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위의 향신료 '고추냉이'

2020.09.14 14:35:49

자영스님

자연음식요리가, 화림전통음식연구원장

입추가 한 달이 지났지만, 가을은 아직 멀다. 가을 맛을 돋우는 채소의 하나로 고추냉이가 있다. 톡 쏘는 맛이 일품인 고추냉이(山葵)는 여러 음식에 곁들여져서 많은 사람이 즐기는 음식으로 세계 공용어는 '와사비(わさび)'라 불린다.

일본 북부와 사할린 등지가 원산지인 고추냉이는 흔히 와사비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지만, 2005년부터 한국어 순화 운동으로 와사비에서 고추냉이로 국가 표준명이 바뀌었다. 또 고추나 냉이와도 별 상관이 없을 뿐만 아니라, 기존에 고추냉이라 불리던 종은 참고추냉이로 그 표준명이 달라졌다.

순우리말로 바뀐 '고추냉이'라는 식물의 뿌리를 곱게 갈면, 독특한 맛을 지닌 연두색의 조미료가 된다. 지금,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고 있는 조미료이다. 초밥 등 밥 위에 오른 채소, 고추냉이는 또 다른 맛을 연출하는 마술같은 음식이다.

고추냉이의 특유한 향이 레몬처럼 생선 비린내를 없애고, 감칠맛을 더해주기 때문에 회에 많이 곁들여 먹는다. 생선이 들어가지 않은 초밥에도 겨자와 같이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식재료이다. 보통 간장에 풀어 섞는데, 그러면 특유의 알싸한 맛과 향이 약해진다. 그 향과 맛을 제대로 느끼고 싶다면 고추냉이만 따로 덜고 회를 간장에 찍어 먹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섞어 넣어도 또 그것만의 새 맛이 난다. 간장에 들어가면 더 고소한 맛이 나는데, 고추냉이를 푼 소스는 회를 찍어 먹는 것 외에 다용도로 쓰인다. 메밀국수나 추어 튀김에도 사용하거나 감자탕, 순댓국, 아귀찜 등에도 이 소스를 사용한다. 또 특유의 매운맛과 자극적인 향이 있어서 학대 개그의 소재로도 쓰일 때가 있다. 호불호가 있는 채소, 고추냉이는 서양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식 초밥에도 넣지 않는다.

일본인들이 고추냉이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정확하지 않다. 8세기 나라시대의《부역령》에 '산규(山葵, 와사비)'란 기록이 처음 등장하고 식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918년의《본초화명》에 와사비라는 단어가 나오고, 율령 세칙을 기록한《연희식》에도 세금 대용의 품목에 와사비를 언급했다. 본격적으로 식용한 것은 1254년에 편찬된《고금저문집》에 야생 와사비를 채취했다. 이 시기로부터 발달한 쇼진요리(精進料理)에 와사비를 사용했다. 특히 일본의 선종사찰을 중심으로 자생 와사비를 채취해 잘게 썰어 넣은 차가운 스프 요리가 유행하는 등 요리의 양념으로 널리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에도 막부 때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선물로 고추냉이를 받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고추냉이 잎이 가문의 상징인 접시꽃의 잎 모양과 비슷한 데다 맛도 좋다고 하여 도쿠가와 가문 외에는 판매를 금지했을 정도였다.

1712년의《화한삼재도회》에는 메일국수인 소바(そば)에 와사비, 무 등의 향미 채소를 곁들여 먹은 기록이 전한다. 1934년 경기도 광릉에서 미국인 스미스가 처음 표본으로 채집한 참고추냉이는 1957년《한국식물도감》에서 참고추냉이가 '고초냉이'라는 이름으로 울릉도에 분포한다고 하여 실제 자생 여부와 학명 및 국명에 대한 혼란이 생겨났다. 울릉도와 강원도 철원 등지에서 밭 재배되거나 국외로부터 수입된 고추냉이는 흔히 와사비라고 부르는 일본 원산지의 고추냉이다. 특이하게도 산지와 상관없이 전남 완도에는 고추냉이 맛김을 팔기도 한다.

17세기부터 일본의 길거리 음식으로 와사비 초밥을 팔았는데, 생선 초밥의 비린내를 잡고 박테리아 증식을 예방하였다. 고추의 매운맛은 한식에, 고추냉이의 매운 향은 일식 요리에 잘 어울리는 라이벌 향신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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