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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수필가

외딴 집 마당에도 봄이 왔다. 자운영은 융단처럼 활짝 피었고 담장으로는 금낭화가 흐드러지게 곱다. 뒤뜰의 산수유 진달래도 그 새 피었다. 뒤란 언덕의 개나리 또한 노란 꽃줄기가 얽혀 봄 한 컷을 찍는 기분이었으나 바람기(氣)는 여전히 쌀쌀했다.

경쟁이나 하듯 화사하게 피었건만 어딘가 추워 보이는 것은 꽃샘 때문이었을까. 인근의 시골에는 또 무서리까지 살짝 뿌렸다고 한다. 늦가을 된내기처럼은 아니지만 이따금 부는 찬바람은 무척 썰렁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것도 아니면서 왠지 어설프지만 해마다 겪는 꽃샘추위다. 꽃을 보고 이제는 봄이다 할 만하면 바람이 불곤 했다. 꽃들은 잔뜩 웅크려 있고 얼마나 추울지 신경이 쓰이는데 그게 전형적인 봄 풍경이었다.

꽃이 피고 푸근해서 봄이 아니라 피는 걸 시샘하고 몰아치는 꽃샘추위가 봄 이미지에 더 가깝다. 겨울이면 봄이 멀지 않은 것도 추워지면서 시작되는 계절의 속성을 뜻한다. 겨울이 추울 때도 꽃샘은 지나갔으나 추워야 제대로 봄이 된다는 건 숙지해야 되지 않을까. 우리 추구하고 소망하는 행복과 이상과 꿈 등이 불행과 역경을 거름으로 해서 피는 꽃이라면, 저 만개한 꽃 역시 눈보라와 얼음 속 흘러가던 봄물이 피워 올렸다.

봄이 아니면 춥고 지루한 겨울을 극복하기 어려운 것처럼 아주 조금 주어지는 행복 때문에 힘든 삶을 견딘다. 나중에 보면 요것이야 라고 생각되겠지만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과정이 짧고 결과가 클 때는 모래 위의 집처럼 불안하지만 오랜 과정을 치른 결과는 반석 위에 지은 집처럼 안전하다. 과정이 길었던 만큼 부작용이 적다. 쉽게 이룬 뒤 예기치 못한 결과 때문에 전전긍긍할 바에는 오래 걸리더라도 안전한 결과를 도모하는 게 낫다.

오솔길을 돌아가는데 저만치 개울이 보였다. 길섶으로는 또 수많은 풀꽃이 피었다. 저렇게 피었다가 갑작스러운 꽃샘에 봉변을 당하는 일도 많았지만 그런 가운데 느끼는 봄도 괜찮다. 따스하기만 한 봄은 자칫 권태로운 계절로 전락한다. 우리 또한 역경이 아니면 고인 물이 썩는 것처럼 무력해질 테니 지분대는 날씨에 적응하면서 의지를 키운다. 봄 액자에 든 눈보라와 꽃샘 등의 다양한 풍경처럼, 좋게 말하면 변덕스러운 거지만 어떤 상황이든 금방 지나간다는 뜻이므로 집착할 건 없다.

불현듯 먼 산자락이 잡힐 듯 가깝다. 찬바람이 부는가 싶더니 후두두 빗발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살구꽃은 마음까지 환해진다. 만개할 동안 절반은 바람이었고 그래 더욱 화사했었지. 누가 꽃샘을 꺼려왔던가. 화창한 봄에 늘 찬물을 끼얹는 것 같지만 애틋한 마음으로 보는 것 또한 날씨 때문이다. 따스한 날 바라볼 때는 이따금 시들해질 것이나 가끔은 겨울보다 썰렁한 속에서의 봄이 더 선명하고 아름답다. 따스해져도 여전한 꽃샘에서 봄의 묘리가 나오듯 힘든 중에도 뭔가 이루었을 때 마음 속 깊이 우러나는 찬사를 보내게 된다.

꽃이 어느 날 불쑥 피는 것 같아도 오랜 과정이 수반된다는 게 생각할수록 묘하다. 봄을 위해서 영하의 추위도 묵묵히 견디고 꽃샘추위라는 치명타를 감수해 왔다. 쉽게 되는 것은 소중함을 느낄 새 없이 사라지고 쉽게 찾아 온 봄은 진정한 봄일 수 없다. 봄꽃이 예쁜 것은 모두가 그렇게 피어난 과정 때문이었음을 거듭 헤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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