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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가을동화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함기석의 생각하는 시 37

  • 웹출고시간2017.09.14 18:15:31
  • 최종수정2017.10.12 17:35:14
[충북일보] 정현종의 시는 죽음, 생명, 존재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자 사랑이다. 그의 시에는 죽음과 연계된 말의 침묵, 부재에 대한 애틋한 상상, 만물이 지닌 종국적 운명에 대한 의식이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생사(生死)는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죽음이 삶을 열정적으로 몰아가는 동력 또는 조력자로 그려지고, 공간은 죽음의 이미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변증법적 공간으로 설정된다. 따라서 따뜻함과 부드러운 이미지들 이면에 숨은 차가움과 딱딱함의 세계를 간과해서는 안 되며, 무거운 것을 가볍게 표현하려는 시인의 숨은 의도를 잘 간파해야만 한다.

정현종의 시에는 춤과 발레의 동적 이미지들이 자주 나타난다. 춤의 동작과 안무 장면들이 삽입되는데, 춤의 도약과 상승을 통해 죽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삶의 허무를 극복하려 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발 딛고 있는 대지가 궁극적 구원의 세계가 아니라는 비극 인식에서 비롯되며, 대지에 대한 초월 의지가 춤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것이다.

춤과 발레 이미지와 함께 바람도 빈번히 나타난다. 바람에 대한 시적 자아의 도취와 탐닉이 자주 나타나는데, 이 또한 죽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자 하는 의식의 반작용 때문이다.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 정현종(鄭玄宗 1939~ )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가 플라스틱 악기를 부∼부∼ 불고 있다

아주머니 보따리 속에 들어 있는 파가 보따리 속에서

쑥쑥 자라고 있다

할아버지가 버스를 타려고 뛰어오신다

무슨 일인지 처녀 둘이

장미를 두 송이 세 송이 들고 움직인다

시들지 않는 꽃들이여

아주머니 밤 보따리, 비닐

보따리에서 밤꽃이 또 막무가내로 핀다
따라서 무(無)와 부재의 세계에 대한 시인의 응시는 곧 삶에 대한 역설적 천착이자 긍정일 수 있다. 죽음과의 대결, 허무와의 대결을 통해 시인은 인간뿐만 아니라 사물들의 꿈, 삶의 전모를 탐색하려 하는 것이다. 죽음과 무, 부재와 소멸에 대한 탐색을 통해 그는 한계적 존재인 인간과 사물이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귀결에 도달한다. 그리하여 그는 시를 통해 사물의 꿈을 엿보고 그들 존재의 고통을 축제의 시각에서 풀어낸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끊임없이 사물과의 합일을 꿈꾼다. 사물들과 신명나게 몸을 비비는 행위, 즉 사물과 자아의 합일을 욕망하는 육감(肉感)의 상상력을 펼친다. 대상과의 에로스 합주를 통해 생명이 넘쳐흐르는 축제의 음악을 낳으려 한다. 시적 자아를 무한히 확장하고 팽창시켜 바람처럼 세상의 모든 사물들에게 번져들게 하여 시인과 사물, 시인과 세계의 경계를 지우려 하는 것이다. 이런 미학적 번짐 또는 사랑의 동화가 실현되는 순간을 그는 생의 희열의 순간이라고 예찬한다. 그의 시어들이 일정한 의미망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방향으로 출렁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 역사의 고통과 사회적 결핍이 클수록 그런 땅에서 피어나는 꽃의 향과 아름다움은 더욱 커진다고 생각하고, 반(反)역사 반(反)문명의 시각으로 세계를 재성찰한다. 이를 통해 보잘 것 없는 소소한 일상에서 생명의 발화 순간들, 아름다운 사랑의 탄생 장면들을 구체적 이미지로 찾아낸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견딜 수 없이 아픈 존재라는 시적 자각을 통해 자연과 생명을 연대시키는 타자에로의 사랑을 실천한다. 사물에 대한 육감의 상상력, 꿈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더욱 확장시켜 나간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그의 시는 타자성의 실현을 전제로 펼쳐지는 애타는 사랑이고, 생명의 시간으로의 원초적 회귀다. 그에게도 우리에게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함기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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