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문화

2021.10.19 17:13:12

신현애

공인중개사

폭염보다 무서운 코로나19, 4차 대유행 속에도 추석연휴는 시작 되었다. 수도권에서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확진자 수로 이동을 자제해 달라는 방역당국의 당부가 있었지만, 지난번 계획을 내 사정으로 연기했던지라 아무 말 못하고 딸아이를 따라 나섰다. 연중 여행계획을 이번 추석명절에는 '호캉스' 하기로 했던 터, 인터넷 서핑을 해 가까스로 예약하고 전날 역귀성 해서 호텔에 도착했다. 이미 주차장에 빼곡한 차량으로 짐작은 했지만, 로비 곳곳에 가족끼리 지내던 명절 분위기와는 다르게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형형색색의 옷차림은 관광지나 다름없었다. 밝고 즐거운 그들의 표정을 보며 '명절에 여행이라….' 는 마음의 부담이 나만의 우려였음이 느껴졌다.

지구촌을 뒤흔들어 놓은 전염병으로 여행이 자유롭지 못 했던 때문이었을까. 야외 수영장은 여름철 해수욕장 같았다. 중요부분만 아슬아슬하게 가려진 수영복을 입고 있는 젊은이가 있고 그늘아래 조용히 눈을 감고 해바라기를 즐기는 중년의 부부도 있었다. 어느 곳이나 MZ세대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주먹을 쥐고 살아 온 부모세대가 일궈낸 혜택을 누리는 그들의 호사가 낯설면서도 부러웠다. 우리도 일정에 맞춰 곧 옷을 갈아입고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생각하지 못했던 도심 속에 울창한 숲과 자연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직은 따가운 햇살을 피해 잔디밭 옆으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선 베드에 누워, 파란하늘을 보니 명절날 시댁을 다녀오던 일이 떠올랐다.

차량의 극심한 정체로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조상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고향을 간다는 마음은 분주했다. 타향에 산다는 이유로 음식을 함께 준비하지 못하고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일이라면 일이었다. 고향에서는 조카님들이 며칠 전에 벌초를 했다는 연락이 왔고, 질부들은 며칠 전부터 물김치를 담고 식혜를 만들며 차례 준비를 했다. 명절전날에 일찍 출발한다 해도 큰집에 도착하면 언제나 모든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명절날 아침, 기억에도 없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밥과 국을 떠놓고 큰상에 풍성하게 차려진 음식을 보며 음식을 장만한 조카며느리들이 대견하면서도 마음 한편엔 앞으로 누가 '이일을 해 낼 것인가' 걱정이 되었다.

조선시대 때, 제사는 상당한 지위에 있거나 양반가에서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 제사를 봉행하려면 음식이 있어야 하는데 형편이 여의치 못했던 때문이란다. 명절뿐 아니라 기제사 사대봉사를 모신다는 일은 가문의 광영으로 알았고, 제주권(祭主權)을 갖고 있으면 자손 됨의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다고 했다. 지금도 ○○네 큰아들, □□ 맏며느리 하면 달리 보이는 느낌은 그때 상향된 시선으로 보던 인식 때문이리라. 조선후기 신분제가 붕괴되고 10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제사문화는 변했다. 심지어 혼인 말이 오고 갈 때 종갓집 맏아들이라고 하면 여성들이 꺼려할 정도로 부담스러운 일이 되었으니. 점차 제사를 지낼 후손이 줄어들어 때로 맞춤음식으로 대행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여성들에게는 명절증후군을 앓게 한다. 우리 집안도 몇 해 전, 젊은 세대에게는 '물려 주지말자'고 의견 합치를 보았다. 조상님의 은덕을 기리는 마음이 퇴색되지 않기를 기도하며 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한다.

기상예보대로 어제 밤 요란한 천둥을 동반한 비바람이 불었다. 추석날 아침, 한남대교를 건너오는 차량들의 번쩍이는 불빛이 줄을 잇고 있다. 야외 수영장에는 비를 맞으며 투숙객 한명이 수영을 하고 있다. 변화 되어가는 명절문화, 머지않아 고향을 가기위해 선물을 사던 일, 세배 돈을 주려고 은행 앞에 줄 서서 신권을 찾던 일과 돌아오는 가방에 가득담긴 정성이 그리워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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