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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거실 탁자에 바싹 마른 달팽이가 있다. 청미천을 돌아가던 중 풀밭에 뒹굴어 있는 것을 주워 왔다. 속은 텅 비고 껍질만 남았다. 나선형의 작은 집은 볼 때마다 생각이 많다. 서두르지 않고 살아 온 전적이 스쳐간다. 느리고 답답하다는 지탄도 받았을 것이다. 급하게 가는 남들과는 어울리지도 못하고 자기만의 속도를 굴리며 살아왔겠다. 남들보다 빠르지 못하다는 자괴도 많았을 텐데 아무리 속력을 낼지언정 속도 자체를 추월할 수는 없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달팽이 악보는 안단테로 시작한다. 안단테는 음악적 용어인 빠르기표의 하나로 느리게 혹은 걸음걸이 정도라는 뜻이다. 악상 기호 가운데 가장 오랜 역사를 갖는 거라면 다름 아닌 빠르기이고 연주에서 최고 효과를 낸다면 인생 또한 그 나아가는 속도와 향방이 중요하다.

달팽이가 처음부터 끝까지 느리고 차분한 뉘앙스라는 것은 언제 들어도 감동적이다. 말은 또 안단테라고 했지만 더구나 실제 그 이상 느린 것은 아닌가 싶지만 느린 만큼 빨라지는 걸 알기 때문에 굽힐 줄도 안다는 그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속도는 그렇더라도 안테나 같은 뿔을 세울법한데 있는 듯 없는 듯 묵묵한 기색이다. 투명한 껍데기에 힘을 주면 온 세상의 주파수를 집약시킬 수 있음 또한 알고 있다. 굽혀도 비굴하지 않고 천천히 가는데도 답답해 보이지 않는 미덕이 부럽다.

달팽이가 사는 집은 우주의 소품이다. 우주가 그의 소품인지도 모르겠다. 작고 투명한데다가 걸음까지 느리다. 무엇 하나 내세울 건 없어도 주눅이 들거나 하지 않는다. 모두가 서두르기만 하는 가운데 흔들림 없이 여유롭게 산다는 나름 운치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속도를 겨냥하는 자들이 지친 끝에 추구하게 될 느림표의 저력과 의미를 새길 뿐이다.

달팽이의 일상을 추적해 본다. 달팽이 과의 연체동물은 나사 모양의 석회질 껍데기로 둘러싸였다. 기어갈 때는 몸이 나와 껍데기를 지고 간다. 더듬더듬 뿔이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기울어질 듯 불안하다. 뒤미처 숨을 쉴 때마다 주변의 공기가 달팽이 허파에 빨려드는 느낌이다. 아주 작은 우주에 들어가는 미지의 존재를 보는 듯한 기분도 천천히를 강조하는 느림표 덕분인지 모르겠다.

우리도 추진력만 믿고 서두를 경우 무리가 따를 수 있다. 서두르다가 넘어지고 속도를 놓쳐버린다. 진정한 속력이란 속력을 내면서도 여파를 남기지 않을 때의 일이다. 일찍 끝내고 탈이 생기거나 한다면 정해진 시간 동안 알맞게 끝내는 것만도 못하다. 서두른 만큼 시행착오를 남기고 오류가 뜨는데 허구한 날 동동거린다.

가령 100m 달리기라면 최대한의 속도를 내야겠지만 마라톤에서 필요이상의 속력은 금물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달팽이가 속히 갈 경우도 어찌 보면 부자연스럽다. 달팽이라면 서두를 이유가 없고 그렇게 간들 길은 좁혀지지 않는다. 우리 역시 정확한 속도의 안배가 따르지 않고서는 공연히 숨이 차고 허덕이면서 피곤할 뿐이다.

달팽이의 속도는 그렇게 특별하다. 그 묘수는 즉 느리다고 해서 느린 것만은 아니라는 걸 드러낸다. 속도에 연연하는 사람은 지름길을 찾아 헤매지만 속도에 초연하다 보면 지름길이 오히려 느릴 수도 있음을 알게 된다. 집이면서 우주인 것과 비우면서 최고의 울림이 나오는 묘수도, 서두르지 않고 나아갈 동안 체득한 섭리다.

우리 과연 무엇 때문에 서두르는 것인지. 속력을 내서 달려도 대부분 정해진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서두르다 보면 멀리 가게 되고 그럴수록 제자리 찾아오느라고 힘들 뿐인데 지금보다 빠르게 더 멀리 가려는 타성이 달팽이 앞에서 부끄럽기만 하다. 달팽이집도 컴퍼스를 늘리면 우주만큼 확산이 된다. 작지만 위대한 게 있다. 미미한 나의 꿈도 그렇게 펼칠 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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