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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작가

28년간 나의 딸로 살았던 시간을 묶어 둔 채 아이가 떠났을 때는, 가슴에 구멍이 난 듯 허전하기가 그지없었다. 텅 빈 아이 방을 수시로 들여다보며 옷가지 하나 흔적으로 남기지 않고 신혼집으로 모두 가져가 버린 것조차 서운했었다. 세월에 익혀지지 않는 것은 없는가보다. 딸과 함께했던 수많은 추억들이 그리움이란 또 다른 술로 익어 갈 무렵, 딸은 솜털이 보송보송한 사내 아기를 안고 몸조리를 하러 내게 왔다.

조리원에서 야무지게도 싼 강보를 풀어헤쳤다. 분홍피부의 작디작은 인형 같은 아가가 꿈틀거리더니 그 작은 몸을 있는 대로 뒤틀면서 기지개를 켠다. 눈물이 난다. 아기가 아기를 낳다니…. 시집을 보냈어도 김치하나 담그지 못하는 영원한 나의 아기인줄 알았는데, 진통하는 모습 보이면 엄마 힘들다고 아기를 낳고서야 연락한 의젓한 엄마가 돼서 왔다. 발가락 정렬 모습까지 사위를 빼닮은 아기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양가 부모를 합쳐 직계가족 열 명이 아기 이름 짓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각자가 나름 고민해서 내놓으면 누군가가 토를 다는 거다. 온갖 이름들을 같다 대며 고민을 하고 하지만 결정을 하지 못한다. 이 글자는 이래서 마땅찮고, 저 글자는 저래서 마땅찮고 결정 못하는 이유도 많다. 딸의 경우 직업이 교사이다 보니 거명되는 이름마다 스쳐간 반 아이 중 동명이 있었다는데, 하필 부정적인 면이 연관된다며 아웃시킨다.

"그건 비약이지…. 범죄자와 이름이 같다고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잖니?" 하고 말했지만 소용없다. 그러던 어느 날, 이름을 둘로 좁혔으니 카톡에 투표하라고 사위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뿔싸! 마지막까지 올라온 이름 중 하나는 처음 거명될 때 어떤 아이가 떠올라 내가 마뜩찮아 했던 이름이다. 오래전 유치원에 근무할 때 있었던 동명의 그 애는 하필 도벽이 심해 애를 먹었던 아이다. 딸에겐 비약하지마라는 말까지 해놓곤 그 이름이 탈락되길 바라는 건 또 무엔가. 그러나 결국 그 이름이 결정됐다.

이런 낭패라니…. 하지만 이름을 짓지 못해 출생신고를 못하니 받아들이자 하고 다독였는데, 아기 이름을 부를 때마다 문제의 그 아이가 생각나니 어쩔까나. 그것 참…. 60~70년대에 태어난 아이들 중에는 박정희란 이름이 1위였다. 그런가하면 대한민국 범행자의 대표 예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900일이 넘게 신출귀몰한 도피행각을 벌여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었던, 체포 당시에 화려한 빛깔의 쫄티를 입어 한때 쫄티를 유행시켰던 탈옥수 이름과 동명인 자들이 줄줄이 개명신청을 한 적도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 어떤 삶을 살다 가느냐의 질을 결정하는데 이름의 영향이 있을까? 법원직원들을 바쁘게 했던 탈옥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와 동명인 중엔 성공적인 삶을 사는 사람도 많다. 같은 시기에 태어났지만 누군 범죄자로 유명하고 또 누군 사회나 국가에 유익을 주는 인물로 유명하기도 한데 내가 편견에 묶여 있었지 싶다. 그렇기로 이름이 그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나로선 단언하지도 못한다.

한평생 살면서 우리는 자신을 부르는 이름을 몇 번이나 들을까. 수만 번? 어쩌면 수십 만 번? 마음을 담아 수십만 번 부르는 건 돌덩이도 감동시키는 기도 같은 일일 수도 있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한사람에게 좋은 뜻이 담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간절히 축복하는 일과도 같지 않을까· 하지만 이름이 아무리 좋은들 불러 주지 않으면 무슨 의미, 부른다 한들 사랑을 담지 않으면 또한 무슨 의미이랴. 돌아보니 우리 아기 이름을 가졌던 그 아이는 이름을 불러줄 부모가 없었던 가여운 아이였다. 마음을 정하니 아기 이름에 정이 간다. 발음 좋고 뜻 좋고, 무겁거나 가볍지 않다. 기저귀를 갈 때도 안아 줄때도 뜻을 담고 마음을 담아 부르고 불렀다. 우리 아기 이름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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