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

2022.05.23 16:06:17

신현애

수필가·공인중개사

해질 무렵, 인가(人家)에서 떨어진 곳에 소박한 건물이 보였다. 산등성이에는 현호색 철쭉꽃이 소담스럽게 피어 있고,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도 들려왔다. 'xx요양원' 선입견 이어서인지 거리가 가까워지자 멀리서 보이던 것과는 다르게 왠지 설렁함이 느껴졌다. 이맘때 쯤 이었을까. 장사익의 "어머니 꽃구경 가요" 하는 절절한 노랫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요양원을 고려시대 유래되었던 '고려장' 이라고 비유하며, 왜곡된 시선으로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갈 수 없는 수용소라고 했다.

언제인가 조간신문, 독자 투고란에 실렸던 글이 떠올랐다. 3남매 맏이인 장남 부부는 맞벌이라서 연로하신 부모님을 둘째 아들이 모시고 있었다. 맏며느리는 남편과 함께 주말이면 양팔이 무겁게 효심을 담아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하지만 아직 유교정신이 남아있는 세대에서, 맏이의 몫인 부모님을 차남에게 맡긴 죄송스러운 마음은 언제나 어깨를 짓눌렀다고 한다. 그러다 형제간 고심 끝에 부모님을 요양원에 모셨다고 했다. 그 후 주말이면 3남매가 함께 뵈러 가니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고, 동서와 시누이와의 관계도 훨씬 좋아졌다고 하며 요양원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 있었다.

20여 년 전부터 간병사와 의료진이 있는 '요양병원' 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어떤 통계는 동네 편의점 숫자보다 많다고도 했다. 장기적인 요양과 치료를 할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어 놓아, 노인복지가 사회복지의 축으로 증진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백세시대를 4계절로 나누어 볼 때 내 나이가 가을 후반을 지나고 있다. 늙음이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여정이다. 하지만 늙음으로 인하여 자신의 삶이 누군가에게 짐이 된다면 정말 맞이하고 싶지 않은 나이 듦이다.

십여 년간 요양원에서 생활하던 지인의 남편이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노인이 의식이 없으니 문병을 가지 말라는 가족의 만류에도 '생전에 한 번 더 뵙는 것이 인사' 일 듯 하여 면회를 갔다. 직원의 안내로 삼층으로 올라가자 창가에서 햇살 바라기를 하고 있던 노인 두 분이 물끄러미 방문객을 바라보았다. 병실로 들어가서 환자를 뵈었지만 이미 의식이 없어 기척을 해도 알아듣지 못했다.

얼마 전, TV 특집 프로 '요양원의 대변신'을 보았다. 일본의 현상을 보여 주었는데 노인의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도심형 요양시설 '잇 큐안'은 주택가 한복판에 자리한 2층 건물로, 1층은 말끔한 음식점이고 2층이 요양원이었다. 건물의 외관은 일본 전통가옥 느낌이지만 내부 인테리어는 현대적인 세련된 분위기였다.

나가하마 기요미치 원장은 각다분한 현대생활에서 자녀들조차 부모를 멀리하는 세태, 노인 스스로 삶의 가치를 찾자고 주장하며 건물의 용도를 음식점으로 변경했단다. 그리고 '음식의 맛으로 잡자'고 했다. 음식 맛으로 소문이 나면 먹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이 찾아 올 거라는 발상이었는데, 예상은 적중해 입주 노인과 주민들이 자연스레 어울린다고 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며 콘서트를 열기도 하니 노인과 젊은이들이 교류해 '대가족 사랑방' 같다고 했다. 시설 좋은 곳에서 균형 있는 식사와 문화강좌는 '잇 큐안'에 입주한 친구를 찾아왔다가 하룻밤 묵어가시는 노인도 있다고 했다. 초 고령화 시대 요양시설은 꼭 필요한 시설이다. 하지만 자신의 거주지 가까이에 요양시설이 들어서면 반대하는 님비(nimby: not in my backyard ) 현상의 대표적인 혐오시설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사회복지시설로서의 인식전환이 필요하고, 건전하고 정직한 요양문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제 노인문제는 국가나 사회에서 책임을 지든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시대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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