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에 새로운 의대를 짓기 전에

2020.09.24 16:29:26

한정호

충북대병원 내과교수

 얼마 전 출장으로 남원에 다녀왔다. 30년 전 남원역에 내려 역 구석에 신문지를 깔고 날이 세기를 기다려 첫차를 타고 노고단을 오르러 가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서 시내를 둘러보았다. 도로는 잘 정비돼 있었지만 도심에 빈집도 많고 새롭게 주변이 계발된 것으로 보이는 곳도 없었다. 인터넷으로 남원을 검색해보니 과거 18만 명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8만 명이었다. 필자의 처가가 충북 진천이라 종종 진천에 갈 때면, 새로운 아파트와 공장이 들어서고 있다. 진천은 벌써 인구가 8만 명을 넘었고 시승격을 추진한다고 한다.

 지난달 전국의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전임의가 사표를 제출하고 파업을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4가지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남원에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을 신설한다는 것이다. 정부와 여당에서도 이 부분을 물러서지 못하겠다는 기류가 가장 강했고, 젊은 의사들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며 반발한 지점도 이 남원의 의전원 설립이다. 남원의전원 게이트란 말까지 나온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알아보자.

 첫째, 강원도에 의과대학 입학 정원이 연 267명, 전북 235명, 광주·전남 251명이다. 충북은 몇 명일까? 자그마치(?) 89명이다. 그나마도 서울로 대부분 옮겨버린 충주 건국의대 40명을 제외하면, 실제 의대 정원은 겨우 49명이다. 내가 충북인이라 지역주의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의 상식으로 묻고 싶다. 이게 말이 되나? 대부분의 의과대학은 지역 인재 정원으로 해당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 정원의 30%를 우선 선발하고 있다. 충북의대는 14명 정도의 지역 인재를 해마다 우선 선발하는데, 그나마도 충북 한정이 아니라, 대전·충남·세종에 동일한 기회를 주고 있다. 이에 비해 다른 지역의 의과대학은 전북이나 전남으로만 한정한다. 이러다 보니, 충북의대에 충북지역 학생은 해마다 10%(5명)도 들어오지 못한다. 지역의 정치권과 교육계는 지역거점 국립대학이 해당 지역 학생들이 소외받는 이 상황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미국의 주립대학은 해당 주에 세금을 낸 부모를 둔 학생의 교육비가 대부분 면제시켜주지만, 같은 미국인이어도 다른 주에서 온 학생들에게는 높은 교육비를 받는다.

 둘째, 의학전문대학원은 이미 실패한 제도로 용도 폐기됐다. 20년 전 정부는 다양한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이 의전원에 들어오면, 의과학 등의 기초 분야에 더 많은 졸업생이 몰릴 것이라는 허황된 환상으로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부분의 의대들이 믿지 않고 따르지 않자, 당근을 주었다. 30년 전 충주에 500병상 이상의 종합병원을 건립하는 조건으로 건국의대를 승인했건만, 의전원으로 의대를 전환하면 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거대한 당근. 덕분에 건국대는 서울에 1천 병상 이상의 대형병원을 신축했고, 경기도 포천에 병원을 지었어야 할 포천중문-차의과대학은 분당 차병원으로, 급기야 강원도 강릉의 관동대는 아예 의대를 인천성모병원에 팔아버리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 와중에 남원에 같은 조건으로 인가를 해준 서남의대는 투자 없이 학생들의 등록금과 정부 보조금만 빼먹다가 폐교까지 됐다. 그런데, 의전원 졸업생에게 어떠한 강제적 전공선택도 없이 다시 의전원을 남원에 천억의 예산으로 건립한다. 그리고 다시 수천억의 혈세로 유지한다는 것에 동의할 지성인은 없을 것 같다.

 셋째, 남원의 적은 인구로 500병상 이상의 병원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정부에서도 인정했다. 그래서 의전원만 남원에 짓고, 교육은 서울의 병원에서 위탁교육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코로나 정국으로 하루라도 빨리 의사가 필요하다며 강행해 이 파국까지 만들었다. 그냥 강원도 의대 정원의 5분의 1인 밖에 안되는 충북에 남원의대 정원 50명을 배정해 선발하면 너무도 간단히 해결될 문제 아닌가? 혈세도 안 들이고, 전국 최하위 지역 의대 정원도 조금이나마 바로잡을 수 있고, 인구 당 의사수도 최하위인 충북의 지역 인재 전형도 확대해 다시 고향에서 일할 수 있는 의사도 육성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몸과 월급봉투는 충북에서 받으면서, 마음과 소비는 서울에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도민들에게 묻고 싶다. 말로만 충북이 내 고향이 아니라, 네이버 포탈에서 서울 뉴스만 보지 말고, 우리 지역에 눈을 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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