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사가독서(賜暇讀書)

2021.10.21 15:34:00

신한서

전 옥천군 청산면장

벌써 첫 벼 베기 소식이 청산에서 들려온다. 아직도 한낮의 햇볕은 제법 따갑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젠 늦여름이라 우길 수가 없다. 등화가친의 계절이다. 책장에 꽂혀있는 한 권의 책에 우연히 필자의 시선이 멈춘다. 2018년 (사)옥천향토사연구회에서 발간한 '옥천의 역사 인물'이다. 전순표 옥천 향토전시관 명예 관장이 집필한 경재 남수문 선생 편에 푹 빠져든다. 여기서 세종대왕의 창의적인 인재양성 방법, 사가독서(賜暇讀書)와 제1기 생으로 선발된 남수문(南秀文)과 신석조(辛碩祖) 선생이 우리 옥천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위대한 왕들이 국정을 이끈 원동력으로 삼은 것은 유능한 인재 양성이었다. 그 인재양성 방법으로 독서를 선택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역대 임금 중 가장 존경받는 성군이 세종대왕이라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세종대왕은 어떤 방법으로 인재를 양성했을까?

세종은 1426년 12월 인재양성을 위해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를 시행한다. 집현전 학자 중 젊고 재행(才行)이 뛰어난 자를 선발해 독서 및 연구에 전념하도록 휴가를 주었다. 모든 경비를 국가에서 부담했다.

제1기 생으로 3명을 선발했는데 권채(權採), 신석조(辛碩祖), 남수문(南秀文)이며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의 지도를 받도록 명했다. 2기 생은 성삼문, 신숙주, 서거정이며 세종 8년부터 영조까지 총 48차에 걸쳐 320명을 선발해 인재를 집중적으로 양성했다.

세종실록(세종 8년 12월 11일)에는 사가독서 1기생 3명을 선발하고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세종대왕이 하신 말씀이 나와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집현관(集賢官)을 제수한 것은 젊고 장래가 촉망돼 글을 읽혀서 실제 효과가 있게 함이다. 그러나 각자 직무로 인해 독서에 전념할 겨를이 없으니 지금부터 본전(本殿)에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전심으로 글을 읽고 성과를 내도록 하라, 글 읽는 규범은 卞季良의 지도를 받도록 하라"고 명했다. 세종이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열정을 쏟아 부었는가를 단적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남수문 선생은 옥천군 양남면 박계리 출신(1906년 영동군 학산면)이다. 신석조 선생은 영산신씨(靈山辛氏)로 그 후손들이 옥천군 청성면 대안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남수문 선생은 약관의 19세 때 대과에 2등으로 합격했다. 세종대왕의 총애로 집현전 학사로 1기 사가독서에 선발돼 학문연구에 매진했다. 25세에는 문과 중시시험에서 장원급제해 천재성을 발휘했다. 옥천향교 명륜당에는 남수문 직제학의 유려한 필력으로 쓴 문장이 지금도 남아있다. 여기서 걸출한 옥천의 문신들이 많이 배출됐다. 옥천이 문향(文鄕)의 고을로 명성을 갖게 하는 토대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신석조 선생은 서울 출생으로 영산신씨 14세 손이다. 약관 19세 생원시에 1등으로 급제하고 21살에 식년시 문과에 급제했다. 세자시강원에 임명되어 왕세자의 서연(書筵)에 참여하고 세종대왕의 총애로 역시 사가독서 1기생으로 선발됐다. 집현전 대제학으로 세종실록, 경국대전 편찬에 참여하는 등 학문이 뛰어났으며 이조참판과 대사헌을 지냈다.

찬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도 지나갔다. 스치는 바람에 성질 급한 나뭇잎들이 하나둘 땅에 떨어진다. 600여 년 전 세종대왕이 인재양성을 위해 시행했던 사가독서(賜暇讀書)를 긴급 소환해 온다. 세종대왕의 인재양성에 대한 열정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1기 생으로 선발된 3명 중 2명이 옥천과 깊은 인연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옥천주민의 한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무엇 때문에 우리 옥천군을 문향(文鄕)의 고장이라 부르게 됐는지 이해가 된다. 책장 넘기는 소리에 가을밤이 짧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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