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은 '탑 스페셜티 커피'(Top specialty coffee)이다.
스페셜티 커피 중에서도 '클래스가 다른 어나더레벨(Another level)'에게는 '탑'이 붙는다. 월드커피리서치(WCR)는 리모넨(Limonene) 성분이 많이 들어 있는 지를 보고 탑 스페셜티 커피를 가려 낸다. 이 물질이 많으면 꽃과 과일의 향을 풍성하게 풍기며 커피 음용자를 더욱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축구선수에게 리모넨은 타고 나는 속성이겠다. 대를 잇는 생명체가 지니는 정체성은 혈통에서 비롯된다. 고급 품질의 아라비카 종이 리모넨을 풍부하게 가질 수 있는 것은 100만년 전 두 혈통이 만나면서 부터이다. 1400만년 전 카메룬에서 자라고 있던 치자나무가 동아프리카 지질운동으로 사바나 초원과 같은 평지가 형성되면서 씨앗을 널리 퍼트릴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시간이 흘러 콩고의 열대 밀림에서 살아남은 치자나무는 병충해를 이겨내는 강한 카네포라 종으로 변모했고, 에티오피아 고지대에서는 카페인 대신 향기성분을 더 많이 품은 유게니오이데스(Eugenioides) 종으로 진화했다. 이 두 종이 각각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어 아라비카 종을 만들어 냈다.
손흥민에게는 밀양 손씨와 해평 길씨의 피가 흐른다. 손흥민에게서 강한 애국심이 느껴지는 것은 아버지 집안에서는 손병희 선생, 어머니 쪽에서는 길선주 목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두 분은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이다.
손흥민의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은 거슬러 올라가면 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옹이 지닌 DNA의 기원과 같다. 몸값이 치솟는 가운데에도 연봉을 쫓아 명문 구단들을 기웃거리지 않고 토트넘을 향해 굳은 신의를 지키는 것은 야은 길재에게 핏줄이 닿는 까닭이겠다. 야은은 고려 충신으로서 끝내 조선에 협력하지 않았다. 산골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할지 언정 이방원이 보낸 쌀과 콩 백섬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의 절의와 인품에 탄복한 이방원은 대신들에게 "야은을 본받으라"며 그를 갖지 못함을 아쉬워했다.
커피가 뛰어난 맛과 향을 갖기 위해선 혹독함을 견뎌내야 한다. 목이 타 들어 가는 가뭄 속에서 뿌리를 깊이 내려 비로소 풍성한 미네랄을 비축할 수 있다. 바람이 거세면 가지를 튼튼하게 키워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해발 고도 2천m에 달하는 고지대에서 얼어 죽을 듯한 추위를 수십차례 이겨낸 커피나무만이 씨앗에 경쾌한 산미와 꽃향, 그리고 감미로움을 담아낼 수 있다.
명품은 고난과 고통 속에서 빚어진다. 4년전 발간된 손흥민의 첫 에세이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은 그가 치러낸 역경으로 점철돼 있다. 국내 제도권 축구에 머물지 않고 아버지의 혹독한 지도를 받은 과정과 함브루크-레버구젠-런던으로 이어지는 타향살이…. 손흥민이 낯선 환경에서 치른 고독함은 '어나더레벨'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 차범근-박지성을 이어 손흥민은 마침내 경지가 다른 '문도노보'(신세계)를 활짝 열었다. 그가 낸 길로 수많은 후배 선수들이 걸어갈 것이다. 역사의 발전은 인물을 통해 한 순간 도약한다. 긴 세월 속에서 수차례 멸종의 위기에까지 몰렸던 커피가 '돌연변이' 출현으로 난관을 돌파하며 끝끝내 진화해 온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