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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10.29 19:00:13
  • 최종수정2015.10.29 19:00:13
우리 아파트에 문학회가 생겼다. 정기적으로 시 산문 수필을 공모하더니 지난여름엔 이웃과 가벼이 나눌 수 있는 인사말을 공모했다. 선정된 인사말은 의외로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몇 층 가세요' '난 0층 살아요' '너 예쁘구나 몇 학년이지' 등등. 그 인사말을 큼지막한 글자로 인쇄하여 엘리베이터 안에 띠처럼 붙여놓았다. 그런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웬만큼 낯이 익은 사이라 하더라도 마주치는 눈길을 피해 엘리베이터 내 광고판을 올려다보거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어물쩡거리기는 마찬가지다.

언제부터였는지. 이웃과 평범한 인사를 나누기가 더 이상 사소한 일이 아닌 세월이다. 앞집에 누가 사는지 얼굴도 모르는 채로 살기 일쑤고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이사를 가버리면 그만이다. 이웃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도 없고 알 바도 아니다. 앞뒷집 혹은 아래 위층에 살았거나 살고 있더라도 거리에서 스쳐 지나가는 이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이웃사촌이란 단어는 누군가 살다 떠나버린 빈집의 낡은 문패와 같이 퇴색한 지 오래다.

도시는 온통 울창한 아파트 숲이다. 수직의 콘크리트 밀림에 밤이 내리면 층층의 사각 공간에 불 밝힌 창문은 밤하늘의 별을 쏟아 부은 듯 아름답기는 하지만, 식탁위에 식탁, 침대위에 침대, 변기위에 변기를 재주 부리 듯 쌓아놓은 형태가 보이지 않아도 그려진다. 머리위에도 발아래도 사람과 사람으로 같은 건물 내에 공존 하지만 소통의 의지는 막연하고 개인주의의 벽은 마천루보다 높다. 가가호호는 빽빽하게 이어져 있으되 속으로는 저마다 외롭게 떠있는 점점의 섬인지도 모른다. 너도나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자존감은 드높아지는 반면 이웃에 대한 배려나 관심쯤은 의식하지도 않고 살아간다.

80년대 중 후반. 아들 녀석이 아장아장 걷던 무렵만 해도 사람 사는 정이 지금만큼 메마르지는 않았다. 이삿날 떡 접시를 들고 5층 아파트 층층마다 초인종을 누르며 인사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이제는 사라진 풍습이지만 그 시절만 해도 이사 온 날엔 이웃을 찾아다니며 얼굴을 내밀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의당 있는 일이었다.

얼마 전. 외출에서 돌아와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순간 활짝 열린 앞집 현관을 마주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집안은 깡그리 비어 있고 인부들이 신발을 신은 채로 들어서서 공사를 개시하고 있었다. 앞집은 어느 날인지도 모르게 알 수 없는 곳으로 이사를 간 것이었다. 나보다 한참은 젊어 뵈는 여주인과는 두어 달에 한두 번 정도 마주쳤고 그때마다 안녕 하세요, 라는 형식적인 인사 외에 단 한마디도 나누어보지 못 한 사이였다. 마음이 서늘했다. 어떤 이유로든 사람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이라는 명제 앞에서 공사 중인 인부들에게조차 공연히 부끄러운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을 그리워하듯 누구나 지난 세월의 향수를 지울 수는 없으리라. 넉넉지 못한 살림일망정 올망졸망한 자식들 기르며 네 집 내 집의 경계도 없이 마음으로 풍요롭던 그 시절이 그립다. 오늘의 세태에 대저 누구를 탓할 것인가. 드높고 단단하여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 단절의 벽은 알고 보면 내가 먼저 쌓은 게 아닐는지. 누구에게든 먼저 다가서기보다 무관심하고 냉정했던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이웃을 향해 열려 본적 없는 현관문도 단단히 닫혀있다. 이중 삼중으로 걸어 잠근 것은 비단 여닫는 문뿐이 아니다. 비밀번호가 아니면 열리지 않는 문보다 더욱 굳건히 잠긴 내 마음의 빗장은 나만의 해법으로 풀어야만 하는 숙제인 것이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무덤덤하거나 혹은 냉랭히 이웃과 스치고 드나들며 아무런 영향력을 주고받지 않는 관계인 듯 무심하게 살아간다. 나부터도 그러하다. 그러나 인간은 노소를 불문하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불완전한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 시간의 수레바퀴의 큰 틀에서 본다면 언제 누구와 어떤 인연이 닿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 아닌가. 하물며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먼 곳의 형제보다도 가까운 그야말로 '이웃사촌' 지간인 것이다. 머뭇거리기보다 먼저 한 발 다가가서 소소한 마음이라도 나누며 옛날처럼 살았으면….

△ 노순희 수필가

-푸른솔문학 작가회회원

-푸른솔문학 신인상

-정은문학상

-공저: '그 뜰엔 멈추지 않는 사랑이 있네.' '반딧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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