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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오솔길 모롱이에 꽃다지가 피었다. 키도 작고 몸짓도 작지만 노란 빛깔이 이채롭다. 성격 탓인지 자잘한 꽃이 좋았다. 꽃이라면 탐스럽고 화려한 게 전부로 알기 쉬우나 오밀조밀 예쁜 꽃도 작아서 아름다운 의미를 충분히 드러낸다.

엊그제 뿌린 이슬비도 무척 작았다. 하늘을 보면 물방울 안개로 자욱한데 내리는 등 마는 등 조용해도 흩뿌리고 나면 봄도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솔솔 뿌려대면 잔디밭 속잎이 파랗게 눈을 뜨고 연둣빛 싹은 초록물이 번질 듯 파릇하다.

얼어붙은 땅을 녹이는 것도 소곤소곤 봄비다. 소낙비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봤자 얼음은 풀리지 않는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 조금씩 내려도 속속 배어드는 기척에 강물이 풀리고 봄 축제가 시작된다. 잔잔한 봄꽃을 새침데기 봄비가 피워주는 걸까. 가뜩이나 얇고 투명한 잎에 말괄량이 소낙비가 짓대기면 꽃망울이고 잎이고 다 망가질 테니 함초롬 봄비가 제격이다.

지금 가는 길도 작고 조붓했다. 바람이 솔가지를 흔들면 작은 새 얼핏 날던 길이다. 산자락 돌아가면 무지개 같은 이슬이 폭폭 묻어났다. 가뜩이나 좁은 길이지만 비로소 먼 산자락과 하늘이 보인다. 넓은 길은 조약돌이니 풀섶은 없을 테고 그래서는 돌아볼 일 없이 앞으로만 나갈 테니 작은 것은 불편해도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충분하다.

그 새 오솔길이 끊겼다. 흐드러진 냉이꽃을 보고 폴짝폴짝 달려가는데 냇물이 나왔다. 얼핏 떠오르는 징검다리를 보니 하나 둘 셋… 도합 여섯 개다. 밤이면 별 가득 실은 돌배가 되어 떠오르겠지. 은하수 폭폭 잠기면 밤 호수를 저어갈 테니 시원하게 뚫린 길과는 운치가 다르다.

산새를 좋아하는 것도 그 때문일까. 송골매니 독수리 같은 맹금류는 질색이나 작고 앙증맞은 새가 떨기나무에서 노래 부르면 덩달아 행복하다. 그늘이 좋은 나무를 두고 마른풀덤불을 우정 찾아갈 때는 그 마음 역시 작고 애틋할 것이기에 노래 또한 심금을 울리곤 했다.

문득 시리도록 푸른 하늘이 다가온다. 밤이면 샛별 하나가 숲 속 어름에서 깜박이곤 했었다. 깊은 밤 새초롬 눈썹달과 반달이 샛길을 비출 때는 향수적이기까지 했다. 오솔길에 보름달은 어쩐지 생소하고 눈썹달과 조각달이 어울리듯 행복도 그렇게 파생된다. 좌우명이나 가치관도 소박한 글귀 하나가 영향을 미친다. 굉장한 데서 느끼는 행복은 일시적이되 잔잔한 행복은 촉촉 잦아드는 이슬비처럼 편하다.

찰싹이는 개울과 산들바람도 작고 앙바틈하다. 선들바람이 숲 속 어름에서 일렁인다면 산들바람은 길섶을 따라 살랑살랑 불었다. 가냘픈 눈썹달도 보름달에서 바뀐 모습이고 다시 보름달로 차오른다. 오솔길과 꽃이나 과일처럼 애당초 작기도 하지만 커다란 수마석이 닳고 닳은 조약돌도 있다. 가끔은 크고 작은 탄력성의 반복인 만치 크기의 개념은 무의미했다. 목표나 소망도 미미한 것이나마 이룰 때 성취감이 배가되는 것처럼.

체구 탓인지 그릇도 작은 게 임의롭고 채소 또한 창칼로 썰어야 편하다. 큰 것을 비하시키는 건 아니고 작은 것에 끌리면 조촐한 행복과 아기자기한 소망으로 이어진다는 의미다. 작은 소리에도 귀 기울일 줄 안다면 분명 지혜로운 삶이다. 풀꽃 향기가 더 고운 것처럼 작은 관심으로도 감동적인 하루를 열어갈 수 있다. 자잘한 꽃과 오솔길과 이슬비 여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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