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정관영

공학박사, 아름다운학교운동충북본부 상임대표

지난 토요일이다. 평소 존경하며 따랐던 조성훈 회장님께서 타계하셨다는 비보를 듣고 빈소로 달려갔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온 생애를 나눔과 봉사로 일관하며 활발히 사회활동을 하신 분이다. 늘 따뜻한 가르침을 주시며 빙긋이 웃으시는 모습에서 순수함이 묻어나기도 했다.

함께한 지인들과 덕담을 나누는 가운데 삶과 죽음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한국 사회에서 죽음은 누구나 금기시되었다. 임신부는 상가(喪家)에 가지 않고 죽음을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재수 없다며 꺼리는 실정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 남은 가족 친지들을 위해 준비하는 죽음은 최근 사회적으로 어떻게 죽는 것이 인간답게 죽는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대두되며 품위 있게 죽자는 웰다잉(Well-dying)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우리는 죽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안타까운 시대에 살고 있다. 어느 시기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말이 되었다. 병원 침대에서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며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이 우리가 인식하는 죽음의 전부가 아닌가.

아무런 준비 없이 죽음과 맞닥뜨린 상황에서 본인은 물론 남은 사람을 배려하는 여유를 생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로 치부되었다. 스스로 죽음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주위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있을 때 그것이 품위 있는 죽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들어 죽음에 대한 연구가 이어지고 웰다잉을 바라보는 시선도 다양하다. 한편에서는 자살예방을 목적으로, 또 다른 한편에서는 노인들이나 말기 암 환자를 중심으로 웰다잉을 교육하고 있음을 본다. 혹자는 "잘 죽기 위해 잘 사는 것"이 웰다잉이라고 말한다.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웰빙이라면 그 안에 잘 죽어가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는 뜻일 게다.

사람들은 삶과 죽음은 동전의 양면이라는 오랜 명언은 알고 있지만, 현재 자신이 살아 있는 동시에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다. 죽음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며 준비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리라.

우리가 며칠간 출장을 가고 여행을 떠나도 치밀하게 준비를 하는데 하물며 생의 최후를 맞는 죽음에 대해 준비를 하지 않고 금기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에게 죽음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수를 다하고 세상을 뜨지만 자동차사고, 비행기 추락사고, 배의 침몰, 전쟁, 질병, 홍수 등으로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죽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건강하고 충만할 때는 죽음에 대하여 그렇게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아픈 사람이나 나이 든 사람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도 공통으로 적용되는 생의 진리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과 죽음은 상관이 없다고 믿고 싶어 한다. 젊은 사람일수록 죽음을 생각하기를 거부한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예기치 않은 죽음이 많아졌다. 죽음이 노인이나 암 환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잘 죽는 게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많은 사람이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진정한 의미의 웰다잉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웰다잉을 준비하는 시작은 내가 어디서 왔고 누구에게서 왔는지, 왜 존재하고 어떻게 살았는지, 삶의 가치를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삶을 생각하지 않고는 죽음을 준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 번쯤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삶을 생각하게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가 달라지고, 웰다잉이 웰빙으로 바뀔 것이다. 당장 내일 죽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누가 오늘을 헛되이 보내겠는가.

자아 성찰과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로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서이다. 아무리 스스로 성찰하고 후회 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하더라도 가족과 친지, 친구들을 배려하지 못했다면 웰다잉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생에 하루의 시간이 남았다면 무엇을 하겠느냐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여행을 한다거나 연애를 하겠다고 대답한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질적인 삶을 영위하기 위함도 있지만, 사후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사별의 슬픔을 줄여 주는 데 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5년이 되었다. 병마와 싸우시면서 자식들에게 한마디 말씀도 못하시고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회한으로 남는다. 이토록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한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유언 한마디 없이 죽는다면 남겨진 사람들은 그 슬픔을 영원히 가슴에 안고 갈 것이다. 그 슬픔이 상처가 되고 화가 되어 한으로 남을 것이다. 남겨진 한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미리 준비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으로 임종 노트 쓰기는 어떨까. 임종을 앞두고 남기는 말을 하루하루 일기 쓰듯 임종 노트에 쓰면 그것이 바로 나의 유언장이고 기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죽기 전에 쓰는 유언장이 아닌 하루하루의 삶을 반성하고 생명에 감사할 수 있는 소중한 유산이 될 것이다. 임종 노트라고 해서 꼭 죽음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더 잘 살기 위한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약속도 없이 찾아올 그 날을 위해, 평소 내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을 용서해 주었는가. 또한 내가 마음을 상하게 한 사람으로부터 용서를 구했는가. 하는 문제는 죽음에 앞서 우리의 인간관계를 미완성으로 남겨 주지 않음으로써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내 생애의 한 부분인 이웃들과 화평하다고 느낄 때 비록 나의 죽음이 큰 슬픔을 불러올 수는 있으나 죄나 분노는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어느 순간이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우리는 어느 순간이고 살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이를 위해 임종 노트 한 권 남기는 따뜻한 추억의 당신이면 좋겠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