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이정희

수필가

저녁에는 배뚱구리라고 하는 배추로 쌈을 싸먹었다. 엉성한 겉대를 떼어내자 노랗게 예쁜 고갱이가 나왔다. 잘 씻은 뒤 쌈장을 만들어 찍어먹는 것인데 맛도 맛이려니와 칙칙한 겨울에 보는 빛깔 또한 드물게 산뜻하다.

지난 해 김장을 하기 위해 갓이며 대파까지 들이고 난 뒤 시원찮다고 남겨 둔 배추가 멋대로 바라진 채 어설프나마 고갱이가 안았다. 초겨울 어느 때 그것을 다듬어 국거리로 넣고 오늘처럼 쌈을 싸먹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든 구수한 맛이 난다. 겉보기에는 딱딱해도 웬만치 끓으면 먹기 좋게 부드러워지면서 특별한 맛을 내는 것일까.

배뚱구리는 경상도 방언으로'배추꼬랑이'즉'배추의 뿌리'라고 하는 뜻을 갖고 있다. 봄동이라고도 부르는데 향긋하고 산뜻한 맛이 가장 큰 특징이다. 춥다고 잔뜩 여밀 동안 숙성된 냉기가 뜻밖의 단맛으로 바뀐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껏 국거리로 혹은 쌈장으로 먹은 배추 역시 김장을 끝내고도 한동안 밭에 두었다가 비로소 뽑아 들인 거였다. 짚으로 싸매지 않아 그 짝일 수 있고 혹여 싸맨다면 고갱이도 얌전히 안겠지만 추운 데서 자란 게 더 커다란 원인이다.

양지쪽에서 다듬다 보면 무척이나 질겨서 과연 엄청난 포기를 버텨왔구나 싶다. 폭폭 싸안은 고갱이가 아니라 엉성하기는 해도 칼이 뻑뻑하게 들어가곤 했다. 조목조목 겹친 잎을 지탱해 온 힘이 배가 정박할 때 박는 쇠 철심 같은 게 여간내기가 아니다. 가장 다부진 자세라면 정삼각형 아니던가. 폼은 거꾸로 되었으나 그 자세로 냉기를 버텨 왔을 법하다. 살을 에는 칼바람도 이를 악물고 참았을 테니 춥다는 게 되레 식상한 느낌.

별다른 곡절 없이 일정한 코스를 밟아 성장한 사람이 포기배추 같은 유형이라면 이름까지 별난 그들은 나쁜 여건에서도 바르게 자란 케이스로 볼 수 있겠다. 포기배추도 맛있지만 먹을수록 맛난 특징은 그들이 더 강했다. 포기배추가 짚으로 묶인 채 초겨울을 났다면 그들은 무엇 하나 여미지도 못한 벌거숭이로, 어느 때는 초봄이 되도록 찬바람을 맞고 있었으니까.

알배추라고도 하는 호배추가 광이나 뒤꼍에서 겨울을 난 뒤 만두소나 나박김치의 재료가 된다면 밭에서 겨울을 난 배뚱구리는 지금껏 먹어온 것처럼 희귀한 국거리가 된다. 향긋하고 배틀한 맛이 별나게 돋보이곤 했었지. 가끔 배추가 부족할 때 어설픈 대로 김장을 담그기도 했지만 푸성귀가 귀할 때라야 더 요긴한 의미가 새삼스럽다.

배추보다는 잎이 두꺼운 편이었으나 그래서 국을 끓이거나 무쳐도 더 구수하고 산뜻한 맛이 난다. 어리고 연하며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나고 특별히 향이 진하다. 품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어떤 배추든지 밖에서 겨울을 나고 자라면 속이 꽉 차지 않아서 옆으로 퍼지는 것이다. 바람 불고 썰렁한 노지에서도 깔축없이 자란 것 때문에 이른 봄 겉절이나 쌈으로도 적당한 게 봄동의 배경이라면 소망은 어디서나 품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까지 먹은 배뚱구리는 짚으로 묶지 않고 두어서 짝짝 바라졌지만 그나마 남겨 둔 것은 이른 봄 봄동으로 바뀌어 겉절이를 만들고 쌈을 싸먹게 될 테니 무슨 일이든 견딜만하다는 의미다. 정식으로 김장거리는 되지 못해도 밭에서 겨울을 날 동안 이름도 별난 봄동이 된다면 탓할 게 아니다. 지금은 우정 키워서 판매한다지만 진정한 의미는 그렇게 정갈했다. 이름조차 유난스러웠던 배추, 이제는 거의 다 먹었으나 특별했던 맛을 생각하면 마음까지 따스해진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