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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거실의 난초에 꽃망울이 맺혔다. 금방 피겠다 싶어 볕 잘 드는 곳으로 옮겼는데, 닷새가 넘었건만 입을 꼭 다문 채 필 기미가 아니다. 이상하다 여기며 속을 끓이다가 기왕 볕을 쬘 거면 창가에 내놓기로 했다. 그렇게 이틀 후 마침내 꽃이 피었다. 화려하지는 않아도 꽃이 귀한 겨울에 특별한 아름다움이다. 좋은 꽃 보려거든 창가에 내놓으라고 했지. 서늘한 것도 부족해서 찬 기운을 돋우고 이슬까지 맞히라 했다. 우리 역시 향기로운 이름을 위해 나름 견디며 살아야 되는 걸까. 뭔가 이루려 하면서도 조건만 따지는 우리를 타박하는 것 같다.

현관에도 화초가 몇 그루 있다. 새벽으로 성에가 끼어 그런지 금방 물을 준 것처럼 촉촉한 귤나무. 잎이 두꺼운 동백은 참기름이나 바른 듯 반짝인다. 거실의 화초와는 달리 열흘 남짓 물을 주지 않아도 깔축없이 버틴다. 바깥의 찬 공기와 거실의 훈기가 어우러지다 보니 유리창에 엉긴 물방울이 수분조절을 한 듯 제철같이 푸르다.

바깥 공기와 거실의 훈기가 만나면서 이슬이 맺히곤 했으나, 기실은 초겨울 화초를 들여올 때마다 밖으로 내몰린 처지다. 거실보다는 훨씬 추워도 월동 상태는 오히려 괜찮다. 웃자란 거실의 화초는 봄에 내놓을 때마다 시들지언정 마디게 자란 현관의 화초는 금방 촉을 틔운다. 따스하면 웃자라게 되므로, 추워도 얼지는 않고 훈훈해도 떡잎은 지지 않는 창가와 현관이 최적이었다. 한겨울 단아하게 핀 꽃들을 보면 추위도 일조를 한 것 같은데……

얼마 후에는 선인장도 피었다. 커다란 화분에 얹혀 사는 더부살이고 딱 세 송이였건만 문틈의 동냥 볕을 받아 가까스로 핀 게 보석처럼 빛난다. 자동차로 열 시간을 달려도 끝이 없던 모래벌판의 선인장이 생각난다. 가로등처럼 우듬지에 등잔만한 꽃이 핀 선인장이 있고 알뿌리처럼 둥글게 올라가 피기도 했다. 기면서 피는 꽃들은 진주알처럼 예쁘고 용설란은 드물게 풍성했다. 물 한 모금 없는 사막에서 피어 더 예쁜 것처럼 한겨울 간신히 피어 그리 고왔다는 느낌.

거실의 난초와 탁자의 선인장으로 겨울이 잠깐 훈훈해지듯 지루한 여행에서의 그것은 신선한 아름다움이었다. 거기서 피는 것도 놀랍거니와 무료해질 만하면 눈에 띄는 것 역시 섭리다. 겨울에도 꽃은 피듯 구름 낀 하늘에도 별이 뜬다. 꽃길에도 잡초가 무성하고 자갈이 있다면 사막에서도 꽃은 피고 물이 난다. 추운 창가든 메마른 사막이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꽃으로 핀다. 소망은 어디에나 있다는 듯이 그렇게.

찬바람에 떨고 이슬에 젖을 줄 알고도 서리를 맞히면서 좋은 꽃 보기를 소원하듯 삶의 향기는 역경을 극복할 때 나온다. 겨울내기 화초도 영하로 떨어지는 현관에서 꽃을 피우고 싹을 내밀었으니 추위를 피해 들어 온 은신처에서도 꿈은 버리지 않았다. 꽃잎 한장 보려고 창가에 내놓듯이 고귀한 삶을 추구한다면 운명도 피할 건 아니다. 비좁은 거실에서 쫓겨나왔으나 오히려 푸르러지던 꽃나무처럼 힘들 때도 자기만의 완충지대는 있을 것이기에.

썰렁한 창틈이나 현관에서도 꽃은 피듯 힘든 삶도 가끔은 절박한 감동으로 남는다. 창가가 아니어도 피기는 했겠지만 그윽한 내음은 가당치 않았을 것 같다. 볕이 좋아 소담은 할지언정 겨울에도 향기로운 꽃으로 피기는 어렵다. 향이라 해도 차가운 속에서 엉긴 내음은 격이 달랐을 테니까.

한송이 꽃조차도 찬 이슬과 냉기를 받아 피었거늘 삶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중창이라 얼지는 않아도 밤이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곳에서 아주 예쁜 꽃망울을 새기듯 어려운 상황 역시 인격 성장의 계기로 삼고 싶다. 찬바람에 떨고 이슬에 촉촉 젖을 것 알고도 좋은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밖으로 내놓듯 삶의 향기를 위해 무엇이든 감수하는 날들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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