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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병훈 산남동 성당 주임신부가 되돌아본 2015년

"보이지 않는 길도 찾아야 희망이다"

  • 웹출고시간2015.12.30 17:01:46
  • 최종수정2016.01.03 13:31:59
[충북일보] 2015의 숫자도 한 해의 낙조 속으로 스러져 간다.

올해도 다양한 이슈와 논란이 반영된 신조어가 봇물을 이뤘다. 시대의 유행어는 현 사회상을 반영하는 척도인데, 근래에는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재산에 따라 자녀의 계급이 결정된다는 이른바 '수저론'이 뜨거웠다. 내일이 불안한 실업 청년들에게 이 말은 '헬(Hell)조선'과 맞물려 상대적 박탈감과 고립감을 부채질했고, 여기에 '국정교과서 논란'과 '시위' 문제 등 온 나라가 서로 간 불신, 불통으로 여기저기 막힌 형국이었다. 메르스의 공포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부닥친 이러한 문제들은 사람들의 기운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정말 한국은 청년들의 자조처럼 지옥에 가깝고 희망이 없는 사회일까.

2015년의 끝자락에서 산남동 성당 윤병훈 주임신부를 만나 한 해를 반추해보았다. 크리스마스를 하루 앞둔 오전이었다. 쌀쌀한 날씨 속에 잠시 산타가 되어 어딜 다녀왔는지, 루돌프 사슴처럼 신부님의 코가 빨갛다.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 함께 국민들이 결집력을 갖고 희망찬 한 해를 열어가야 된다. 2014년에는 세월호로 아픔을 겪었고, 2015년에는 메르스로 국민들이 혼란스러워했다. 통합체계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도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정교과서도 분명 문제다. 역사(歷史)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쓰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국민들은 우매하지 않다. 국가가 하나의 해석을 강요하고 독점하겠다는 것은 무리수다. 학생들은 역사적 통찰력을 배울 수 있어야 한다. 하느님은 자유롭게 이성 안에서 스스로 규제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다. 자율성을 무시하는 행위는 하느님이 만든 세상의 기본 질서를 무시하는 것이다. 2014년 유엔 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교과서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야 하며, 특정 종교나 이데올로기 및 민족적 인종적 정체성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국정교과서라는 틀 속에 역사를 밀어놓고 국가의 목소리만 담고자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 2015년을 보내는 국민들의 소감에서 '우울하다' '힘들다'란 말이 압도적이다. 오히려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못사는 나라들의 행복지수가 높다.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상대적 결핍에 시달리며 오직 부자가 되기만을 열망한다. 모두 부자가 될 수 없는 세상에서 부자가 되려함으로 싸움과 전쟁이 발생한다.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덕담이 된 세상이다. 우리나라는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만, 행복하지 않다. 삶의 목적이 물신에 가있기 때문이다. 물신은 우상이다. 하나님이 없는 사물을 따르고 쫓는 것을 우상이라고 한다. 물신에 집착해 이해타산을 확장하려는 마음에 행복을 놓치게 된다. 가난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 상대적 박탈감이 불행의 근본이다. 부를 누리는 사람들도 자기만 생각하는 마음에서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보면, 부(富) 대신 스스로 가난을 선택한 이들이 있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서 없는 사람들의 빛이 됐던 예수가 그랬고, 부처는 한없이 낮아진 상태에서 생사의 깨달음을 얻었다. 마더 테레사 같은 성인의 삶도 그렇다. 부자의 척도는 정해진 것도 아니고, 그 욕망은 한이 없다. 영원히 부자의 마음을 채우려면 영원히 불행해진다."

유시민의 책 '후불제 민주주의'에 등장하는 '너무 혹독한 결핍은 사람을 좌절에 빠뜨리지만, 적당한 결핍은 창조적 에너지를 일으킨다.'라는 말과도 통하는 내용이다. 자발적 가난은 아름답다.

- 요즘 사회는 다양성의 시대다. 그러다보니 대립과 갈등도 증가한다.
"학연, 지연, 혈연의 문제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역과 정당간의 대립이 심화 되고 보수와 진보, 급진으로 나뉘어 헐뜯고 비방한다. 나와 주장이 다르다고 해서 남을 배척해버리는 마음은 폭력과 다름없다. 서로 '사랑하자'의 본질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 그런 하나님의 자비처럼 우리도 서로 용서해야 한다. 자비를 실천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올해를 정의한다면 무엇이라고 표현할까.

"2015년은 길이 보이지 않았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혼용무도(昏庸無道)'라고 정의했다. 이는 '암울해서 앞이 보이지 않고 길이 없다.' 라는 의미다. 각박해진 사회분위기의 책임을 군주, 다시 말해 지도자에게 묻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길도 찾아야 희망이다."

- 이 시대에 종교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종교인들의 목소리를 사회 속에서 내야 한다. 작년 프란치스코 교황의 한국 방문은 많은 메시지를 남겨줬다. 방한 내내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듬었고, 낮은 자세로 어린이들과 약자를 찾으며 종교인들의 방향을 명징하게 전해줬다. 그것이 종교의 본질적인 내용이다. 우리 성당에서도 그간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했다. 앞으로 교회의 역할을 시도할 것이고 해야 한다. 종교인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교회가 되라는 이야기는 새겨야 할 가르침이다."

- 노동자를 압박하는 정부, 폭력으로 맞서는 노동자들. 지켜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그리고 해결될 기미가 없는 청년실업 문제는 여전한 우리의 숙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기업인과 노동자들이 서로 상생해야 한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가야 한다. 청년실업 해소문제는 커다란 숙제다. 정부는 2015년 5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제시하며 공공기관을 필두로 한 제도 도입을 강력히 추진했다. 임금피크제가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진정한 노동개혁인지는 더 깊게 논의되어야 한다. 부자증세를 해서라도 많은 인력들을 채용해 청년들의 일자리를 창출해야만 한다. 임금피크제는 가장 소극적인 방법이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노동자들을 줄여서 청년실업을 해소한다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부는 혁신적인 노동개혁을 통해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신부님과 대화하는 동안 성탄절 날 TV에서 보았던 '천상의 엄마'라는 프로그램이 문득 스쳐 간다. 수녀님들이 버림받은 아이들을 갓난아기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키워 사회에 내보내는 내용이었다. 평균 50년 이상 수녀회에서 봉사하신, 이제는 할머니가 되신 수녀님들이 환하게 웃으실 때마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사랑과 평화의 기운이 흘러넘치는 듯 했다.

이 사회의 리더들이 그런 엄마의 마음을 가진다면 산적된 문제가 조금은 더 부드럽게 풀리지 않을까. 어머니 마음은 상투적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새해에는 힘들어하는 주변 이웃들에게 실제 '한 끼의 식사'나 '한 잔의 차'로써 서로 마주앉는, 따뜻한 마음들로 덥혀지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 윤기윤 기자

△윤병훈 신부 이력

-1983년 천주교 청주교구 사제수품
-1983~1997년 음성, 충주교현동 성당 주임신부
-1997년~2010년 대안교육 양업고등학교 설립 및 교장
-2010년 산남동 성당 주임신부
-현재 천주교 청주교구 총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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