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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수필과 함께하는 봄의향연 - 가정(家庭)

함기석의 생각하는 詩 2

  • 웹출고시간2016.03.10 19:16:06
  • 최종수정2016.07.07 17:13:08
이상은 인간 내면의 불안과 그로테스크한 현실을 극단의 형식으로 표현한 시인이다. 그는 형식파괴, 숫자와 기호의 왜곡, 언어유희 등을 통해 비합리적인 내면세계를 직시하고 기존의 질서와 문법에 저항한다. 그의 시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사물을 대하는 주체의 시각을 새롭게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사물에 대한 인간의 감각인식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언어표현이 시간적 계기성과 순차적 질서에 묶이는 것에 대해 그는 회의하고 저항한다. 이상의 시가 난해하면서도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부정정신과 세계를 반어적으로 인식하는 태도 때문이다. 절망적 비극상황에 대한 희극적 인식, 언어와 성(性)과 죽음에 대한 유희, 무의식적 연상에서 발생하는 유머와 슬픔 때문이다.

시'가정'에는 시인의 궁핍한 생활상이 절박하게 드러나 있다. <나>는 가정으로부터 단절을 극복하고 다시 결합하고자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 정도로 <나>는 가정으로부터 소외된 존재, 식구로부터 출입이 차단된 무능력한 존재다. 그래서 밤은 사납게 나를 꾸짖고 나는 죄책감과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제웅은 지푸라기로 만든 인형으로 불운을 막는 액막이나 바늘로 찌르며 저주를 내릴 때 사용되는 사물이다.

가정(家庭) / 이상(李箱 1910~1937)

문(門)을암만잡아다녀도안열리는것은안에생활(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지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문패(門牌)앞에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자꾸만감(減)해간다. 식구(食口)야봉(封)한창호(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놓아다고내가수입(收入)되어들어가야하지않나. 지붕에서리가내리고뾰족한데는침(鍼)처럼월광(月光)이묻었다. 우리집이앓나보다. 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 문(門)을열려고안열리는문(門)을열려고.
이 시에서는 아내의 원망과 분노가 서린 나(남편)의 대리물로 등장한다. 이 제웅에 꽂힌 바늘에서 서리 내린 지붕에 달빛이 침(鍼)처럼 묻어 있다는 표현이 연상되어 나오는데, 이때의 달빛 침은 생활고 때문에 앓고 있는 집을 치료하는 한방 의료도구 역할을 한다. 그것은 곧 집이 병들어 앓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것도 병을 치료할 돈이 없어서 수명을 헐어서 전당잡히는 상황이라니, 이런 상황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참담할 것이다. 이런 극한의 절망 속에서 <나>는 문을 열려고, 열리지 않는 문을 열고 아내가 있는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달리고 있다.

시 '가정' 뿐만이 아니라 이상의 시 전반에는 현대인이 처한 소외와 불안, 권태와 고독에 대한 첨예한 통찰이 깔려 있다. 그의 시는 숫자, 연산자, 도형 같은 수학기호들의 시적 변용이 형식차원에만 머물지 않고 부조리한 현대인들의 황폐한 내면을 예리하게 파고든다. 그의 시는 과학적 양식을 통해 과학적 이성과 논리의 세계를 파괴한다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그것은 곧 자아의 절대성, 합리적 이성에 근간을 두고 있던 근대 미학에 대한 비판이며 서구의 합리주의에 대한 전위적 부정이다. 근대를 지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은 어떠한가?

/ 함기석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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