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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산기슭 바위틈에 다북쑥 일가족이 산다. 이 빠진 창칼로 도려내면 얼비치던 푸른 잎사귀. 우리 집 뒤뜰만이나 할까, 올망졸망 언덕은 꿈꾸는 짐승처럼 엎드렸고 산자락 숨은 그림같이 예쁜 집. 까치발 들면 하늘이 닿을 듯 가까운, 거기 비탈에는 옥수숫대와 낙엽이 수북하고 들출 때마다 모듬모듬 연하게 삐져나오던 다북쑥.

보통 4월 초가 되어야 뜯지만 양지쪽에서는 3월에 벌써 촉을 틔우는 녀석도 있다. 덤불은 까칠한데 비집고 나온 쑥은 뜻밖에 탐스럽다. 에둘러 생각하니 이 빠진 옥수수가 대궁에 붙은 채 굴러다녔었다. 작년에 심은 옥수수를 뽑지 않고 둔 것이 낙엽과 함께 이불자락마냥 착 덮이면서 아늑한 보금자리가 되었겠지. 얼기설기 옥수숫대는 바람을 가려주기에 넉넉했고 곰삭은 대궁은 푸릇푸릇 자라게 하는 거름이 되면서 보기 드문 풍경을 드러냈다. 바람은 차가워도 햇살은 따끈따끈 도탑기만 했다.

가령 땔감으로도 좋을 텐데 두둑에서는 훌륭한 덮개가 되었다. 마음 푼푼한 주인 덕에 봄나물 모두가 호사를 누리고 있었던 것. 더러는 알뜰히 거두지 않아 남기도 했을 텐데 그래서 다북쑥이 번성하게 되었다. 수많은 땅콩 껍질 역시 겨울을 나고도 뽀얗다. 일부러 남겨 두기라도 한 것처럼. 가끔 새파란 꽃다지가 추운 듯 파고든 걸 보면 옥수숫대 흩어진 자리의 쑥은 편해 보인다. 삭풍에도 깨가 쏟아지게 살았을 것이다. 봄나물 캐는 나 때문에 둥지 속 행복은 깨졌으나 입춘까지도 오순도순 재미있었을 테니.

골짜기를 돌아가면 자갈밭이다. 다북쑥에 팔려 있던 중 돌밭에서 실하게 자란 움쑥을 보았다. 파랗게 예쁜 다북쑥은 산 쑥의 예명이고 전형적인 봄나물 맛이라면 움쑥은 굵은 뿌리에 싹이 연했다. 산자락 가까이 바글바글한 무리는 또 머쓱한 게 실나락처럼 가늘다. 생김은 다르지만 세월이 가면 굵은 뿌리가 알토란처럼 얽히는 등 눈에 띄게 자라날 것이다.

옥수숫대와 검불이 날리면서 아늑해진 것과는 달리 이 곳은 따스한 게 탈이다. 슬픔과 불행 속에서도 이따금 소망이 움튼다면 행복한 날들일 때는 거꾸로 불행이 싹트기도 한다. 부드럽고 안정된 분위기는 고인 물처럼 지저분하게 되지만 그래서 거센 바람도 불 수 있다면 그게 정석이다. 어수선한 중에도 이따금 물갈이가 되는 그 때문에라도 꿋꿋이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려움 또한 인격적으로 승화되는 과정이었기에. 묵은 쑥덤불처럼 완강한 것도 있으나 잠깐 접어 두면 흙 속에 묻혀 연한 싹을 내듯 부드러워지기도 한다. 여기서도 운명이 작용한다면 순하게 지나갈 경우 두텁게 덮이지도 않고 싹 틔우기도 어렵다. 시련도 푸르게 돋아날 소망 때문에 더 모질게 굴었던 걸까. 한 치 앞도 모를 어둠 속에서 빛이 보이고 막다른 데서 길이 나온다. 날아들 검불조차 없이 썰렁한 초봄에 잎을 내는 비알밭 쑥처럼.

한낮이 겨웠다. 봄볕이 찰랑일 동안 바구니도 어지간히 찼다. 다닥다닥 씨앗을 들이부은 듯해서 다북쑥이었나· 바구니에 가득 찬 쑥을 보니 다북쑥 마을의 봄을 깡그리 캐 담은 것 같다. 쑥버무리를 찌고 개떡을 만들어 먹을 생각에 벌써부터 설렌다. 쑥을 씻어 체에 밭치고 물기를 빼서 잠깐 두어야겠지. 쌀가루도 체에 한 번 더 내려서 쑥과 설탕과 소금을 섞은 뒤 면 보자기를 깔고 찌면 봄내음이 쑥내음으로 넘쳐날 것 같은데.

3년 묵은 쑥이 7년 묵은 병을 고친다고 봄이면 뜯어먹는 쑥. 손톱만치 삐져나온 다북쑥처럼 갓 돋아난 봄도 앙증스럽다. 힘들 때도 소망을 새기며 살아야겠지. 꽃샘추위를 무릅쓰고 덤불을 비집고 나온 쑥처럼. 저기 잔설 희끗희끗한 응달에도 봄볕은 스며들고 아지랑이 한 모숨도 골짜기 파고드는데. 봄도 그렇게 자랐으니까. 덤불 속에서 봄을 준비해 온 다북쑥처럼 눈 속에서 꽃망울 새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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