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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불현 듯 긴장을 깨고 들려오는 차분한 멜로디. 나름 조율이 끝나고 반주와 함께 연주가 시작되는데 듣기가 어째 거북하다. 얼마 후 연주자가 음향기기 옆으로 가서 뭔가 귀띔을 하고 있다. 갑자기 장내가 술렁거렸으나 곧 이어 새로운 반주와 함께 울려 퍼지는 장중한 클라리넷 소리.

모모라 하는 가수의 연주는 수준급이었는데 참으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연주자가 원했던 악보가 아닌 엉뚱한 반주가 나온 것 같다. 아마추어도 아닌 프로 가수다. 잘못 와전이 되면 실력을 의심하게 될 만치 심각한 사태로 번질 수 있다. 특별히 오프닝 쇼로 색소폰을 연주했던 몇 몇 사람은 가수가 어찌 저런 실수를 하느냐고 대뜸 비난이다. 그럴 때는 보통 연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악기를 다룰 줄 안답시고 얼핏 속단했는지 모르겠다.

절대 음감이 있을 경우 반주와 상관없이 즉흥적으로 맞춰서 연주가 가능하다. 가령 교회에서 예배를 볼 경우 반주자가 오기 전에 찬미를 시작할 때가 있고 뒤늦게 와서도 무난히 반주를 하곤 했으나 연주자로서는 평소 익혀 온 멜로디가 만만한 법이다. 상식적으로는 가당치 않은 일이었으되 사설 요양원에서 개최한 소규모 음악회다. 조촐한 행사에 안면이 있는 가수를 청한 것인데 오류가 나왔다. 규모가 작아서는 아니었으되 내막도 모른 채 속단을 하고 그나마 연주를 끝낸 가수가 입장을 밝혔는데도 수긍하지 않다니. 똑같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으면서….

늦깎이로 시작한 열의는 좋았는데 남을 비난하면서 본인들 자질까지 의심받는 결과를 낳았다. 멤버들의 평균 연령 또한 50대 후반이다. 음악적 소양은 타고 났다 해도 기량 발휘가 쉽지 않은 나이다. 문외한인 처지에 실력 운운은 가당치 않으나 모처럼 들은 명곡의 뛰어난 수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처음에는 단순히 착오였는데 실수를 빌미 삼아 얕보다니. 실력자가 쩔쩔매는 것을 보면서 부족한 실력을 덮으려는 심리가 작용했을까.

혹 그럴 리는 없겠지만, 옥의 티 같은 실수로 진정한 실력자가 곤경을 치른 게 영 잊히지 않을 것 같다. 그 가수 집에 가서도 얼마나 찜찜했을까. 스스로 말했듯이 원장과의 친분 때문에 어려운 걸음을 했을 텐데 무사히 마쳤어도 개운치는 않았을 것이다. 오류는 더러 발생하지만 부풀릴 경우 똑같이 겪지 않는다고 보장하기 어렵다. 세상은 남의 일이 내 앞에 불쑥 닥치기도 하는 순환의 연속인 것을.

한편으로는 문제의 가수가 좀 더 신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 열악한 시스템을 탓하기보다는, 미흡할 수도 있는 경우를 위해 반주기 등은 챙겼어야 옳았다. 아마추어라면 실수라도 묵인될 것이나 제법 알려진 가수다. 오늘 따라 무척 바쁘다고는 했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다. 부수적으로 들은 연주가 프로급인 건 앞서 말한 대로고, 미흡했어도 명색은 가수라서 흠 될 건 없으나 잠깐 긴장했다. 세상 역시 실력자가 자칫 밀려나는 경향이되, 어차피 흙 묻은 진짜와 도금 옥(玉) 가짜가 뒤섞이는 거라면 귀추는 정해져 있다. 흙은 묻었을지언정 특유의 자부심은 언제 본색이 드러날지 전전긍긍하는 그럴싸한 거짓 때문에 돋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해거름이 되었다. 음악회도 거지반 끝났다. 악기를 챙겨 돌아가는 단원들의 뒷모습이 왠지 낯설다. 선입견이었을까. 노래는 물론 클라리넷 연주까지 뛰어난 가수는 소박한 차림에도 훨씬 중후해 보였다. 실력이 갖춰지면 내실에 치중하는가 보다. 무대가 처음일 수도 있는 단원들은 들뜬 기분이었다고 이해할 법했으나 얕보던 말투가 자꾸 언짢다. 기다렸다가 해명을 들었으면 본의 아닌 실수도 없었을 텐데 나는 또 그로써 한 편 글을 다듬고 있다. 오류가 뜰 때는 지켜보는 게 상책이다. 흉보면서 닮는다지만 잠깐 오류 속에서 깨우친 교훈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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