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속 쓰러진 아버지 곁 지킨 故 정재수 군

혹한과 어둠 속 아버지 살리기 위한 사투 흔적
도덕 교과서 반영·동상 제작 등 전국서 추모
현재는 묘지·기념관 방문객 거의 없어 쓸쓸

2023.01.17 18:03:22

보은군 마로면 갈전리에 있는 효자 고(故) 정재수 군의 묘지

ⓒ김기준기자
[충북일보] 그해 겨울 설날 아침, 쇠죽을 쑤기 위해 잠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오던 어머니 김일순(83) 여사는 말할 수 없는 불길함에 휩싸였다. 마당 위로 하얀 학 한 마리가 울음을 내며 사라지고, 갑자기 그 자리에 무지개가 섰다. 전날 폭설이 내리는 가운데 30리 밖 큰 집으로 차례를 지내기 위해 집을 떠난 남편과 어린 아들이 걱정됐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오후 부자가 산속에서 동사했다는 비보가 전해졌다.

1974년 1월 23일 설날의 이 비보는 전국을 슬픔과 감동으로 물들였다. 폭설에 쓰러진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자기 옷을 벗어 덮어주고, 꼭 껴안아 몸을 녹여주려다 끝내 아버지와 함께 숨진 효자 고(故) 정재수 군의 이야기다.

보은군 마로면 갈전리에 있는 효자 고(故) 정재수 군의 묘지.

ⓒ김기준기자
당시 10세 소년 재수 군은 경북 상주시 화남면 소곡리 집에서 옥천군 청산면 법화리 큰 집으로 설을 쇠기 위해 전날(22일) 부친 태수(당시 34세) 씨와 함께 길을 떠났다. 큰 도로가 없어 좁은 산길로 30리를 걸어가야 했지만,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올리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힘들지 않을 것 같은 길이었다. 무엇보다 끔찍이 자신을 아껴줬던 아버지의 손을 잡고 가니 더없이 즐겁기만 했다.

어머니(당시 30세)가 차려준 점심밥을 먹고 길을 떠나려는데, 함박눈이 내렸다. 어머니는 먼 길 떠나려면 발이 따뜻해야 한다며 두꺼운 양말과 장화를 준비해 줬다. 아버지는 큰 집에 가져가기 위해 시장에서 사 온 닭 한 마리를 챙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춥지 않은 날씨여서 잠시 뒤 일어날 불행을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그렇게 떠난 길은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길이 됐다. 큰 집이 있는 법화리를 가려면 보은군 마로면 갈전리를 거쳐 가야 한다. 마음씨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는 가는 길에 사람들을 만나면 술 한 잔을 마셨다. 이 때문에 늦어진 발길을 서둘러 재촉했지만, 어느새 날은 저물고 강한 바람과 폭설을 마주해야 했다. 법화리를 2km쯤 남겨 놓고 넘어야 할 마지막 고개인 갈전리 마루목재에 들어섰을 땐 어둠이 꽉 들어찬 상태. 기온은 영하 20도로 급격하게 떨어지고, 눈은 33cm나 쌓여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 없는 밤이 되고 말았다. 그때, 아버지가 눈길에 미끄러지면서 일어나지 못했다. 어린 재수 군이 아무리 일으켜 세워도 소용없었고, 아버지의 몸은 점점 식어가고 있었다. 아니 얼어붙고 있었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사산리에 있는 ‘효자 정재수 기념관’.

ⓒ김기준기자
이 모습을 지켜보던 재수 군은 살을 에는 추위 따윈 아랑곳하지 않은 채 웃옷을 벗어 아버지를 덮어준다. 며칠 전 설빔으로 아버지가 사준 그 옷이다. 그래도 깨어나지 않는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남아있는 체온이라도 전달하려고 그를 꼭 껴안은 채 시간과 사투를 벌였다. 그렇게 점점 밤은 깊어가고, 재수 군도 아버지 옆에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잠으로 빠지면서 저 하늘의 별이 되고 만다.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사고 현장에서 아버지에게 옷을 덮어주고 꼭 껴안은 채 숨져있는 아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쌓인 눈 여기저기에 남아있는 재수 군의 발자국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당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혹한의 추위와 어둠 속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다닌 흔적이라서 그렇다.

이 사실은 바로 언론에 대서특필 됐다. 효를 중시하는 국민에게 '효의 본보기'로 알려지면서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도 실렸다. 서울 어린이대공원 등 전국 각지에 '효자 정재수'의 동상이 세워지는 등 한동안 추모의 물결이 국민적으로 일었다.

경북 상주시 화서면 사산리 ‘효자 정재수 기념관’의 교실 내부 모습.

ⓒ김기준기자
그러나 1994년 재수 군이 다니던 상주 사산초등학교는 폐교됐고, 교과서에서도 이젠 사라져 세인들에게 점점 잊히고 있다. 다만 상주시와 정재수기념사업회에서 지난 2001년 옛 사산초등학교를 '정재수 기념관'으로 설립해 그의 효행을 기념하는 정도다.

그러나 이 기념관은 현재 시청의 시설관리직 1명이 어렵게 관리하고 있으며, 하루 2~3명만 찾아와 쓸쓸하기만 하다.

재수 군의 묘지는 그가 숨진 보은군 마로면 마루목재에 자리 잡고 있다. 세월이 흘러 산길을 따라 2차선 도로가 났지만, 묘지를 찾아보는 이는 거의 없다는 게 마을 주민의 증언이다. 묘지 관리와 제사(음력 12월 28일)상 차림도 그나마 가족이 하고 있을 뿐 그를 추모하는 어떤 행사도 열리지 않고 있다. 묘지의 안내문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보는 사람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내년은 효자 재수 군이 숨진 지 50년, 살아 있으면 환갑을 맞이하는 해다. 그날 밤, 어린 재수 군은 얼마나 무섭고 추웠을까. 죽어가는 아버지를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을까.

아직 생존해 있는 모친 김 여사는 "지난 50여 년 눈만 내리면 벌렁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살아야 했다"며 "산 사람은 산다. 다만, 재수의 효행이 사람들에게서 점점 잊히고, 넋을 제대로 기리지 못해 죽어서 아들을 볼 면목이 없을 것 같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보은 / 김기준기자
효자 故 정재수 군 모친 김일순 여사 인터뷰 https://www.inews365.com/news/article.html?no=748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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