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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어머니의 자궁을 보다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83

  • 웹출고시간2019.10.03 15:33:34
  • 최종수정2019.10.03 15:33:34
유홍준의 시는 고통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기억의 문장들이다. 생의 아픈 체험들이 남기는 독과 상처가 사실적 그로테스크 미학을 낳는다. 그의 시는 우리 일상의 삶 속에 내재된 다양한 죽음의 사건들, 삶의 통증과 비애를 수반하는 사태들로 채워진다. 그의 시에는 죽음을 환기시키는 상황과 생의 통증을 유발하는 장소들, 육질만 남은 야수적 인간과 인간의 모습을 한 사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생의 소멸과 고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며 대부분 시인 자신의 체험 장소, 직업현장에서 호출된다. 이는 시인에게 지나온 삶이 생산의 공간이 아니라 마모의 공간, 아름다운 온기의 공간이 아니라 차가운 상처의 공간이었음을 암시한다.

물론 기억은 인간의 무의식 속에서 선택과 배제의 과정을 거쳐 재구성된다. 과거의 것이지만 그 과거를 바라보는 시인의 현재의 몸과 의식, 주체의 욕망에 의해 기억은 왜곡되고 변형된다. 유홍준의 경우 많은 기억들이 고통과 비애, 분노와 참혹을 수반하는데 주로 아버지-어머니-나의 가족 삼각관계를 통해 이루어진다. 아버지는 생의 가혹함을 낳는 폭력적 주체, 어머니는 그 혹독함을 견디며 속울음으로 일생을 앓는 자,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속으로 울고 분노하고 자학하는 자로 그려진다. 집 떠난 아버지와 화상을 입은 채 굶주림과 가난을 견뎌야 하는 어머니가 대립관계에 놓이고, 그 사이에서 나는 어머니를 연민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공포를 드러낸다. 유홍준의 시가 삶의 불구적 장면들을 그로테스크 이미지로 드러내는 것은 이런 가족사적 배경 때문일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을 보다 유홍준(1962~ )

일흔네 살

어머니가 자궁을 드러냈다

수술용 장갑을 낀 젊은 의사가 냉면그릇 같은 데 담아들고 와서 보여주었다

마음이 참, 지랄 같았다

스텐그릇 안의

어머니의

계란, 자궁을 본다는 것

끼니때가 되어

어머니 뉘어놓고 길 건너 추어탕 집에 가서 한 그릇 밀어 넣었다

요때기마다 자궁 들어낸 여자들이 누워 있는 방으로 돌아와

등을 붙이면

따뜻하다 야근에

지쳐 녹아내리는 몸이여

문득 어디 생리중인 여자가 있어 울며 그녀와 살 섞고 싶다
그런 어머니가 일흔넷의 나이에 자궁을 드러내는 수술을 한다. 연로하신 어머니를 간병하던 시인의 모습도 떠오르고, 스텐그릇에 담아온 어머니의 자궁을 바라보는 시인의 참담했을 마음도 충분히 짐작된다. 마음이 참 지랄 같았다는 표현, 이런 상황에서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이런 비애와 고통의 상황에서도 끼니가 되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이고 현실이다. 이처럼 유홍준의 시는 사실적 체험과 관찰을 충격적 상황으로 제시하여 우리 삶의 세목들을 혹독하게 응시하게 한다.

그의 시는 검은 공포의 그림자처럼 어른거리는 얼룩진 기억들을 되살려내면서 시인이 마주한 삶의 참혹과 위악을 우리 또한 마주하게 한다. 독자 각자의 심부 바닥 깊숙이 가라앉은 기억의 침전물들을 떠오르게 하여 생의 근원과 죽음의 의미를 되묻게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시에 등장하는 낯선 장소, 인물, 사물 들은 단순히 현실을 재현하고 지시하기 위한 도구적 기표라기보다 삶의 핍진함과 참혹함을 드러내기 위한 해석적 기표에 가깝다. 상상에 의한 허구적 기표나 환상의 결과물이 아니라 시인의 절실한 몸의 파편들이고 상처의 흔적들이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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