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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옹달샘 가득 맑은 물이 솟는다. 곁에 있는 표주박으로 떠 마시자 금방 시원해진다. 그 동안도 퐁퐁 끝없이 솟아나는 물방울 소리. 한여름 더위도 말끔 씻기는 것 같은 싱그러움은, 이끼가 잔뜩 낀 바위틈 샘물을 표주박으로 떠 마시는 기분 때문이었을까.

간장을 뜰 때는 항아리에 있는 표주박을 쓴다. 붙박이로 쓰는 간장병은 좁아서, 양념을 할 때마다 옆으로 새 나가지만 표주박에 담아서 따르면 그럴 염려가 없다. 오래 전 어머니가 신혼 시절 손수 가꾼 조롱박을 파서 만들었다는데 허리가 잘록하고 손잡이까지 있다.

부엌에는 그보다 큰 바가지가 많았다. 신혼 시절 어느 날 보니 어머니는 스무 개 남짓 바가지를 굵은 실에 꿰고 계셨다. 모내기를 하거나 벼를 거둬들이는 날 일꾼이 서른 명 가까이 되면 한 꿰미를 통째로 갖고 가신다. 가서는 가까운 샘물에 씻어서 밥을 푼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또 깨끗이 씻어 볕에 바짝 말린 뒤 실에 꿰어 벽에 매달아 간수하셨다.

반찬과 국 대접을 가져온 그릇은 함박이었다. 나무를 우묵하게 파서 만든 것으로, 마른 곡식을 보관할 때 쓰지만 일꾼이 많은 날은 밥반찬과 그릇을 담기도 한다. 그 외에 쪽박은 물을 먹거나 술잔으로 쓰며 앞서 말한 것처럼 손잡이가 있어 편하다.

지금은 플라스틱 그릇을 많이 쓰지만 우리들 어머니 세대만 해도 그렇게 크고 작은 바가지를 썼던 것이다. 그릇의 전부를 차지하다시피 한 만큼 관련된 속담도 많았다. 함박 시키면 쪽박 시키고 쪽박 시키면 표주박 시킨다. 표주박보다 큰 건 쪽박이고 그보다 큰 건 함지박이었다. 일을 맡기면 서로 미룬다는 말이 바가지 문화가 발달했던 생활상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함박에게 시킬 때는 각자 역할이 있고 그에 적합해서일 텐데, 쪽박에게 미루고 쪽박은 또 표주박 보고 내리 맡긴다. 일을 남에게 미루는 심리를 이보다 적절 표현한 말이 있을까마는, 거꾸로 쪽박이 표주박을 넘보고 표주박이 함박을 넘보다가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리기도 한다. 제가 할 일을 함박 쪽박 식으로 미루는 것도 안 되지만 자기 범주가 아닌데 필요 이상 탐내는 것도 문제다. 필경에는 남의 밥에 든 콩이 무조건 굵어 보이는 망상에 빠지고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차일피일 미루는 습성도 마찬가지다. 고역스러운 일은 다들 미루지만 조약돌 피하면 수마석을 만난다. 조약돌을 만날 때 얼른 치우면 호미로 막는 격으로 수월할 텐데 좀 더 좀 더 하다가 수마석을 만나고 하루 이틀 미루면서 가래로 막아야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쪽박 쓰고 벼락 피한다는 말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급한 마음에 곁에 있는 쪽박을 뒤집어쓰고 벼락을 피하는 가당치 않은 행위를 꼬집는 말이건만 꽤나 해학적이다. 물건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적재적소에 인물을 배치하지 못하는 허점과 다를 바 없으니까.

그릇과 사람은 있는 대로 쓴다지만 적임자 물색 때문이 아닌 함박이 쪽박 시키고 쪽박이 표주박 시키는 거라면 문제가 발생한다. 시켜서 하는 일도 적성에 맞을 때는 능률이 배가되나 무책임하게 미룬 여파는 있다. 시키는 것도 내키지 않는 터에 적성까지 맞지 않을 때는 기대치를 바라기 어렵다. 옹달샘 가에는 표주박이 제격이고, 그래 모처럼 샘물을 떠 마시면서 더위도 잠깐 잊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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