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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바람이 차다. 지는 해가 물을 끓이고 서걱대는 바람에 가을이 촉촉 젖는다. 어렴풋 햇살에 고개 숙인 하루가 보였다. 갈대숲 여울에서 본 하지만(灣) 풍경이다. 바닷물이 육지에 들어 온 게 만(灣)이다. 강의 지류까지 포함하는 건 무리였으나 가을의 무채색 갈밭은 환상이다. 강물도 새치름 흘러간다. 한차례 돌아나간 물살의 멋들어진 축제다.

요즈음 내게 새로운 물굽이가 생겼다. '힘들다고? 하지만 참아' 또는 '다 내려놓고 싶다고? 하지만 희망을 가져'라는 속삭임이다. 지도에도 없는 하지만(灣) 메시지는 소라껍데기 들려오는 물결처럼 맴돈다. 팔랑팔랑 이파리는 문득 나뭇잎배다. 노를 젓는 것도 아닌데 미끄러지듯 나간다. 기슭에 닿는 작은 섬, 찰싹 찰싹 물소리 예쁜 마음의 영토다.

이따금 감정의 돌무지가 쌓였다. 갈등이 생길 때마다 '아무래도 힘들어. 그만 포기해'라는 꼬드김에 시달렸다. 마음까지 고갈되면서 숱하게 넘어졌다. 풀 한 포기 한송이 꽃도 피울 수 없는'아무래도 섬'주인공의 운명이다. 허구한 날 발이 젖고 옷을 적시다가 꿈이 자라고 소망이 둥지를 틀었다.

만(灣)에 모여든 것은 흐르다가 돌아 온 물결이다. 흐름을 방해하는 암초에 수심이 깊고 폭까지 좁다. 거센 물결 때문에 쏠리게 되지만 얼마 후 폭이 벌어지고 흐름도 완만해서 뻘로 발전한다. 내가 본 남한강 지류의 갈대밭도 그렇게 생겼다.

만(灣)의 고유어는 물굽이다. 살다 보면 삶의 굽이를 돌아나간 물결이 돌아올 때가 많고 임의로 하지만으로 명명했다. 뭔가 잘 되지 않을 때 늘어놓는 변명은 아니고 차선책은 얼마든지 있다며 또 다른 방법을 모색한다.

꿩 대신 닭 같은 뉘앙스였으나 한 마리 꿩보다 수백 마리 닭의 위력도 무시할 수 없다. 강에서 바닷물로 흘러가던 물이 잠시 머물러 갈대밭을 이루듯 부화되지 못하고 무산된 꿈이 곳곳에 어수선해도 그렇게 아우르는 동안 색다른 풍경이 나온다.

내 삶의 아우트라인을 따라가 보았다. 곳곳에 풀이 올라 오고 꽃이 피었다. 바위틈 모래뻘에서 빛깔은 희미해도 그런 풍경이 아니면 무료해진다."그 사람 착하지만 고집도 있어"라는 부정적인 면도 있으나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도 하지만의 관례다. 거센 바람에도 그래야 먹장구름 흩어진다고 드센 바람일수록 연이 높이 오른다며 '하지만 괜찮아, 하지만 기다리면 돼'라고 최면을 건다.

육지에 들어온 바닷물은 간만의 차이가 별로 없다. 강물은 고요했으나 큰물이 지면서 물갈이가 시작된다. 폭이 좁고 경사가 급해서 파도는 거세고 물살이 빠르다. 정적만 감도는 하지만(灣) 아래뜸에도 혁신이 일어난다.

하지만(灣)은 둬 발짝 물러나 반전을 꾀한다. 삶의 마지노선이고 고향 가까이 표출된 풍경이다. 돌아나간 삶의 노정에서 새로운 물굽이가 생길 때는 그렇지만으로 명명해야겠다. 그렇지만 하고 희망을 끄집어내는 곳, 들리는가? 그렇지만 나름대로 보람찬 날들, 소망을 꿈꾸는 이가 모여드는 하지만, 그렇지만 살아 있는 게 행복한 사람들의 애틋한 얘기….

바닷물이 밀려온 육지에 갈대밭이 어우러지듯 세상을 향해 꿈을 향해 이상을 좇아 헤매다가 돌아온 여울목은 우리들 아지트다. 축축한 곳에도 꿈은 있고 푹푹 빠지는 습지에도 갈대는 핀다. 삶의 바다에서 되돌아간 여울마다 하지만(灣) 물소리가 정강이를 적신다. 삶의 후미, 그렇지만(灣) 모퉁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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