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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왜 다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요·"

장례식장에 들어오던 주혁이가 뜬금없이 그렇게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할머니가 돌아가셨잖아. 주혁이도 아까 들어오면서 슬프다고 했지· 그래서 검은 옷을 입는 거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곧 이어"검은 색이 왜 슬픈 거야·"라는 질문이 나왔고 아들은 덧붙이기나 하듯"꽃도 보면 노랗고 빨간 게 많아서 밝고 환하지만 검은 색 꽃은 없잖니. 그러니 검은 색은 슬픈 느낌이고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그 빛깔 옷을 입는 거야."라고 대답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이틀 째 되는 날, 주혁이가 모두들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게 딴에는 의아했던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던 말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선하다. 여섯 살 치고는 꽤 의젓한 말이었으나 그 다음 희주의 말은 더 걸작이었다. 늘 하는 버릇대로"아빠 여기는 왜 온 거야"라고 따지듯 물었고 예의 또 "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라고 하자, 말도 끝나기 전에 주변을 살피더니 영정사진을 보고는"할머니 저기 꽃바구니 안에 계신다. 얼른 가서 나오시라고 해야지"라며 금방이라도 달려갈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게다가 우리 입고 있는 검은 상복을 보더니 작은 치수는 없느냐고, 있으면 저도 입고 싶다고 엉너리를 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일러 줄 때는 얼토당토않게 꽃바구니 속에 계시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저도 입어야겠다니, 아무것도 모르고 지껄이는 거지만 그렇게 앙증맞을 수가 없다. 주혁이가 한 말은 오빠답게 틀스럽고 아직 어린 희주의 말은 엉뚱하면서도 귀엽다. 아이들 말은 꽃처럼 예쁘고 깻송이처럼 아기자기하다는 게 실감이 간다.

오래 전 미용실에서 만난 어린이가 떠오른다. 퍼머를 하고 있는데 나이 지긋한 분이 손녀딸로 보이는 어린애를 데리고 들어오셨다. 얼마 후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가 돌연"할머니, 색칠 좀 해요. 텔레비전이 깜깜해요."라고 말했다. 다름 아닌 흑백으로만 나오는 화면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우리는 익숙해진 탓에 잘 몰랐는데, 칼라 텔레비전만 보아 온 어린이에겐 무척 낯설었나 보다. 어른 같으면 어둡다고 색칠 좀 하자고 할 리도 없거니와, 혹 농담으로 말할지언정 별난 사람으로 비쳐질 까 봐 딴청을 부릴 법하련만 그야말로 어린애다운 발상이다.

통통한 얼굴에 눈이 크고 맑아 보이던 그 애는 이후로도 가끔 와서 색칠 좀 하자고 조른다고 했다. 색칠만 하면 칼라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 때가 다섯 살이었으니 혹 어린이집에서 색칠공부를 하는 중이었을까. 우연히 할머니를 따라왔다가 깜깜한 화면을 보고는 칠만 하면 저희 집에 있는 것처럼 잘 보일 텐데 왜 그냥 두는지 답답한 심정으로 그렇게 말했겠지. 어릴 때는 누구를 막론하고 천진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처럼.

얼마 후 그 미용실은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면서 칼라 텔레비젼을 들여놓은 지 오래고 그 애도 중학생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릴 때마다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손녀딸을 바라보았겠지. 이미지 때문에 혹은 손해를 볼까 봐 한 걸음 물러서는 어른들에 비하면 얼마나 순수한지 모르겠다.

말은 해야 맛이라는 건 거침이 없을 때다. 그 어린이가 자라면 어쩐지 그럴 것 같다. 그 때는 아직 어린애라 색칠하자는 정도의 투정에 불과했겠지만 더 자라면 당돌한 말로 분위기를 띄워주지 않을까. 미용실에서 본 어린이와 우리 애들뿐 아닌 세상 어린이는 다 순수했는데 어른이 되면서 까맣게 잊어버린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였던 사실을 거듭 헤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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