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애

공인중개사

신축년 새해아침 거실 커텐을 젖히니 짙뿌연 안개가 창밖에 우두커니 서 있다. 간간이 날리던 눈은 반월이 중천에 떠 있을 때 부터 흩날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태어난 해의 지지地支를 동물이름으로 일러 두 번째, 포유류인 소. 올해는 흰소의 해란다. 토템사회에서 인간이 동물을 가까이하던 유풍에서 자신의 인생을 천신과 지신, 동물마저 영수靈獸처럼 숭배하며 살아보려 노력했다는 신화이다. 세상의 만물 중에 이름 없는 것도 있을까.

 '너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의미 없던 잡초가 꽃으로 다가 왔다' 는 어느 시인의 시구, 사람에게 이름은 생애 불가분의 관계이다. 누구나 스스로 짓지 않았을 이름, 선인께서 고심하며 지어 주셨을 이름이다. 어느 인사는 인간은 본능적으로 저마다의 이름을 알리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했고, 유명작가는 자기의 이름을 귀하게 지키는 것은 결코 남의 몫이 아니라고도 했다. 역사의 기록에 스스로 이름을 남기려 하지 않았어도 후대인들은 훌륭한 이의 행적을 쫓아 비갈碑碣에 업적과 이름을 아로 새겨 놓았다. 한편 눅눅한 삶의 소유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기적記績에 올리고자 안간힘을 쏟았고, 인륜을 저버린 자는 족보에서 빼라는 극한에 이른것도 이름이었다. 이루지 못한 성공을, 이룬자의 이름 옆에서 자신의 존재를 함께 걸어 놓으려고도 한다. 어떤 이름은 생각만 하여도 기분이 좋아지는가 하면 어떤 이름은 기억에서 지워 버리고 싶은 이름도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한 친구의 학부모 이름난에 아버지 이름이 '최쌍출'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철부지 친구들과 얼마나 웃었던지, 짖궂은 아이들은 놀리기까지 하였다.

 지난 해 담양으로 문학기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빛이 스며드는 숲사이로 바람이 불때마다 '사르르 사르르' 대나무 가장이 사이에서 놀던 바람이 해사하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가늘고 긴 신우대가 터널처럼 감싼 오솔길에는 여름볕 한낮임에도 서늘하고 어두컴컴 하였다. 하늘로 곧게 벋은 대나무는 성장속도가 무척 빨라 '하루에 1미터 자라는 종이 있기도 하다'는 해설사의 설명이 있을 때, 어섯하게 눈에 띄이는게 있었다. 그것은 마다마디에 새겨진 이름들 이었다. 정00 김ㅁㅁ도 있고 가까운 고장인 괴산 이 도 있었는데 누구인지 몰라도 주변도시에 산다는것 하나만으로 아무도 모르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도린곁 도 마찬가지였다. 모죽의 시간을 견뎌 온 여리디 여린 표피를 긁어내며 이름을 남기고자 했던 그들의 염원은 무엇 이었을까. 가끔 산행에서 우묵주묵한 너럭 바위에 숱한 이름으로 파여져 있는 것은 보았지만 새살을 드러내며 죽죽 자라고 있는 대에 새겨진 글씨는 처음이었다. 어쩌자고 청량한 숲속에 자기의 존재를 이렇게까지 상흔으로 남겨 놓았는지. 선명한 이름은 인간의 이욕利慾을 항변이라도 하는 듯 보였다.

 젊은 날, 나도 이름을 알리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썻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사무실 상호가 실명으로 되어 있어서 일과 직접 관련한 광고 효과를 기대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일간지 광고를 시작으로 월간지, 사무실 사방 유리창과 문앞 배너광고 아파트 엘리베이터와 명함. 인터넷을 비롯하여 심지어 살고있는 집의 절반 높이인 삼층의 벽간판에 돋을 새김 된 이름 세글자는 남다른 광고였다. 동료 공인중개사는 나에게 '이름에 한이 맺혔느냐'고 묻기까지 하였다. 한번은 작명가의 구술에 개명을 하면 '대운이 온다'기에 이름을 바꿔 보기도 했지만 대운이 왔는지 갔는지 기억에 없다.

 새해 아침, 창밖의 눈을 보며 갈마드는 마음이 든다. 지난 일을 되돌아 보고 새로운 다짐을 하며, 올 한해도 이름을 잘 지키고 살아갈 수 있도록 비손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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