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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6.08.09 14:40:54
  • 최종수정2016.08.09 14:42:31

이정희

수필가

앙상한 나무는 바람의 화살받이였을까.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서 바람의 과녁을 자처하며 산 게 무려 9천년인데 키는 4m 남짓이다. 600년을 주기로 묵은 가지가 죽고 싹을 틔운다던가. 9천년 묵은 뿌리에 비해 줄기는 600년마다 나오는 노르웨이 가문비나무.

나무가 발견된 곳은 스웨덴의 바닷가 지방이다. 보이는 건 수평선 물결뿐이었으나 바람이 불 때마다 자기만의 음률을 새겼다. 부대끼면서 몸 속의 음률을 토해내다 보니 운명까지 사랑하게 되었다. 영혼만 볼 수 있는 하늘 밑에서 꿈을 키우고 바람 속에서 음률을 쏟아내는 신비의 존재.

나뭇가지 옆에서는 바람도 눈물을 머금는다. 워낙 건조한 탓인지 하얗게 바랜 깃발 같다. 명징한 소리가 음표로 바뀔 때마다 속으로 울었다. 바람이 불면 악기가 되었겠지. 바람의 태형을 맞으면서도 묵묵 견디고 고독을 천형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미완의 꿈도 있었지만 연거푸 태어나면서 죽어도 죽지 않는 무한의 영역을 구축했다.

600년마다 새로운 줄기를 내밀었다. 장장 열다섯 번이다. 오래도 살았지만 많이도 태어났다. 그래서 복제나무라지만 그럴 때마다 알을 깨는 고통이 수반되었다. 바닷가의 숲과 하늘도 함께 진통을 겪었다. 하늘 멀리 떠도는 반향과 숲 언저리 뫼울림은 조금씩 달라도 나무가 작곡한 바람의 악보는 영원을 향해 가는 신비의 장(場)이었다.

꾸밈음 하나 없이 순수한 멜로디는 바람을 비켜 온 시간의 옥타브 때문이다. 한 방향으로 쏠린 줄기를 보면 절대적인 저항을 의미했다. 바람에 묻어 온 메아리는 자신의 몸부림이요 아우성이었다. 바람 부는 대로 굽히는 동안, 자기를 스쳐가는 바람이 몸속에서 불어오는 줄 깨우쳤을 것이다. 밖에서 부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강한 입김을 불어내야 하는 아픔까지도.

그가 적은 바람의 악보에는 쌀 톨 만하게 피는 꽃노래가 적혔다. 다시 태어나면서 본 그 꽃이, 지난 생애 발치에 피어 있던 그 한 송이였다는 얘기도 얼룩졌다. 다시 태어나도 바람의 음률을 받아 적을 것 같다. 태어나면서 전생의 일은 모두 사라졌으나 드문드문 피던 꽃의 기억은 바람결 묻어오는 향기처럼 뗄 수 없는 분신이 되었다.

600년마다 바뀌는 성장시스템 대로라면 얼마 후에는 열여섯 번째의 줄기가 나온다. 열여섯 번 태어난 전적대로 바람은 연거푸 태어날 것이다. 오랜 날 구축한 땅 속에는 같은 숫자의 하늘이 공존한다.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나무, 절망을 극복하면서 태어난다면 죽음 또한 끝이 아니라 시작의 돌파구다.

예정된 죽음까지도 재탄생의 기회로 삼았다. 가파른 골짜기 나무가 최상급 악기의 공명판이 되듯 인생 최고의 전성기도 바람 부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가장 낮은 데서 시작할 때 최고 높이 올라간다, 가장 높은 영광도 최악의 모욕을 감수한다.

그렇게 살고 싶다. 바람을 맞는 족족 음표로 바꾸는 천부적 음악가를 누군들 좋아하지 않으랴. 타협했더라면 순하게 지나갔을지 모를, 풍경은 무채색 일변도지만 그가 일군 바람의 역사는 경건했다. 다시 태어날 때도 하늘은 푸르렀을 테니까.

늘 보는 수평선도 이맛전같이 서늘할 테고 파도 역시 수많은 은구슬로 반짝였다. 힘들어도 노을이 지고 별이 있는 한 행복한 삶이다. 운명은 스스로의 인격이고 연륜이다. 가장 큰 절망이 가장 큰 소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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