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특례시가 의미 있나

2020.10.13 17:26:19

[충북일보] 그곳은 아이들에겐 놀이터였고, 어른들에겐 쉼터였다. 생활 오·폐수가 흘러들어와 수질은 썩 좋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즐기는 낭만과 추억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물고기를 잡는 아이들에서부터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남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의 욕구를 충족해주는 곳이었다.

시민 요구 미반영된 개발

겨울에는 모충교 아래 빙상장이 만들어져 시민들이 썰매와 스케이트를 즐겼고, '동상'(凍傷) 위험에도 아랑곳없이 얼음 배를 만들어 상·하류를 오르내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아이들도 많았다. 수질 상태가 양호한 상류지역에는 아낙네들의 빨래터가 곳곳에 있어 마음 따뜻해지는 시골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며 지금은 모두 벌목돼 사라져 버린 천 주변으로 즐비했던 버드나무는 무심천의 정취를 한껏 돋보이게 했다. 정월대보름에는 쥐불놀이 행사의 주 무대였고, 초·중·고 사생대회와 모형보트 대회도 종종 개최됐다. 유치원·초등학생에게는 살아있는 자연학습장이었으며 밤이면 일본 훗카이도 하코다테 거리처럼 포장마차가 즐비한 '주당'(酒黨)들의 천국이었다. 불과 40년 전만 해도 청주 무심천은 다양한 이들이 찾는 명소였다.

청주시는 7년 전부터 약 5년 동안 생태하천 조성을 위한 '무심천 고향의 강' 정비사업을 진행했다. 국비 177억 원, 도·시비 등 총사업비 297억 원이 투입된 제법 큰 사업이었다. 이 사업은 2013년 착공해 무심천 6.7㎞구간에 산책로, 쉼터, 생태공원, 식재, 수중보 등을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지금은 모든 사업이 마무리된 상태다. 고향의 강 정비사업은 말 그대로 어린아이들이 안심하고 뛰어놀 수 있는 과거와 같은 자연스러움을 되찾자는 취지가 담겨있다. 그러나 취지와 달리 상습침수지역 내 잔디를 깔거나 나무를 심는가 하면 수질오염을 일으키는 건설자재를 이용한 보행·자전거 도로가 설치됐다. 취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만 상습침수지역 내 이러한 개발행위는 공감을 얻지 못했다.

지금 이 시설들은 호우로 쓸려 내려가거나 원형의 모습을 상실한지 오래다. 수백억 원의 혈세가 몇 번의 호우로 의미 없이 쓸려 내려갔다. 준공 후 초기엔 간간히 보수작업이 이뤄졌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점을 인식한 뒤부터 더 이상 예산을 들인 정비사업은 진행하지 않는다. 보행 도로는 자전거 도로와의 경계가 분명치 않아 인사사고가 늘 상존해 있다. 보행도로 주변으로는 억새와 생태교란 외래식물들이 우거질 대로 우거져 이용자들의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해가 진 뒤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인접한 구간을 제외하고, 조명시설이 없어 무섭기까지 하다. 무심천 곳곳에 설치된 운동시설은 찾는 이 없이 세월에 녹이 슬어가고 있다.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의 물결로 명소가 돼야 할 무심천이 적막에 휩싸여 있다. 그저 갈 곳 없는 노인들이 다리아래 그늘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곳으로 전락해 버렸다. 대중교통이 없어 접근성도 떨어진다. 청주 중심을 관통하는, 마치 서울의 한강과도 같은 무심천의 활용도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사용자의 요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과다.

생활 인프라 확충부터

청주시는 몇 년 전부터 지방자치법 정부안 제195조(대도시에 대한 특례인정) '인구 50만 이상으로써 행정수요, 국가균형발전 등을 고려하여 대통령령이 정하는 기준과 절차에 따라 행정안전부장관이 지정하는 대도시'를 근거로 특례시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자 보은을 제외한 도내 9개 시·군 단체장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특례시와 비특례시 지자체간 부익부 빈익빈 현상 심화 등 재정격차만 키우는 역효과 발생 우려'를 반대의 주된 이유로 들었다.

찬·반 진영 모두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모습이다. 결코 생산적이지 못한 싸움이다. 청주시는 반대 목소리에 서운함을 느낄게 아니라 특례시에 걸맞은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지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청주의 젖줄'이라고 자평하고 있는 무심천조차 명소로 가꾸지 못하는 상황에서 특례시 승격이 의미있는 것인지 곱씹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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