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과 포숙아, 상생의 리더십

2021.04.15 17:06:11

장승구

세명대학교 교수

앞으로 1년, 한국정치는 또 한번의 큰 소용돌이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교육 수준이 가장 높고, 정치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다. 그러나 역대 정치를 보면 불행한 일이 되풀이 되고 있다. 왜 그럴까· 좋은 정치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역사 속에서 성공한 정치 리더십의 좋은 예는 춘추시대 관중(약 B.C.725년 ~ B.C.645년)과 포숙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관중과 포숙아는 좋은 친구 사이의 우정을 일컫는 '관포지교'로 잘 알려져 있다. 사실 관중과 포숙아는 좋은 친구 사이만은 아니고, 치열한 경쟁관계이기도 하였다. 관중은 삼국지의 주인공 제갈공명도 흠모하는 중국 최고의 정치인이었다. 그는 제(齊)나라의 재상으로 40년간 정치를 하면서 제나라를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든 성공한 정치인이었다. 그런데 관중의 화려한 성공 뒤에는 포숙아의 도움이 있었다.

관중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 전에 젊은 시절에는 실패도 많이 겪었다. 관중과 포숙아는 젊은 시절에 함께 장사를 하기도 하였다. 같이 장사를 해서 수익이 나면 관중이 더 많이 챙겼다. 하지만 포숙아는 이를 비난하지 않고, 관중이 형편이 어려워서 그런 것이라고 이해해 주었다. 관중이 전쟁에 나가서 비겁하게 도주한 적도 있었지만, 포숙아는 관중이 노모가 있어서 그럴 것이라고 여겼다. 관중은 벼슬을 위해 군주에게 나아갔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그럼에도 포숙아는 관중이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고 이해해 주었다.

관중이 젊은 시절 많은 실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이해해 주고 자기의 재능을 인정해 주는 포숙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중은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라고 고백한다. 요즘처럼 세상살이가 어렵고 힘든 시절에 포숙아처럼 자신을 이해해 주는 친구가 한 명만 있어도 이 세상은 외롭지 않을 것이다.

관중과 포숙아는 제나라 군주 희공의 아들들을 맡아서 가르치는 공자(公子)의 사부가 되었다. 관중은 형인 규(糾)를 포숙아는 동생인 소백(小白)을 맡아서 가르쳤다. 제나라 군주가 죽고 난 뒤 후계자 경쟁에서 포숙아가 보좌하던 소백이 승리하고, 관중이 보좌하던 규는 패배해서 죽음을 당했다. 관중은 섬기던 공자를 따라 죽어야 했고, 포숙아는 재상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포숙아는 제나라 환공이 된 소백에게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했다. 환공으로서는 자신을 죽이려고 하였던 정적을 재상으로 기용하는 것이 감정상 용납하기 어려웠다. 그렇지만 포숙아의 강력한 설득으로 유능한 관중을 재상에 등용하였다. 그리하여 관중의 뛰어난 리더십으로 제나라는 수많은 경쟁 국가를 누르고 춘추시대 최초의 패권국가가 되었다.

만약에 포숙아가 자신과 친구이자 라이벌이기도 한 관중을 죽이고 스스로가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제나라는 그다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고, 포숙아도 오랫동안 재상 자리를 지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포숙아는 유능한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하여 그 덕에 제나라는 최고 강대국이 되었고, 포숙아도 대신으로서 오랫동안 권력을 누리고 역사에 아름다운 이름을 남겼다. 관중과 포숙아 중에 누가 더 훌륭한 인물일까· 물론 정치적 업적과 능력으로 보면 단연코 관중이 뛰어나다. 그러나 공자는 자신에게 돌아온 재상의 자리를 양보하고 관중을 천거한 포숙아가 어질다고 최고의 찬사를 보낸다. 훌륭한 정치인이 되는 것보다도 유능한 잠재력을 지닌 사람을 추천하는 사람이 더 어질다고 보았던 것이다. 포숙아는 관중을 천거함으로써 관중뿐 아니라 본인도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나라도 크게 발전시키는 일석삼조의 승리를 얻었다.

관중의 리더십과 정치철학은 『관자』라는 고전에 잘 나타나 있다. 관중은 백성의 본성과 감정을 존중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이익을 좋아하고 잘 살기를 바란다. 정치는 백성의 이런 욕구를 충족시켜주어야 한다고 보았다. 관중은 법은 중시하고, 거창한 이념보다 실용적인 것을 추구하였다. 뛰어난 정치 이론은 많지만 성공한 정치는 현실 역사에서 보기 드문데 관중과 포숙아의 상생의 리더십은 이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우리나라에도 국가발전과 민주주의를 위해 독선과 아집을 벗어나 정적과 라이벌을 포용하는 상생의 리더십이 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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