속세에서의 마지막 말을 남기고 해인사로 들어간다. 법명은 동명(東明).

"실로 꿈같은 길을 걸어서 나는 여기까지 왔다. 시인으로서 꽤 긴 세월을 살았다. 긴 세월 책과 씨름하면서 많은 것을 깨우치고, 문학을 가르치는 것에도 큰 재미를 느꼈다. (…) 부처님이 그러하셨듯이 나는 앞으로 끊임없이 길을 갈 것이고, 길에서 꿈을 펼칠 것이며, 길 위에서 생을 마감하리라."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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