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순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 외래교수
아침에 집을 나서며 남서쪽을 향해 "맹글라바"라고 기도하듯 외쳤다. 미얀마 말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이다.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민주화운동으로 시민들이 연이어 목숨을 잃고 있다. 안타까움과 분노가 교차하는 소식에 지구촌 곳곳에서 미얀마를 향한 지원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사단법인 사람예술학교 권태훈 이사장이 유튜브 및 페이스북 방송 등을 통해 미얀마 민주화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해 성금이 답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5.18 광주의 얼과 미얀마 민중의 얼은 다르지 않다"면서 "미얀마 쿠데타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우리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권 이사장의 외침이 전파를 타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그는 지난 10년간 미얀마 오지를 다니며 난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몸을 던졌다. 언어와 종교, 이데올로기에 따라 크게 8개 지역으로 쪼개져 내전이 끊이지 않는 미얀마에서 탄압을 받는 소수민족을 돕는 일이란 목숨을 건 일이다.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미얀마 오지에서 교육활동을 벌이면서 외교부 산하 사단법인으로 조직이 장했다. 2~3년전부터 미얀마에 난민어린이를 위한 학교를 세우는 일을 추진하고 있는데, 부지까지 마련하고 건축을 위한 지원활동을 벌이는 가운데 미얀마 사태가 터졌다. 휴대전화를 통해 희생자의 소식이 전해져 사람예술학교 사람들을 오열케 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거의 1년간 현지를 가지 못해 아이들과 주민들의 건강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이젠 쿠데타로 인해 생명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미얀마 맹글라바". 이 말과 문구가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주문인 양 퍼져 나가고 있다. '안녕하세요'는 사전적으로 "아무 탈 없이 편안한가요·"라고 안부를 묻는 말이지만, 말소리를 헤아리면 보다 깊은 뜻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녕(영)'을 영혼으로 풀이하면, '당신의 영혼은 편안하십니까'라고 하는 인간 존중에 대한 신념을 다짐하는 구호가 된다. 이런 활용은 작금의 미얀마에게 카이로스처럼 적확하다.
'미얀마(Myanmar)'이기도 하고, '버마(Burma)'이기도한 혼란스런 국가 이름에 역사적 아픔이 담겨 있다. 9세기경 형성된 버간 왕조는 11세기부터 250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아노야타 왕이 원주민이던 버마족을 통합하고 불교를 국교로 세워 캄보디아의 앙코르왕조와 견줄 정도로 국력을 키웠다. 12세기 나라 전체를 지배하는 민족으로 '무란마'라는 명칭이 자리를 잡게 됐는데, 이를 사람들은 '버마'라고 발음하면서도 영어로는 '미얀마'로 적었다. 그들에게는 무란마에 가장 가까운 표기법이었기 때문이다.
아웅산 수치를 비롯해 미얀마 사람들은 오랫동안 두 가지 이름을 혼용하면서 별 불편함을 느끼지않았지만, 1989년 군부가 국호를 버마 대신 미얀마로 공식화하면서 이데올로기를 씌웠다. 민주화 운동가들은 "군부가 버마를 영국 식민지시대의 잔재라고 주장하며 애국심을 이끌어 내려 하지만 이는 쿠데타의 잘못을 숨기려는 수작"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영국은 기독교를 전파하기 위해 다수가 불교인 미얀마 사람들을 이슬람 소수민족을 동원해 탄압했다.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루트와 종교대립이 미얀마에 깊은 상처를 냈다.
마침, '미얀마 맹글라바 커피'가 등장해 구체적으로 미얀마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사람예술학교가 현지에 학교를 세우기 위해 미얀마 커피 공정무역을 시작했는데, 커피 생두가 국내에 들어온 뒤 쿠데타가 발생했다. 커피애호가라면 미얀마 맹글라바 커피를 마실 시기이다. 시대정신처럼 커피에도 시대에 어울리는 커피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