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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청미천 갈대가 유유자적 흔들린다. 동영상으로 찍어 볼륨만 키우면 노랫소리가 들릴 것 같다. 자박자박 흐르는 냇물도 장단을 맞춘다. 장마철에는 시끄럽기만 할 뿐 음악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전형적인 생음악 분위기다. 팽팽한 하늘도 건드리면 줄 뚱기는 기척이 날 것 같다. 현악기 소리까지는 아니어도 푸른 물이 쏟아질 듯 경쾌하다.

엊그제 음악회에 다녀왔다. 가을이면 으레 한번쯤은 감상하는데 올해도 예의 고즈넉한 분위기였다. 격조 높은 실내 장식과 어우러진 클래식 음악에 차분한 가을 이미지가 한껏 고조된다. 봄도 여름도 아닌 가을에 듣는 느낌 또한 새삼스럽다. 누구나 시인이 되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가을밤의 선율이야말로 리듬을 타는 계절의 최고 효과음이다.

음악회 시간에 쫓겨 허둥지둥 들어갔을 때 본 노을도 잊지 못할 광경이다. 띠구름 사이로 이제 막 넘어가는 해가 보였다. 쑥쑥 잦아들던 게 마지막 구슬만 해질 때는 언제까지고 머물러 있다. 결국에는 서산마루에 지고 말 테지만 그렇더라도 아쉬운 듯 망설이는 풍경이 짠하다. 구름도 여느 때의 찬란한 느낌과는 다른 게 조락의 슬픔을 나누는 가을 이미지다. 노을도 가을이라 잿빛으로 울먹인다.

가을의 음악성을 보는 느낌이다. 산들바람에도 규칙적인 선율은 있었다. 초가을 피는 코스모스도 살랑살랑 움직였다. 물방울이 촉촉 묻어날 것 같은 꽃잎도 미세하게 반응한다. 가을이면 모두 그렇게 음악적 선율에 빠져 드는 것일까. 외롭고 쓸쓸한 계절이라서 그렇게라도 아쉬움을 달래는 것 같다. 시월에는 눈부신 단풍과 수확이 있었으나 지금은 무엇 하나 남은 게 없어 더 그랬다.

겨울에는 그나마 눈이라도 푸지게 날렸다. 이를테면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의 간이역에서 들은 것 때문에 더욱 감동이었다. 들판을 가득 채운 결실도 거둬들이고 나면 썰물로 빠져나간 갯벌처럼 썰렁할 때다. 단풍으로 차 있던 산자락 또한 그 새 헐거워졌다. 저녁바람에 가랑잎까지 날리고 보니 더욱 스산한데도 음악회를 앞둔 설렘은 모든 것을 잊게 해 주었다. 노을 속에 날아든 물새의 노래 역시 이 가을 하모니가 될 만큼 환상적이다.

음악과 함께 기쁨을 나누면 훨씬 가중되고 슬플 때는 후련해지는 마력 때문이다.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곡절에 시달리지만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모두를 잊는다. 음악 말고 그림이나 사진 등도 있으나 어딘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할 것 같고 결국 음악이 가장 임의롭다.

산들바람에도 규칙적인 선율은 있었다. 갓 피는 코스모스도 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움직였다. 닿기만 해도 물방울이 터질 것 같은 꽃잎 역시 미세하게 반응한다. 바람에 맞춰 움직이는 갈대 역시 비슷한 모양새다. 방향과 세기에 따라 각도가 바뀌고 언덕과 강변에 있을 때의 양상이 다르지만 율동과 박자에 민감한 가을의 면모 그대로다.

음악회가 끝나고 나오니 밤하늘은 잔뜩 흐린 채였다. 얼마 후에는 첫눈도 내릴 수 있겠다. 잠깐 날리기는 해도 대부분 십일월에 많이 내린다는 생각을 했다. 풀풀 연습처럼 날리고 말지만 그것을 필두로 많은 눈이 내리듯 감명 깊게 들은 음악회의 여운 또한 마중물이 되어 남은 겨울을 따스하게 데워줄 것으로 믿는다. 그 순간만큼은 꿈과 현실의 간이역에서 힘든 것을 잠시 잊곤 했던 것이다.

11월 또한 계절의 간이역이다. 정거장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승객이 많지 않은 시골 간이역에서 한눈을 팔다가 기차를 놓치기도 하는 것처럼 가을도 겨울도 아니지만 다 거두어들인 들녘의 풍경 또한 목가적이다. 시월의 음악회도 많았으니 늦가을이 더 기억에 남는 것은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혹은 외로운 대로 따스한 게 뭔지를 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의 접경지라 해도 겹쳐진 부위는 선명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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