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 안식을 얻다

2021.05.12 17:34:36

김춘자

수필가

셋째 딸이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 발령이 나기 전에 마음에 긴장도 풀기위해 북해도 여행을 함께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가슴을 설레게 했다. 우리는 천주교회를 개조해 만든 오랜 역사가 숨 쉬는 호텔에 투숙했다. 경건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기품과 성모 마리아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동화 같은 아름다운 경치와 맑은 공기를 마시며 딸아이와 손을 잡고 아침 산책길에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맑은 물이 솟아올랐다. 주위에는 개 두 마리가 짖지도 않고 어슬렁거린다.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인 없는 들개인 것 같았다. 개들도 산책을 하나 보다고 생각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가이드에게 원천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깜짝 놀란다. 이곳에는 여우와 늑대가 출몰한다고 했다. 아마 둘 중의 하나일 거라고 했다. 만약 그것이 여우나 늑대라는 걸 그때 알았더라면 오금이 저려 오도 가도 못 했을 것이다. 가끔은 모르는 게 약이 될 때도 있는 것 같다.

일본에서 돌아오는 길에 부산에서 내렸다. 부산은 학창시절 추억이 있는 곳이다. 수학여행을 해운대로 갔었다. 파도가 바위와 부딪쳐 포말을 일으키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모습을 보며 내가 포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영도를 지나 태종대로 향했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한가해 보인다. 옹기종기 모여 사는 시골 모습이 떠오른다.

조용히 휴식하며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바닷가에 세컨 하우스가 한 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바다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아파트를 찾아다녔다. 처음 소개받은 매물은 수리가 끝나 손을 볼 데가 없는 깨끗한 내부가 마음을 잡았다. 한 면은 산이 그림처럼 보이고 다른 면은 거제도가 보였다. 쪽빛 바다에 수심이 낮아 해수욕하기에도 좋아 보였다. 두 번째 매물로 들른 곳은 도배조차 하지 않은 내부에 조금 실망했다. 해안 도로가 아파트를 끼고 도는 것은 장점으로 보였다. 베란다로 나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니 대마도라고 했다. 일본 땅을 아파트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새로운 느낌이었다. 다른 쪽으로 보이는 곳이 거제도라고 했다. 수리비야 좀 들겠지만, 후자로 계약을 했다. 구조 변경 업체에 견적을 받고 해운대에 사는 동서에게 살펴봐 주기를 부탁했다. 지금은 휴가 때가 되면 아이들이 돌려가면서 쉬러 간다. 우리도 가끔 내려가서 거실에 누워 하늘에 별도 보고 달도 본다. 정박한 배들이 불을 밝히면 불야성이 된다. 바닷속이 면경처럼 맑은 해안 도로를 산책할 때면 가슴에 쌓인 묵은 체증이 실타래처럼 풀어진다. 바다 냄새도 엄마 젖내 음처럼 살갑다. 바위들은 파도에 깎여서 모난 곳이 없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으면 부드러운 방석에 앉은 것처럼 편안하다. 어디선가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둘레를 살펴보니 해녀들이 아침 일찍부터 물질하고 올라오며 숨을 내뱉는 소리다. 가까이 다가가니 전복, 해삼, 멍게를 쏟아 놓는다. 전복 회를 주문했다. 회가 나오기 전에 해녀들이 먹는 아침 식사라며 우럭을 넣어 끓인 미역국을 내준다. 해녀들만 먹을 수 있는 특식이란다. 파도가 촬좌르르 가만가만히 노래를 부른다. 아파트로 돌아와 거실에 누웠다. 태양이 바다에 놀러 오니 금빛 은빛으로 반짝인다. 오늘이 12월 그믐이니 내일 새벽 무진년 새해의 해맞이를 아파트에서 할 수 있다. 다음날 새벽에 우리는 베란다에 이불을 둘둘 말고 나란히 앉았다. 바닷물이 장밋빛으로 퍼져나갔다. 바닷속에서 나온 태양이 장관을 이룬다. 막내를 선두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 아파트에는 액자를 걸지 않았다. 바라보이는 풍경이 대형 액자다. 해 뜨는 새벽도 노을이 지는 바다도 아름답다. 갈매기가 끼룩끼룩 비행한다. 새우깡을 허공에 던지면 날쌘 제비처럼 부리를 벌려 새우깡을 낚아챈다. 재미있고 신기하여 던지다 보면 갈매기에게 봉지를 탈탈 털어 주게 된다.

바다는 어머니의 품속 같다. 무한대의 바다, 무한대의 자애, 가만히 눈 감으니 나는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기어 포근히 잠들고 있는 듯 한 착각을 느끼며 어렴 프시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된다. 이 관대의 정(情), 달콤한 맛은 어머니의 품이 아니면 어디서 맛보랴.

큰 것을 보고자 하는 자. 넓은 것을 보고자 하는 자는 시원한 바다를 보라고 하였다. 뭍과 바다가 하나 되는 해변을 우리는 손을 맞잡고 다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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