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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여름의 추억 - 아가가 있는 풍경(어린 딸 해인에게)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 웹출고시간2018.08.02 17:26:12
  • 최종수정2018.08.02 17:26:12
[충북일보] 김승희는 야만의 원시세계와 참혹한 현실세계를 오가는 태양의 진자다. 그녀의 초기 시는 초현실적 이미지, 서구의 신화적 세계, 무녀의 힘이 지배한다. 1970년대 중후반 시인은 당대의 민족현실을 혐오하고 저주했는데 이런 현실인식이 역으로 서구 신화세계로의 몰입, 태양에 대한 상상력을 촉발했다. 즉 김승희의 초기 시에 나타나는 태양은 신화 속의 불에 대한 시인의 원초적 갈망과 암울한 현실에 내던져진 자신에 대한 부정과 파괴 욕구가 전이된 상징물이다. 빛, 불, 생명이 삼위일체 된 자유의지의 산물이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겪은 후 시인은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1983)을 발간한다. 이 시집을 통해 시인은 죽음에 대한 변환된 의식, 죽은 사람은 하나의 부재가 아니라 무수한 편재고 죽음의 세계는 추운 저승이 아니라 혼불들이 명멸하는 극광의 세계임을 드러낸다. 「아가가 있는 풍경」은 이 시집의 신비화음(2부)에 수록된 시다. 아가의 흰 기저귀가 나부끼는 곳은 어디든 반야의 나라, 순결한 천사의 나라, 성스러운 백야로 그려져 있다.

주목되는 건 흰 기저귀가 상징하는 순결성과 순수성이 잔악한 현실세계, 죄에 대한 회개가 없는 시대상과 극렬하게 대비된다는 점이다. 흰 기저귀에 자신의 죄 지은 손이 닿을 때마다 적막해진다는 시인의 반성적 고백이 잔잔한 울림을 준다. 빨간 옷을 입고 실로폰 치는 딸아이의 모습과 공중으로 퍼져가는 음악소리가 감각적으로 그려지는데, 이것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이 대목에서 나는 시인의 깊은 슬픔을 엿본다. 딸아기가 성장하면서 겪어나갈 비극과 고통의 현실을 예감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시 「엄마의 발」을 보자.

딸아, 보아라,/ 엄마의 발은 크지,/ 대지의 입구처럼/ 지붕 아래 대들보처럼/ 엄마의 발은 크지.// 엄마의 발은 크지만/ 사랑의 노동처럼 크고 넓지만/ 딸아, 보았니,/ 엄마의 발은 안쪽으로 안쪽으로/ 근육이 밀려 꼽추의 혹처럼/ 문둥이의 콧잔등처럼/ 밉게 비틀려 뭉그러진 전족의/ 기형의 발// … // 열개의 발가락들이/ 도화선처럼 불꽃을 튕기며/ 아파아파 울고/ 부어부엉 후진국처럼 짓밟히어/ 평생을 몸살로 시름시름 앓고//…//딸아, 보아라,/ … / 네 키가 점점 커지면서/ 그림자도 점점 커지는 것처럼/ 그것은 점점 커지는 슬픔의 입구,// 세상의 딸들은 하늘을 박차는 날개를 가졌으나/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날지를 못하는구나,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김승희의 시는 비극의 세계에 방치된 여성 나아가 인간의 실존과 부활을 지향한다. 휴머니즘 태도를 취하면서 달걀 속에서 어떻게 껍질을 깨고 대자연의 대지로 나갈 것인지 몸부림친다.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서 통념에 길들여진 모든 것과의 싸움을 통해 그녀는 다시 원시성의 세계, 유머의 세계로 진입한다. 냉소와 유머의 언어로 식민주의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타자들과의 연대의식을 드러낸다.

아가가 있는 풍경(어린 딸 해인에게) - 김승희(金勝熙 1952∼ )

기저귀가 인줄처럼 걸려 있습니다

흰 빨래 나부끼는 곳은

어디든지 반야의 나라입니다

아무리 눈을 감아도 신비처럼 어둠이 없는

성결한 백야입니다

거울의 門입니다

순결한 것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죄를 지었다 해도

크레졸을 푼 물에 깨끗이 담가

다시 순결해지는 것은 더 아름답습니다

마당에 나부끼는 하얀 기저귀는

나의 마음입니다

죄지은 손가락이 그 하얀 빨래에

닿을 때마다

나의 마음은 신안처럼 외로워집니다

자꾸만 적막해집니다

영원히 실수하는 나의 마음을

세숫대야에 담가놓고

요술글자처럼 빨간 옷을 입은 나의 딸이

실로폰 치는 것을 바라봅니다

음악이 기포처럼 날아갑니다

오선지처럼 빨랫줄이

깃을 텁니다

하얀 만다라의 나라,

실타래처럼 순결한 음악의 무지개를

천사들이 나와

빵처럼 뜯어먹고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그녀의 시는 통념적 가치와 문명의 규율로부터 벗어나려는 혹독한 시간의 기록물, 자기투쟁의 비밀일기다.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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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