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와 '1인칭 전지적 시점'

2020.09.17 15:56:58

안남영

전 현대HCN 대표이사

20년 전 한국어를 좀 하는 태국인에게 물어본 일이 있다. 한국어에서 뭐가 제일 어렵냐고. 대답은 조사의 쓰임새라는 것이었다. 특히 '-이/가'와 '-은/는'의 구별이 어렵다고 했다. 제대로 설명을 못해 줬던 기억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학창시절 배운 바로는 둘 다 주격조사다. '-은/는'의 경우 요즘 문법에선 주격조사가 아니라 특별한 것(보조사)로 취급하지만 다분히 주격이나 진배없다.

"내가 도와줄게"와 "나는 도와줄게"는 뉘앙스가 분명 다르다. 한국인이라면 그걸 귀신같이 구분해서 쓰면서도 정작 차이를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이/가'는 주어에 힘줄 때 쓰고, '-은/는'은 서술어에 방점을 둘 때 쓴다. 또 처음 등장인물을 소개하거나 누가(무엇이)를 묻는 질문에 답할 때 주어는 '-이/가'를 취한다. 반면 '-은/는'의 경우 "딴 사람(것)은 몰라도", "○○로 말할 것 같으면"이란 뜻이 숨어 있다.

이런 딱딱한 문법 이야기를 길게 끌어들인 것은, 최근 사람들 말본새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자기 유리한 쪽으로 주어나 서술어를 강조해서는 언필칭 소통부재를 불러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서다. 일종의 동문서답이요, 혼동하는 게 아니라면 교묘하거나 엉뚱한 의도를 깐 딴청이니 말이다. "누구냐?"라고 주어를 물었는데, "~는 아니다."라고 답하거나 "맞느냐?"라고 서술어를 물었는데 "내가 왜?"로 받아치는 식이다.

좀 널리 말하면, 이런 걸 논리학에서 말하는 주의전환 오류, 이른바 허수아비 논법이라 할 수 있겠다. 싸우다가 "너 몇 살이야?"라는 '갑툭튀'도 그런 예다. 말로 못 당하니 말하는 사람(메신저)를 공격하는 사례인데 주어와 서술어의 무게중심을 휙 돌려놓는 수법이다. 이런 의도된 오류의 뿌리는 오만 또는 비겁 둘 중 하나다. "우리 개는 안 문다"는 식의 서술어 맹신도 오만의 일종이다. 이래 갖고는 대화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런 유의 대화불능이 왜 생기는 걸까? 생각건대 인간의 본성 탓이다. 곧 자기방어 본능이다. 그만큼 인간은 이기적 존재다. 진화론자 R.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프로그램된 '생존 기계'고 했다. 단적으로 말하면 유전자 설계도에 따라 생존과 번식을 위해 맹목적으로 살다 가는 게 인간이란 얘기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생존본능이 동물한테만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자기방어적 이기심이야말로 생명의 동력이겠지만 인류사를 보면 이것이 늘 갈등의 씨앗이 됐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문명은 그 야만적 이기심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특히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정의의 개념을 만들어낸 것은 위대한 업적이다. 하여 인권과 정의가 오늘도 어디선가 조금씩 자라고 있겠지만, 반면 문드러지는 일이 허다하다. 한쪽에선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고 또 한편에는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현실….

J.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이 소유제도 보편화 때문이라며 인간의 소유 본능을 건드렸다. 사실 소유 욕구는 공동체 속에 타인과 부대끼면서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과도 같다. T.피케티 교수는 최근 펴낸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자연적이지 않다는 건 모든 역사에 공통된다고 했다. 인위적이란 얘긴데 달리 말하면 이기적인 소유 본능의 결과로 본 거 아닐까. 그는 이것이 사회적으로 구조화된 것을 '소유 이데올로기'로 불렀다. 화제의 '시무7조'에 "인간의 욕구를 인정 하옵소서"란 호소도 (부동산)소유의 본성을 들추었다. 어쩌면 만단의 이슈가 소유와 관련됐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소유일까, 본능일까? 소유 뒤에 본능이 있게 마련이지만 본능의 이름으로 온갖 소유가 정당화될 순 없다. 요즘 시국을 보면 정의조차 소유하려 드는 이들도 보인다. 정의감과 정의욕은 다르다. 요컨대 이기적 유전자는 소유를, 소유는 정의욕을, 정의욕은 자만을 낳고 마니, 남의 가치관도 뺏을 태세다. 공정으로서의 정의(J.롤스)도, 미덕으로서의 정의(M.샌델)도 당위를 꼭 강요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함부로 쓰면 곤란한 것이 "내가 ~ㄴ데…"식의 1인칭 전지적 시점이 아닐까.


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

<저작권자 충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관련기사

PC버전으로 보기

충북일보 / 등록번호 : 충북 아00291 / 등록일 : 2023년 3월 20일 발행인 : (주)충북일보 연경환 / 편집인 : 함우석 / 발행일 : 2003년2월 21일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715 전화 : 043-277-2114 팩스 : 043-277-0307
ⓒ충북일보(www.inews365.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by inews365.com, In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