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특집]충북 최초 코로나19 집단감염지,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명절 앞둔 장연면 오가·거문마을 분위기 '썰렁'
지난 3월 두 마을서 주민 11명 코로나19 확진
감염 우려·일손 부족 등 집단감염 여파 지속
주민 똘똘 뭉쳐 위기 극복…"더 좋은 날 올 것"

2020.09.28 21:24:24

[충북일보] 코로나19는 9개월도 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에 우리의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사람들이 모여 희로애락을 나누던 흔한 풍경을 지워 버린 바이러스는 수천 년간 이어온 전통마저 뒤흔들며 한층 더 맹위를 떨치고 있다.

언제쯤 이 시간을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

추석 연휴를 1주일 앞둔 지난 23일,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거문마을에서는 예년과 같은 명절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함께 명절음식을 준비하고 민속놀이를 즐겨야 할 마을회관의 문은 닫혀 있었고, 마을 곳곳을 다녀도 인기척은 거의 없었다.

추석 명절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지난 봄 코로나19가 휩쓸고 간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거문마을에는 예년과 달리 적막감만 감돌고 있다. 23일 만난 정진학 이장이 당시 상황과 현지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신민수기자
마을 어귀에서 만난 정진학(66) 이장은 "추석 즈음이면 다 같이 송편을 만들고 윷놀이를 했지만 지금은 밥 한 끼도 같이 할 수 없다. 명절을 그냥 지나가기로 한 집이 많아 썰렁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거문마을 주민들은 코로나19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는 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봄 인근 오가마을에서 시작된 집단감염의 여파가 이곳까지 닿으면서 주민 2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다.
이에 모든 주민들은 2주간 자가격리 됐고, 이후에도 서로 왕래가 줄고 외지인의 출입을 제한하는 등 몇 개월 간 '코로나19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코로나19 회복자인 유재용(64)씨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마을에 피해를 줬다는 미안함에 괴로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완치 판정을 받은 지 오래됐어도 금세 목이 쉬고 체력이 떨어지는 등 건강 이상 증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발길을 돌려 오가마을로 향했다.

장연면에서는 지난 3월 4일부터 10일까지 오가마을 9명, 거문마을 2명 등 주민 11명이 잇따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충북 최초의 집단감염 사례였고 정확한 감염원이 파악되지 않으면서 공포와 불안이 지역 전체를 휩쓸었다.

단지 오가마을 마을회관을 이 지역 코로나19 확산의 진원지로 추정할 뿐이다.

바이러스가 이곳을 떠난 지 반년 넘게 지났지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정선용 장연면 부면장은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자 주민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였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이고 대구지역 코로나19 확산세가 극심했던 터라 혼란이 더 컸다"고 밝혔다.
코로나19는 농촌의 인력난도 심화시켰다. 외국인 인력 수급이 어려워진 탓이다.

당장 일손이 급한 절임배추 생산농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배추밭에서 만난 한 농민은 "인력은 부족한데 품삯은 올라 내국인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타지에 살고 있는 자식들을 불러야 할 처지"라고 토로했다.
만약, 코로나19가 다시 확산하면 마을 특산물인 옥수수와 절임배추 판매가 크게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명절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현실이었다.

코로나19는 두 마을 주민들에게 가볍지 않은 상처를 남겼다.

그럼에도 이날 만난 모든 사람들은 대화 말미에 꼭 '희망'을 이야기했다.

힘들고 어려운 난관을 잘 극복하면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두려움 속에서도 서로 아끼고 존중하는 배려 또한 돋보였다.

주민들은 '코로나19에 감염됐던 이웃들의 마음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오히려 걱정하며 서로를 챙겼다.

오가마을 주민 박정순(64)씨는 "주민 모두가 똘똘 뭉쳐 위기를 넘어섰다. 지금은 힘들지만 더 좋은 날이 올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경각심을 더 갖게 됐고, 내가 잘못하면 남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

내년 추석에는 온가족이 모여 오늘의 아픔을 추억으로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 신민수기자 0724sm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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