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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영

수필가

저녁을 먹고 여가를 즐기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충주에 사는 오빠다. 요즘 아로니아를 수확하고 있다며 이웃에게 얘기해서 팔아달라고 한다. 간곡한 부탁에 알았다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중간역할을 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어서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직거래는 우선 가격이 시장 가격보다 싸야 하고 농산물이 깨끗해야 한다. 그런데 오빠는 올해 아로니아 농사를 처음 시작했고 소량으로 하다 보니 포장 상자도 허술할 것 같았다. 제일 중요한 생육상태를 직접 보지 못했기에 더 망설여지는 이유다. '우리가 넉넉히 사고 언니에게도 부탁해야지' 생각하다가 오빠의 애잔한 목소리가 자꾸 생각나 마음을 바꿨다.

먼저 모임 카페에 광고를 올리고 동네 지인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생각보다는 주문이 많이 들어와 기분이 좋았다. 오빠와 카톡 방을 만들어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올렸다. 오빠가 낮에는 건축 일을 하고 저녁에 밭에 가서 주문량을 맞추느라 고생이 많다. 얼마나 힘들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며칠 후 오빠는 물건을 보냈다는데 받은 사람은 연락이 없다. 그래서 상품이 좋지 않은가 염려가 되었다. 내 예상대로 전문적으로 하는 농사도 아니어서 비닐봉지에 담아 우체국 상자에 포장한다는 것이다. 괜스레 주문한 사람에게 미안했다.

심심치 않게 주문이 들어오는데 주문을 받지 말라는 전화가 왔다. 물량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힘없이 들려오는 오빠의 말은 아로니아를 도둑맞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벼룩이 간을 내먹지 어떤 나쁜 사람이 훔쳐 갔는지, 왜 하필이면 왜 오빠네 것을……."

밤낮으로 고생하고 있는 오빠를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졌다. 나는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혼잣말로 욕을 해댔다. 아울러 오빠는 왜 그렇게 운이 없을까 원망스러웠다. 농산물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도 아니고 일 년 내내 고생해서 키운 것인데, 어찌 그 심정을 모르고 도둑질을 해갔는지 하도 억울하고 분하여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분통을 터뜨려 보지만 그럴수록 마음만 더 상했다.

이미 주문 들어간 일부는 보관해 두었다고 해서 주말에 언니 내외와 함께 충주로 갔다. 분식집을 하는 올케 언니가 혼자 동분서주하며 장사를 하고 있다. 예상대로 오빠는 주문한 아로니아가 모자라 다른 농가에 사러 가고 없었다. 나는 올케언니 일을 도와주기에 바빴고 그 와중에 자꾸만 에어컨이 고장 나서 애를 먹었다.

아로니아를 포장하고 있을 때 오빠가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아로니아 상자를 힘겹게 들고 들어서는 얼굴에는 땀이 맺혀있다. 오빠를 보자 올케언니는 작은 소리로 아로니아를 두 번이나 도둑을 당했다고 내게 말한다. 나는 또 울화통이 치밀었지만, 겉으로 크게 내색하지 못했다. 내가 속상해한들 오빠, 언니만큼 아픔이 크랴.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오빠 내외의 담담한 모습에 오히려 내 가슴이 더 아팠다. 그러면서도 덥석 도움을 주지 못하는 나는 겨우 농산물을 대신 팔아주는 것밖에 할 수 없어 미안했다.

태양에 그을린 깡마른 오빠의 얼굴이 오늘따라 더 검게 보인다. 허리도 아파서 구부정한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예전 부모님 그늘에서 같이 클 때는 공부도 잘하고 부지런하여 기대가 큰 오빠였다. 그러나 하는 일마다 뜻대로 되지 않아 엄마에게 늘 아픈 손가락이었다.

포장을 끝낸 오빠는 무엇 하나라도 챙겨주려고 주방 여기저기를 살피고 냉장고 문을 여러 번 여닫는다. 인정 많은 성품이 어디 가겠는가. 결국은 들기름과 고춧가루를 가져가라며 내놓는다. 살 없는 주름진 손이 내게 아픈 손가락처럼 느껴진다.

고맙다며 조심히 가라는 오빠의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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