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커피맛을 좌우한다는 상술

2021.06.14 17:22:48

박영순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 외래교수

커피를 많이 마실수록 물도 많이 마시게 된다. 그렇다고 생두를 제쳐두고 물이 커피의 맛을 좌우하는 양 떠드는 소리들은 모두 '잡음'이다.

국제커피기구(ICO)에 따르면 2020년도 지구촌 커피생산량은 1억7천534만 백(Bag)이다. 한 백의 무게가 60㎏니, 전체 무게는 105억2천40만㎏, 1천만t을 넘는다. 이는 탱크(50t) 20만 대의 분량이고 탱크(8m)를 줄지어 세우면 1천600㎞, 서울과 부산(직선거리 325㎞)을 5회 오가는 길이이다. 소나타 승용차(무게 1.4t, 길이 5m)로 세우면 서울과 부산을 44번 왕복하는 길이가 된다.

커피 생두를 볶아 물로 추출해 한 잔에 담으면 그 무게와 양은 훨씬 더 커진다. 아메리카노 한 잔에 커피는 겨우 2%가량 들어있다. 나머지는 모두 물이다. 스페셜티 커피 유행과 함께 드립 커피를 소비량이 늘어나고 있다지만, 세계인이 가장 많이 즐기는 커피 유형은 에스프레소에 물을 부어 만드는 아메리카노이다. 이 음료가 세계 전체 소비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지난해 생산된 커피 생두 1천만t을 모두 아메리카노로 추출했다고 치자. 원두 14g으로 에스프레소 20~30㎖를 2샷(shot) 추출해 12온스(355㎖)짜리 아메리카노를 만드는 것을 기준으로 잡았다. 편의상 한 잔에 담기는 커피의 비중을 물과 같다고 보면, 커피 1천ℓ의 무게는 1t이다. 생두 1천만t으로 만들 수 있는 아메리카노 커피는 2억5천만t가량. 이는 전남 주암댐(연간 용수능력 2억t)을 건설할 수 있는 수량이다, 생두를 볶으면 20%가량 무게 손실이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해도 세계적으로 매년 주안댐이 공급할 수 있는 수량이 커피로 만들어져 인류의 몸으로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국내 커피소비량만 따져봐도 상당한 규모이다. 2020년 한 해 국내로 수입된 커피 생두 및 원두는 16만8천t. 위와 같은 방법으로 계산했을 때 만들 수 있는 아메리카노 커피는 300만t을 훌쩍 넘는다. 소수력발전이 가능한 유효 저수량이 300만t인 것을 감안하면, 한 해 국내에서만 커피를 마시기 위해 소수력발전소 하나를 만들 수 있는 수량이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커피애호가들로서는 커피를 건강하게 즐기기 위해선 생두의 품질뿐만 아니라 물의 질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이런 점을 노려 '커피의 맛은 물이 좌우한다'는 광고가 판치고, 비싼 장비를 사용해 수도물을 걸러 사용하면 커피의 맛이 확 달라질 것이란 상술이 요란하지만 모두 허튼소리이다. 수돗물을 끊여 사용해도 커피 생두의 품질이 좋고 타거나 덜 익지 않도록 로스팅했다면 커피의 진면목을 즐기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물에 칼슘과 마그네슘과 같은 미네랄이 어느 정도 들어 있느냐에 따라 센물(경수)이 되고 단물(연수)이 되는데, 우리나라의 수도물은 모두 단물에 속하는 것으로 커피를 추출하는데 적절하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조사해보니 한국 성인 1인당 커피 소비량이 연간 353잔(원두 10g을 1잔으로 계산)으로 세계 평균(132잔)보다 3배가량 많았다. 이 경우 아메리카노 1컵을 200㎖로 보면, 국내 성인 한 명이 매년 70ℓ(1.5ℓ 페트병 47개)에 달하는 양이다.

병에 담아 파는 생수는 제조사에 따라 경도(hardness), 미네랄 함유량, pH, 순수도 등이 다르다. 물이 다르면 커피의 추출 양상도 달라져 맛도 다소 다르게 표현된다. 그러나 커피 자체를 좋은 것으로 바꾸는 것에 비하면 무시해도 전혀 상관없을 차이이다. 이를 두고 특정 정수필터를 사용하거나 비싼 생수를 쓰면 커피에 없던 맛도 생겨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것은 상술이다. 비싼 장비에 홀려 허튼데 돈쓰지 말고 커피가 지닌 본연의 매력에 집중하는 실속 있는 여름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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