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기획재정위원 등에 따르면 현 정부의 대표적인 규제완화 정책은 수도권 규제완화와 '규제 기요틴(guillotine)', 즉 불필요한 규제를 건별이 아니라 하향식으로 일괄 처리하는 규제개혁 방식을 비롯해 규제프리존, 즉 정부가 27개 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한 14개 도시 육성 등이다.
이들 규제완화의 궁극적 목표는 대·중소기업 투자확대 및 외자(外資) 유치, 노동개혁을 기반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비확대 등을 통한 경기활성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국내 대·중소기업 상당수가 투자동결을 추진하고 있거나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실물경기가 극도로 악화될 수 있는 상황에서 무모한 투자가 회사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데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기 불확실성이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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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충북도 싱크탱크인 충북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한 보고서를 보면, 김영란법 시행 이후 도내 농산물 생산액이 최대 15%인 1천62억원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한우·인삼·과일·화훼·임산물 등 주력 농축산물의 생산이 11.5~15.2% 가량 감소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도내 농림축산 총 생산액과 비교할 때 무려 2.5~3%에 달하는 수치다.
한국은행 충북본부가 도내 도시가구 4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지난 9월 소비자동향 조사에서도 소비심리지수(CCSI) 101.5로 전월(8월) 대비 1.6p 하락했다.
이는 전국지수 101.7로 0.1p 하락한데 비해 무려 16배나 큰 폭의 하락세를 보여준 것이며, 가계 경제상황 인식도에서도 현재경기판단 CSI는 81로 전월(86) 대비 5p나 하락했다.
소비·생산 침체는 가정은 물론, 각 기업체들의 내핍(耐乏) 경영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현재 국내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들의 경우 올 하반기 채용규모를 줄이고, 내년도 경상비용 감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서울 소재 대기업인 A사의 한 대관업무 담당자는 지난달 3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대외협력실 예산과 인력을 대폭 줄이고, 신규사업 억제 등 회사 경영방향이 공세에서 수세로 바뀌고 있다"며 "이는 우리나라 실물경기 위축의 직격탄이 될 수 있는 김영란법 시행과 내년 대선에 따른 불확실성의 확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회 기재위 소속의 한 관계자도 3일 통화에서 "우리나라 부패지수 개선을 위한 김영란법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철학과 김영란법이 배치되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돌이킬 수 없지만, 부패지수 개선을 위한 최소 범위의 김영란법 시행과 규제완화 확대를 통한 민간영역의 자율성 존중을 적극 검토하지 않은 부분이 매우 아쉽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소속의 한 국회의원도 이날 통화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 장·차관 워크숍에서 내수진작을 위해 장·차관들에게 골프를 쳐야 한다고 말한 부분을 주목할 수 있다"며 "향후 정부는 규제완화를 통한 경기활성화와 김영란법에 따른 경기위축 등으로 국정철학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 / 김동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